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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썬이 Feb 02. 2023

엄마의 글쓰기 수업(3)

가고 있어

세 번째 수업의 주제는 ‘시’였다. 앞선 에세이와 칼럼에서 다둥이 엄마로서 글을 썼다면 이번만큼은 내 기억 속 또 다른 나를 찾아 떠올리면서 써보고 싶었다.


선생님이 주신 미션(혹은 가이드)은 동일한 단어 혹은 문구를 반복적으로 삽입하는 방식으로 산문시를 써보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동일한 단어가 계속해서 반복되면 개성이 없는 글이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시’ 자체가 가지는 상징적이고 암시적인 상격 때문인지 우려와 달리 오히려 강한 하나의 이미지를 부여하면서 운율감을 살리는 장점이 있었고 모든 참여자가 같은 방식으로 작성했지만 모두 다른 느낌의 재미있는 작품들이 완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작품만큼은 선생님께서 전체적인 느낌이나 표현이 아주 좋다고 칭찬해 주셨었고 작품집에도 수정 없이 실리게 되었다. 또한 나 스스로도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철없던 스웨덴 교환학생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서 미소 짓게 된다. 내 기억 속에만 있던 설레고 들뜬 마음을 이렇게 의미 있는 형태로 남길 수 있게 해 준 것에 무척 감사드린다.




가고 있어

 

어쩌다 보니 비행기를 타고 한국인이 나 한 명 밖에 없다는 학교에 교환학생을 가고 있어. 민박집 아저씨가 자전거에 서툰 나를 위해 웃으며 빌려주신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고 신이 났는데 맞바람에 커다란 벌레들이 실려와서 계속 얼굴에 맞으며 달려가고 있어. 영국인 교수가 나한테 알려주는 건지 물어보는 건지 구별하지도 못하면서 수업을 듣는답시고 학교에 가고 있어. 비가 오면 수없이 많은 민달팽이들이 길바닥을 가득 채워서 어쩔 수 없이 몇 마리는 납작하게 밟히고 마는 길 위를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어. 온라인 메신저에서 기다리고 있을 너를 모른 체하고 알게 된 지 며칠밖에 안 된 친구들과 놀러 가고 있어. 모두들 한 손에 술병을 들고 밖에서 마시면 불법 아니냐고 낄낄대면서 가고 있어. 귓속말을 해도 다 들릴 것 같이 지독히도 조용한 한밤중인데 왜 거리에 혼자 있어도 안 무서운지 신기해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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