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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진 Oct 30. 2022

Day 10. 포르투 리스본

200113 Porto Lisbon

포르투에서 마지막 날 아침. 

정말 다행히도 세현이 열이 내렸다. 또다시 추운 집에서 지낸 덕분일까. 어찌 되었건 간에 정말 감사한 일이다. 형제는 아침부터 유아용 침대에 들어가 노느라 정신이 없다. 온이도 이제 많이 커서 형을 이기려고 덤빈다. 그래도 크게 싸우지 않고 잘 놀 땐, 항상 느끼지만 부모로서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다. 둘의 성향이 참 다른데, 어쨌든 잘 노는 것도 신기하긴 하다.


유아용 침대에 기어코 둘이 들어가 노느라 바쁜 형제 (2020.1. 포르투갈 포르투)


아이들이 노는 사이 청소와 집 정리를 시작한다. 이번 숙소는 깨끗하게 사용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리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 리스본행 기차 시간은 오후 4시 40분.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어 마음은 편하다. 떠나는 날 아침을 해 먹기도 애매해서, 오늘은 쇼핑몰에 가 아침 겸 점심을 사 먹기로 했다. 

정리를 마치고 집을 나선다.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날이 흐리다. 어제 화창한 날씨에도 다소 춥다고 느꼈는데, 날이 흐리니 으슬으슬 옷 속까지 시린 느낌이다. 길은 나서긴 했는데 문제는 바로 우리의 많은 짐. 호텔이 아니라 아파트에서 지내면 짐 보관 서비스가 없는 경우가 많아 문제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린 리스본행 기차를 탈 캄파냥 역(Campanhã)에 들러 짐을 보관하고 이동을 하기로 했다. 캄파냥 역에 들러 짐을 맡기고, 아줄레주(azulejo)로 유명한 알마스 성당(Capela das Almas) 인근 쇼핑몰에 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포르투갈에 왔으니 아줄레주를 두 눈으로 직접 봐야지! 역까지 가는 길은 택시의 도움을 받았다. 차로 10분 남짓, 3.95유로의 비용으로 역에 도착. 바로 코인로커에 짐을 보관했다. 

캄파냐 역에서 알마스 성당이 있는 Bolhao 역까지는 매트로로 3 정거장. 인근 쇼핑몰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 되었다. 알마스 성당 인근엔 몇몇 쇼핑몰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선택한 몰은 ViaCatarina라는 이름의 쇼핑몰. 별 다른 이유는 없고, 검색해보니 규모가 크고 식당가가 잘 되어 있었다. 우선 급하게 푸드코트로 가 음식 주문부터 했다. 오늘 메뉴는 크림 스파게티와 닭고기 스테이크. 여느 쇼핑몰의 푸드코트와 비슷한 맛을 보여주었다. 다만 가격대가 저렴해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식사를 마친 후 아이들 낮잠을 재우며 아이쇼핑을 할까 고민하다, 그냥 인근 스타벅스에 가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날이 흐려서인지 아이들도 그렇지만, 나도 아내도 영 기운이 없다. 다크 로스팅된 스타벅스의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쇼핑몰 ViaCatarina(2020.1. 포르투갈 포르투)


스타벅스는 길 건너편 또 다른 쇼핑몰인 La Vie Porto - Baixa 1층에 있다. 내가 주문하러 간 사이 아내는 아이들이 잠시 잘 수 있도록 설득을 한다. 한참을 폰을 가지고 영상을 보던 세온이는 자기 손에 휴대폰을 쥐고 자는 조건으로 눈을 감았고, 세현이는 잠들었지만 얼마 못 자고 깨고 말았다. 오래간만에 카페이서 휴식다운 휴식을 취한다. 아이가 아파 긴장을 했던 탓인지, 나도 아내도 조금 지쳐 있었나 보다. 스타벅스에 앉아 세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을 휴식을 취했다. 따스한 노천 온천에 들어가 몸을 풀면 딱 좋을 그런 느낌이다. 생각보다 긴 시간을 스타벅스에서 보내고, 이제 기차 시간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일어나야 할 시간. 알마스 성당의 아름다운 타일 장식 앞에서 가족사진을 남기고 싶었는데, 세온이는 아직도 자고 있다. 막상 성당 옆 공간이 너무 좁아, 삼각대를 세우고 찍을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엄마와 세현이만 사진 촬영. 세온이는 유모차 안에 누운 채로 사진에 등장이다. 그리고 다시 매트로를 타고 캄파냥 역으로 이동한다.


