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물킴 Jul 26. 2020

모든 회사원은 정치적이다.

여기 자원봉사하러 온 거 아니잖아요.

 대기업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을 때 첫 번째로 나를 맡아준 사수는, 결혼은 했으나 아이가 없는 40살 즈음의 여자 과장이었다. 과장은 외국계 기업에서 커리어를 줄곧 쌓다가, 안정적이면서도 글로벌 헤드쿼터의 경험을 할 수 있는 이 회사로 최근 이직을 했다. 결혼을 했다고는 하는데 애가 없다 보니 과장을 둘러싼 신기한 루머들도 꽤 돌았다.

사실은 결혼을 한 것이 아니라는 둥. 이혼을 했는데 숨기는 것이라는 둥.


 동기들에게 처음 그 루머를 들었을 때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도냐'고 언짢은 티를 낸 것은 나였으나, 정작 과장은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메신저 프로필 이미지를 자주 바꾸는 편이기도 했던 과장은 때때로 남자와 맡잡은 손 사진을 업데이트해 루머를 잠재우곤 하였다. 


 이제 갓 졸업한 26살의 나는 과장을 동경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일하며 30대를 보낸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적 조직체계 사이에서 분투하며 살아남는 과장은 똑 떨어지게 '일을 잘했다.' 과장이 올리는 보고서는 수정 없이 임원들의 결재가 쉽게 떨어졌고, 타 사업부에서 과장의 보고서를 참고자료로 요청하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울 일도 아니었다. 


일 잘하는 사수를 만나는 일도 복이라는데, 

과장의 업무 스킬을 최대한 빨리 흡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들뜨게 했다. 


 팀의 연간 업무 계획 중 우선순위와 중요도가 높았던 프로젝트를 맡고 있던 과장은 2분기를 매우 바삐 보내고 있었고, 과장이 필요한 자료들을 열심히 백업 서포트하던 나는 동기들 중 가장 빠르게 두각을 나타내며 '일 잘하는 신입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획득했다. 어느 정도 라포(rapport)가 생긴 과장과의 관계가 때때로 자랑스러울 때도 있었다. 


 야근을 하다 출출해진 저녁, 과장과 근처 분식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화제는 곧 퇴사를 앞두고 있는 우리 팀의 '강 대리'였다. 잠시 쉬고 싶어 퇴사를 선택한 것은 '강 대리'의 자유였지만, 문제는 '강 대리'가 맡고 있던 동유럽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는 약 3개월 정도의 기간을 목표로 진행 중이었고, '강 대리'는 프로젝트의 PM으로 전략 수립을 위한 현지 조사까지 다녀왔지만, 퇴사를 하며 중도 하차를 선언한 것이었다. 프로젝트는 반드시 마무리되어야만 했기에, 이 프로젝트는 PM급의 과차장 사이에 '똥'으로 불리며 인수인계를 받게 될 '똥받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프로젝트는 누가 맡게 될까요, 과장님?"


A 씨, 내일 회의 때 팀장님이 의사를 물어봐도 가만히 있어요.
그 프로젝트 맡는 순간, 그 사람 올해 KPI는 엉망이 될 테니까.


"그럼 맡게 되는 사람이 너무 억울한 거 아닐까요..."

"우리 셀(팀을 구성하는 하위 조직)만 되지 않게 바라보자고요. 


모든 회사원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어요. 이해관계를 따져야죠. 

여기 자원봉사하러 온 거 아니잖아요. 


조금이라도 중요한 프로젝트를 소화해야, 내년에 더 나은 프로젝트에 멤버로 호출받고, 무사히 승진 대상자 명단에 오를 수 있어요."


  과장님의 이야기를 명심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다음 날 회의를 들어갔고, 프로젝트가 망가진 것은 애석하지만 누군가는 마무리를 해야 하고, 한 편으로는 좋은 공부와 경험이 될 것이라는 팀장님의 의미부여가 이어졌다. 그 장대한 연설의 마무리가 나를 향해 급진적으로 달려올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A 씨, 일 따라오는 속도가 빠른 것 같은데, 자네가 해보겠나? 큰 성장의 기회가 될 것 같은데. 사수가 잘 도와주고 말이야. B과장, 문제없지?" 


