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꽃샘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 분주한 중학교 입학식 행사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재학생 무리 속 중간에 서있던 나는 저 멀리 낯익은 모습의 한 아이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 앞에 서 있는 애 네 동생 아냐?"
"그러네. 이번에 입학생 전체 1등으로 들어왔대"
옆에 있는 친구들이 아는 체를 합니다. 대꾸하기 귀찮아 그냥 허공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호명을 하자 동생은 단상 위로 올라와 학생대표로 선서를 하고 있습니다. 저 멀리 앞줄 가장자리 앉아 세상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곤 나는 비 맞은 중처럼 중얼거렸습니다..
'칫. 나 때는 오지도 안더니...'
동생과 나는 2살 차이입니다. 같은 뱃속에서 태어난 게 신기할 정도로 우린 외모도 성격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달랐습니다. 동생은 뽀얀 얼굴에 큰 눈, 동글동글 생긴 코에 웃을 때마다 양쪽 뺨에 야무지게 들어가는 보조개가 두 볼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항상 궁금했습니다.
'내 볼엔 단 하나도 없는 보조개가 왜 쟤볼에는 두 개나 있는 거지?'
학창 시절에도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흙 강아지가 되어 집에 돌아왔고 동생은 가만히 앉아 책 읽는 걸 좋아했습니다. 당연히 부모님 눈에는 책도 좋아하고 깔끔한 성적표를 가지고 오는 동생을 더 흡족해하셨을 겁니다.
또한 동생은 '뼈 속까지 약하다.'라는 말을 몸소 보여준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외갓집서 며칠을 자고 오곤 했는데 옛날 한옥 집이라 화장실이 밖에 있는 구조였습니다. 한밤 중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동생은 자꾸 내 손을 잡아끌었지만 잠결에 미쳐 그 소리를 못 들었은 나는 미동도 없이 쓰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혼자 캄캄한 밤 대문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다리가 두 동강이나 방학 내내 깁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문지방에 나도 서너 번 걸려 넘어졌지만 멀쩡한데 너는 참 희한하다..."
정말 신기하고 순수한 마음에 물어봤다가 동생도 제대로 못 챙긴다는 엄마의 핀잔과 함께 두터운 손에 등짝을 맞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25년 후. 내 나이는 마흔이 되었고 동생은 30대 후반을 향해 달려가며 각자의 삶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동생이 웬일인지 주말에 놀러 왔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이모가 맛있는 초콜릿 케이크를 사 왔다며 8살 딸아이는 무척이나 행복해했습니다.
"철들었네. 먼저 언니네도 놀러 오고."
"언니. 나 할 말 있어."
"왜? 애인이라도 생겼어?"
피식 웃기만 할 뿐 한참을 생크림만 뒤적이던 동생이 입을 땟습니다..
"병원 다녀오는 길이야. 나 유방암 3기래."
순간 본인의 이야기를 너무 담담하게 말하는 동생의 표정을 살피려 서둘러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습니다. 여태껏 남한테 해 입히지 않고 착하디 착하게 살았던 아이인데 하늘의 신조차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초콜릿 케이크와 함께 먹으려 내놓았던 커피는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말들이 쏟아져 한동안 아이가 흘린 빵조각을 치우는 척 물티슈만 만지작 거렸습니다. 무거워진 공기 속에서 간신히 한마디가 입에서 세어 나왔습니다.
"죽는 건.. 아니지?"
"다른 곳에 전이도 안됐고 아직 젊어서 치료받고 수술하면 나을 수 있대. 언니한테 처음 얘기하는 거야."
유방암 3기라는 진단이 나오기까지 혼자서 병원을 다니며 피검사 조직검사며 CT촬영을 해서 알게 된 과정들을 들려주었습니다.
오히려 내 어깨를 토닥이며 돌아선 동생의 뒷모습을 본 후 머릿속은 하얘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엄마... 괜찮아?"
평소와 다른 모습에 딸아이는 슬금슬금 무릎을 파고 들어와 눈치를 살피고 있습니다.
"오늘은 좋아하는 짱구 만화 더 볼까?"
아이에게 리모컨을 건네고 서둘러 유방암에 대한 정보를 살피려고 핸드폰을 들었지만 눈이 자꾸 흐려져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며칠 후 식탁에서 요란한 진동 벨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전화기 건너편에서 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언니. 나 오늘 첫 항암주사 맞으러 가는데 같이 가주면 안 될까? 좀 무섭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눈앞이 안개가 낀 것처럼 뽀얘지고 귀도 멍해져 왔습니다.
서둘러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습니다. 밖에 나오자 따뜻한 봄바람 속에 펼쳐진 맑은 하늘이 짓궂게 느껴졌습니다. 후다닥 택시에서 내려 병원 6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긴 복도 끝 외래주사실 앞에서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동생이 보였습니다. 다소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멀리서 걸어오는 나를 발견하곤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양볼에 보조개는 여전히 예뻤습니다. 얇은 손목에는 바코드와 이름이 적혀있는 팔찌가 걸려 있었습니다. 그 손이 살며시 내 손등을 덮었습니다.