쇼핑몰 La Vie Porto - Baixa 1층의 아늑한 분위기의 스타벅스 (2020.1. 포르투갈 포르투)
알마스 성당의 아름다운 타일 장식 앞에서 (2020.1. 포르투갈 포르투)


포르투에서의 짧고도 강렬한 시간을 뒤로 한채, 우리는 리스본행 기차에 탑승한다. 리스본까지의 예상 소요 시간은 3시간 정도. 생각보다 긴 시간이긴 하지만, 기차를 타면 일단 시내 접근성이 좋고 대기 시간이 없기 때문에 좋은 점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과의 여행에선 마주 보고 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비행기보다는 훨씬 더 개방감이 있어 쾌적한 여행이 가능하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3시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낮잠도 자고 일어난 아이들을 또 재울 수도 없고, 휴대폰을 이용해 영상을 보는 것도 웬일인지 그리 즐겁지 않은 눈치다. 버틴다는 심정으로 시간을 보냈고, 결국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 리스본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리가 탑승한 기차는 리스본 동부 산타 아폴로니아 역(Santa Apolónia)에 정차한다. 우리는 밤에 도착하는 기차 시간을 고려해 아폴로니아 역 인근의 숙소를 예약했다. 사실 외곽 지역이고, 리스본 중심부와는 거리가 좀 있어 위치가 좋다고 보긴 어렵다. 아마 리스본에 와 본 적이 있었다면, 이쪽으로 숙소를 잡진 않았을 거 같다. 그래도 또다시 교통편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보다는, 도보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숙소가 낫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숙소로 가는 길이 조금 언덕이긴 했지만, 금세 도착할 수 있었다.


리스본 행 열차를 타고 가는 길 (2020.1. 포르투갈 포르투 - 리스본)


그런데 숙소 인근 모습을 보니 뭔가 느낌이 좋지 않다. 도보 쪽은 공사를 하느라 바닥이 해 집어져 있었고, 숙소 안은 어두컴컴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빠르게 숙소 1층 로비로 들어갔지만, 아무도 없다. 셀프체크인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 조금 이상했지만, 우리는 여권을 꺼내 체크인을 시도했다. 그런데 절차대로 진행하는데 체크인이 되질 않는다. 몇 번을 반복하지만, 계속해서 진행이 안된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직감했다.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니 벽면에 전화기가 보인다. 전화를 통해 호텔 직원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고도 영어 대화가 어려운데, 전화로 하는 영어는 더욱이 어렵다. 직원의 설명을 들어보니 현재 호텔이 공사 중이서 이용이 불가하단다. 아니, 그러면 그렇다고 미리 나에게 연락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당황스러운 건 우리만 흥분한 상황이지, 직원은 뭐 이런 일이 늘 있다는 듯 대응을 하고 있다. 

나는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사전에 온 연락이 있는지 뒤져보기 시작했다. 호텔 예약시스템 어플과 메일함을 뒤졌지만, 호텔 측에서 받은 연락은 존재하지 않는다. 잔뜩 목소리를 높여 사무실 직원에게 따지고 싶지만, 내 영어실력은 무엇을 따질만한 수준이 되질 않는다. 그저 도와달라는 부탁(please)만 되뇔 수 있을 뿐이다. 아내도 이런 상황에서 따지길 잘하는 사람이지만, 지금의 감정과 상황을 표현할 수 없으니 답답해할 뿐이다. 마치 신혼여행에서 5분 차이로 귀국 편 비행기를 놓치고, 항공사 직원에게 하소연하던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에도 영어 공부 반드시 하겠다고 다짐했건만. 이제 와서 후회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호텔 직원에게 이해가 안 되는 말은 몇 번을 되물으며 한참 소통한 끝에, 같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호텔이 다른 지역에 있으므로 그쪽으로 방을 준비해준다고 확인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동하는 데 필요한 차량까지 보내준다고 한다. 이걸 우리가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정말 울고 싶은 당황스러움 속에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공사로 운영이 중단된 문제의 리스본 호텔 앞 모습 (2020.1. 포르투갈 리스본)


호텔 측 차량이 오는 줄 알았는데, 아마도 우버 차량을 보내준 모양이다. 기사는 우리의 딱한 사정을 들은 건지, 눈치를 챈 건지 우리를 친절하게 새로운 목적지로 안내해 주었다. 우리가 지낼 Hello Lisbon Castelo Apartments까진 10분 정도 소요. 힘들게, 숙소에 왔다. 

방에 들어오니 밤 9시. 저녁을 먹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자야 하나 고민을 하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자기로 했다.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오늘 메뉴는 밥과 김. 뭐, 오늘은 아빠 엄마도 어쩔 수가 없다. 이건 마치 피난을 가며 먹는 식사와 다를 바 없다. 밥을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나는 숙소 바로 옆에 있는 동네 슈퍼에 들러 물과 달걀을 사 왔다. 물과 계란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식재료이다. 참 보잘것없는 식사이지만, 배가 고팠던 아이들은 이것도 맛있다며 한껏 먹는다. 덕분에 아빠 엄마는 별로 먹을게 남아 있지 않았다.  

이후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나는 정리를 시작했다. 여행을 하면서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이유들을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고 배우게 되었다. 굴곡이 있었지만, 숙소에 무사히 왔다. 저녁을 맛있게 먹었고, 아이들도 우리도 바뀐 숙소 방이 맘에 들어 다행이다. 그리고 방 안에 온풍기가 있어 춥지 않다. 

오랜만에 아내와 12시가 넘는 시간까지, 위안거리를 찾기 위해 대화를 하다 잠자리에 누웠다. 리스본에서의 3일. 오늘의 어려움을 잊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을 가득 채워지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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