그럼요, 팀장님. 


 의욕 넘치는 과장의 미소에 나는 잠시 소름이 돋았다. 어제저녁식사를 하며 나눴던 과장과의 대화를 내가 잘 못 해석한 것인가 의아하기도 하였다.  그 날 이후, 과장과 함께하던 A급 프로젝트에서 나는 점점 배제되었다. 신입사원인 나에게 두 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소화한다는 것은 큰 무리였고, 과장은 대신 동유럽 프로젝트의 전권(이자, 방치라고 말해도 무방한 것을)을 나에게 맡겼다. 스트레스가 가득한 날들이 이어졌고, 완성된 보고서를 들고 현지 시장에 날아가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D-day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보고서를 들고 나와 과장님은 유럽으로 향했다. 통상 현지 프레젠테이션은 과차장급 PM이 맡아 진행하고, 현지의 지역본부장과 향후의 계획에 대해서 담판을 짓는 자리로 활용되었다. 두근거리는 첫 해외 출장으로 동기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그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 속에서 내 몫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제 남은 업무는 본사에서 컨펌받은 내용을 현지에 가 잘 전달하고 오면 되는 것이고, 그것은 나의 사수인 과장님의 몫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 과장님은 잠시 내 좌석을 찾아왔다. (서둘러 좌석 예약을 하지 않으면 출장 가는 선배와 나란히 앉아야 하는 고통의 비행시간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꿀팁에, 나는 성공적으로 사수와 떨어진 항공 좌석을 확보했다.)


"A 씨, 현지 프레젠테이션. A 씨가 해볼래요?"

"네? 아... 그건 과장님께서 하시기로 했던..."


A 씨가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한 번 해봐요. 그럼, 수고.


 차갑게 돌아선 과장님의 등 뒤로, 허탈한 표정의 내가 있었다. 비행기를 내리자마자 현지 오피스를 바로 이동해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었다. 그로부터 약 10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나는 단 한 숨의 잠도 이루지 못한 채 난생처음 약 100페이지 보고서 분량의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야만 했다. 


과장은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을 잘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똥' 같은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이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과장님을 향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1분 1초를 분노로 소비할 수 조차 없었다. 


 현지 프레젠테이션은 무사히 종료되었고, 나는 본사로 돌아와 팀장님과 팀원 선배들에게 고생했다는 위로 섞인 동정을 받았다. 현지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신입사원인 내가 딜리버리 했다는 소식은 지역 본부장의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본사에도 전해졌다. 성장한 것은 분명했다. 신입사원이 쉽게 경험할 수 없는 난이도 있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천천히 알아도 되었을 회사라는 조직의 운영 원리를 배운 나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뒤로 나는 과장을 멀리했다. 예전처럼 친근하게 웃음을 보내지도, 식사 시간에 수려한 리액션도 보이지 않았다. 과장도 나의 의사를 알아차렸다는 듯, 부담스러운 접근을 자제했다. 역시나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성격이었다. 파란만장한 신입사원 첫 해는 끝을 향했고, 이듬해부터 새로 배치된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게 변경된 셀 이동을 하루 앞두고 고과가 발표되었다. 


 나는 A를 받았다. 동기들 중에 유일한 A였다. 통상적으로 선배들의 승진을 밀어내기 위해 S, A 고과를 신입사원에게 주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고과 잘 받았어요? 올해 고생 많았어요."


그녀의 KPI에 부사수인 나의 프로젝트 수행능력이 포함되어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 같은 팀의 다른 선배로부터였다. 


분노와 동경, 섭섭함과 감사함. 

그 사이 어디쯤의 감정으로 나는 대기업에서의 첫 해를 마무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