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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물킴 Aug 05. 2020

회사생활을 10년하니 변하는 것들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알 수 없는 미래는 막연한 불안감을 주지만, 설레는 기대감을 주기도 한다. 처음 신입사원으로 대기업을 입사했을 당시를 기억한다. 어떤 미래가, 사회생활이 펼쳐질지 모르기에 천진난만할 수 있었던 시간들. 어느덧, 회사생활 10년 차. 돌이켜보니 '그때 그 말이 그 뜻이었구나...'싶은 것들도, '그때 그 말은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싶은 것들도 생겼다. 나이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이 되었고, 지나가 버린 시간들을 조금은 아쉬워하는 날들도 있었다.  


(모두의 삶이 이와 같이 흘러간다고 생각하고 적은 글이 아님을 주의하시라.)



1. 결혼에 대한 가치관 (사랑 -> 파트너십)

 20대의 삶은 상당히 다이내믹하게 흘러간다. 단위로 삶을 구분한다면 학교에서 일로,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 이제 막 사회로 뛰쳐나온 물고기들은 좌충우돌 실수와 성과를 번갈아 만들어내며 '세상의 맛'을 본다. 다 큰 나이에 애기 취급받는 일들이 매일 펼쳐지지만 재밌다. 학생도, 어른도 아닌 그 어디쯤인 삶의 단계에서 즐길 것도, 금전적인 여유도 누리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사랑'이라는 순수한 가치를 선택하기에는 재밌는 것이 너무 많다. 결혼은 혼자만의 삶, 이상으로 책임질 것이 많아지기에 그 시절 나에게 우선순위가 높을 리 없다. 게다가, 그 어려운 결정은 30대로 잠시 미뤄두어도 그만이었다. (만나는 사람이 없어서 가지는 핑계는 아니었다. 연애사는 항시 바쁘게 흘러갔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 재미들이 점점 사라진다. 예전에는 재밌던 것들이 점점 심드렁해지기도 하고, 같이 즐기던 친구들도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회사생활은 또 어떤가. 대부분의 회사는 피라미드형 구조이기 때문에, 직급이 올라갈수록 동지들의 수는 적어진다. 그나마 남은 동지들은 '기존에 얼마나 친분이 있었는가'와 상관없이 무조건적인 경쟁관계에 놓인다. 회사는 이해관계로 뭉쳐진 집단이기 때문에, 친분 이전에 이해관계가 존재하고 경쟁 관계에서 양보는 도태를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정과 안식처의 중요성이 삶에서 큰 의미를 차지하게 된다. '세상이 두 쪽나도 내 편인 사람'이라는 말은 아마도 회사원이 지었으리라. 고되고 험난한 인생을 함께 헤쳐나가자고 약속할 사람, 그 사람과의 단단한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파트너십을 가장 강력하게 다져줄 것은 피(혈연)가 아니고서야, 사랑일 것이다. 
 결혼은 나에게 사랑을 바탕으로,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고 지지해줄 사람과 둘도 없는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2. 돈에 대한 가치관 (숫자 -> 가치)

 첫 회사를 선택할 때, 연봉은 매우 중요한 판단기준이었다. 여전히 내가 벌 수 있는 '돈의 양'은 중요하다. 인생의 선택지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돈이 많을수록 선택지가 많아진다는 것은 아쉽게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팩트다. '걔 스펙도 나보다 훨씬 안 좋은데 이번에 연봉 1억 주는 보험사 들어갔대.', '대박, 쩐다.' 류의 대화가 분단위로 펼쳐질 때가 있었다. 회사를 들어간 이후 펼쳐지는 삶에 대해 전혀 감이 없기 때문에 각자의 선택지를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회사의 인지도, 연봉 등 계량된, 혹은 남들이 사용하는 수치들이 유일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돈이 있어도 선택할 수 없는 것, 돈이 없어도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이 생긴다. 어느 순간부터(꼭 30대가 아닐 수도 있다) 돈 이상의 가치들이 내 선택을 좌우하는 순간이 펼쳐진다. 돈의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것이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돈도 모으고, 어느 정도 안정된 기반을 갖추게 되면 '그 이상 얼마나 돈을 더 벌 것이냐'는 문제에서 각자의 선택은 달라져간다. 통장에 어느 정도의 돈이 쌓이고 나면, 잔고를 확인하는 빈도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사이버 머니 같은 숫자의 증가가 나에게 주는 감흥이 점점 떨어지기 때문이다.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잔고가 쌓이고 나면 누군가는 하고 싶었던 사업을, 사고 싶었던 차를, 투자하고 싶었던 주식을 선택해 나간다. 돈이 많으면 모두 할 수 있고, 없으면 가장 쓰고 싶은 것부터 쓰는 것이다. 


여전히 돈은 인생의 선택지에 큰 영향을 주지만,
나는 더 이상 돈을 위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내 선택에 돈을 사용한다. 

 


3. 우정에 대한 가치관 (시간의 양 -> 공감대의 유사성)

  나이를 먹는다고 우정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우정을 나눌 시간이 줄어들고, 우정을 나눌 상대방이 변해간다. 영원한 우정을 지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꼭 함께하는 시간의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우정의 지속을 위해서는 변화해가는 서로의 라이프 스타일 속에서 끊임없이 공감대를 유지해나가기 위한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 


 20대 때의 선택들은 다들 엇비슷해 보인다. 특히 문과, 경영학과를 나온 친구들의 사회생활은 천편일률적이기 매우 쉽다. 각자 일하고 있는 분야나 업계는 다르지만, 사는 모습과 고민거리가 대체로 유사하다. 하지만 30대부터는 점점 달라지기 시작한다. 결혼을 일찍한 친구들, 애가 있는 친구들, 이혼을 한 친구들, 투자했다가 돈을 다 까먹은 친구들 등 서로의 라이프스타일이 점점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사람은 지금 내 삶의 고민거리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가장 가까이 지내고 싶어한다. 그것은 꼭 오래된 친구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우정의 발전은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물론 그렇게 만난 새로운 친구와의 우정도, 나와 상대방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지속되기도 중단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우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아닐 것이다...) 동창들과의 정기적인 만남, 회비와 회칙을 갖춘 조직 구성 등(이른바 꼰대들의 모임 같은 낚시회, 산악회, 제0회 00 고등학교 동창모임 등)은 변화무쌍히 흘러가는 각자의 삶 속에서 서로의 여건이 달라지더라도 우리의 우정을 굳건히 지켜나가자는 강력한 틀이자 약속 같은 것들이다. 




 10여년이 흐르는 동안 '나도 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싶은 변화들이 많이 생겼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이 될 때 즈음에는 또 어떤 가치관과 생각들이 변해있을지 모르겠다. 그 10여 년의 시간을 채워내는 것 또한 오롯이 내 몫이기에, 오늘도 고민과 행동을 반복하며 여느 직장인들처럼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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