"와 줘서 고마워. 언니."
분주하게 걸어온 간호사는 동생을 데리고 주사실로 향했습니다. 주의 사항 안내 종이를 건네며 3시간 정도 걸린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똑.... 똑...'
종류를 알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수액이 연신 작은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질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넌지시 동생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언니랑 이렇게 같이 있으니까 좋다."
"뭐가 좋아...."
"그거 알아? 내가 어렸을 때 언니 뒤만 졸졸 따라다녔던 거. 항상 언니는 친구들이랑 논다고 사라져 버렸지. 아주 빠른 걸음으로 말이야."
그랬던 것 같습니다. 말을 듣고 보니 항상 동생은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고 엄마는 같이 데리고 놀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근데... 어렸을 때 너는 책 읽는 거 좋아했잖아."
"치. 심심하니까 책이라도 읽은 거지"
"희한하다.. 심심해서 책을 읽다니..."
"뭐? 그럼 언닌 심심할 때 뭐하는데?"
"난... 줄넘기, 달리기, 코파다가 잠들기 뭐.. 이런 거
"진짜 못 말려! 하나도 안 변했어. 언닌 어렸을 때도 재미있었는데. 나만 이렇게 변했네. 몹쓸 병에나 걸리고...."
"혼자서 병원 다니며 검진받고 암이라는 거 알았을 때 고민하고 속상했을 텐데 옆에 있어 주지도 못하고 미안하다."
"아니야. 유방암은 초반에 거의 증상이 없어서 잘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대. 언니도 시간 되면 한번 검사받아봐. 이제 40대잖아."
"그래..."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때론 우스개 소리도 하고 사는 이야기도 하며 3시간은 훌쩍 지나갔습니다. 이름이 쓰여 있던 손목팔찌는 사라지고 반창고가 덩그러니 붙어 있는 얇은 팔에는 살짝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주사실에서 나온 둘은 천천히 걸어서 병원을 나왔습니다. 서둘러 택시를 잡으려는 나를 말리며 동생은 좀 걷고 싶다고 했습니다. 거리엔 매서운 겨울을 온전히 버텨낸 가로수가 보였습니다. 그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엄청난 양의 항암주사를 다 맞고 나와 몹시 지쳐있는 동생처럼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언니랑 오늘처럼 많은 이야기를 한 게 처음인 거 같아. 근데 말이야 기분이 되게 묘하다. 힘들 때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몸이 본능적으로 안정감이 들어. 내가 아픈 게 식구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병원에 혼자 오긴 했는데 막상 들어가려니까 떨려서 못 들어가겠는 거야. 연락하길 참 잘했다. 몸속 종양이 별거 아니란 생각이 들어."
나는 걷는 속도를 천천히 늦추어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여태껏 누군가의 뒷모습을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질끈 묶은 머리카락 사이로 샴푸 향이 솔솔 납니다. 잔머리가 흘러내린 하얀 목덜미는 하늘하늘 민들레 씨처럼 어디론가 날아갈 것 같이 약해 보였습니다. 항상 언니 뒷모습만 보여 졸졸 따라다녔던 그 코찔찔이 아이를 지금은 반대로 뒤에서 따라가 봅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신나게 놀아주고 업어주고 할 텐데 하며 허망한 상상을 해봅니다. 갑자기 문득 옛날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수십 년 전 외갓집서 칠흑같이 어두운 길 속을 더듬더듬 걸어 화장실을 찾아 가려했던 꼬맹이의 심정이 어땟을까? 겁나고 무섭고 그런 감정 이상이었겠지. 같이 가주지 못해서 늦었지만 미안해.'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한참 후 조심스레 말을 걸었습니다.
"앞으로는 언니가 같이 있어줄게. 혼자 끙끙대고 힘들어하지 마.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이제는 말이야! 네 뒤에서 같은 쪽을 바라보며 함께 가줄게. 다음 병원 가는 날에도 전화해라. 알겠지?"
동생은 가던 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서서 양쪽 보조개를 훤히 드러내며 눈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내 손을 힘껏 잡아끌며 말했습니다.
"언니! 뒤말고.. 옆에서 손잡고 걸어줘. 이렇게"
동생은 앞으로 3번의 항암주사를 더 맞고 종양의 크기에 따라 수술 시기와 적절한 치료 방법을 의사와 의논해야 합니다. 그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이쁘게 길었던 머리카락도 빠지고 몸에서는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겁니다. 완치까지는 결코 만만치 않은 여정이지만 이번엔 그 길을 혼자 있게 하지 않을 거라는 굳은 결심을 합니다.
'사랑한다! 내 동생. 잘 이겨낼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