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팀원들과 점심을 같이 먹지 않는다."
꼰대가 탄생하는 과정이 항상 궁금했다. '저 사람은 원래부터 저렇게 고집스러웠을까', '저 사람은 원래부터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았을까?' 태초부터 저런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아니었을 텐데, '조직'이라는 유기체와 어떤 상호작용을 거쳤길래 '꼰대'라는 존재가 탄생하는 것일지 신입사원 때부터 늘 궁금했던 주제였다. 직장생활 10년을 거쳐온 지금, 꼰대를 만들어내는 이유는 상당히 다양하고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심지어, 나 역시 꼰대가 되기 매우 쉬울 뿐 아니라, 때때로 꼰대가 되어버리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비단 개인의 잘못만은 아니다. 이는 몸담고 있는 조직과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
직장인은 조직에서 '시니어'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꼰대 탄생의 시험대에 오른다. '시니어'는 조직의 목표를 이해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주니어'를 리드하는 역할을 맡는다. 오더를 받기만 하던 시간을 지나, 오더를 내리기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이때, '시니어'가 현명하게 조직의 시스템과, 새롭게 부여받은 권한만큼이나 높아진 본인들의 책임을 이해할 경우 '꼰대 탄생'은 지연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시니어'는 조직의 새로운 꼰대로 자리를 잡는다. 도제식 근무 환경을 벗어나, 각 위치의 직원들에게 명확하게 목표가 부여되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한 회사라면 비교적 '꼰대 발생률'이 낮아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시니어'가 경험으로 획득해온 노하우와 지식이 권력으로 둔갑하는 환경이 조성되기 쉽고, 이를 조직과 '주니어'에게 전수하는 과정에서 '꼰대'는 탄생한다. 우리나라에 '꼰대 발생률'을 낮출 정도로 스마트하고 선진적인 조직 시스템을 갖춘 회사는 손에 꼽을 것으로 본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꼰대이다. 경험과 자신감이 충만한 회사생활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일을 잘한다는 소리도 종종 들어봤을 유형. 가르치길 좋아하고 잔소리가 많다. 회사가 성장해오는데 일정 부분 기여를 했을 가능성은 높지만, 새로운 유형의 업무가 발제되었을 때 조직과 가장 갈등을 빚는 유형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도나 가능성에 대해 '이미 다 예전에 고민해봤던 것이고, 안될 것'이라는 패배주의에 갇혀있다.
대다수는 노처녀, 노총각 소리를 들으며 회사에 헌신하는 유형의 꼰대이다. '정년까지 무사히'가 그들의 모토. 결혼을 했으나 불화가 있거나, 육아를 선호하지 않는 시니어들도 이에 속한다. '이 나이에 내가 어딜 가겠어'라는 생각이 가득한 것을 숨기려 하지만, 실상은 주변 모두 그것을 알고 있다. 퍼포먼스는 떨어지나, 군말 없이 회사의 분부대로 행동하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이런 유형의 꼰대가 유독 많은 회사는 기필코 산으로 갈 것이기에 오래 몸담지 않는 것이 좋다. 지각, 옷차림 등에 대해서 딴지를 걸며 회사 잔소리꾼으로 군림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력보다는 '예의'가 중요하다며 롱런의 비결을 설교하기도 한다.
언뜻 쿨 해 보이고, 특정 후배들에게는 인기가 있기도 해서 꼰대가 아니지 않나 싶을 수도 있지만 꼰대다. 멋모르는 주니어들에게 결국 '배신감'을 선사하는 유형의 꼰대다. 사담을 나누는 것을 즐기고, 그것을 SNS 등에 은근히 과시하는 유형. 뒷담화를 즐기고, 소문을 잘 퍼다 나른다. 실제 조직의 문제 해결에 대한 고민보다는, 두루두루 잘 지내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으로 본인을 조직에 어필한다. 이런 형태의 꼰대를 한 번 받아주기 시작하면, 퇴근 후 및 주말 등에도 친분을 가장한 두서없는 연락에 끊임없이 대응해줘야 하는 '친분 지옥'에 빠진다. 후배들과 관계는 좋아 보이나, 가만 살펴보면 정작 본인의 동료 및 선배들과는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하는 꼰대들도 많다.
일 할 때 주니어에게 제일 스트레스를 주는 유형의 꼰대.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본인이 모든 것을 컨트롤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유형. 보고와 회의에 집착한다. 꼼꼼함이라는 특장점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숲보다 나무에 집착해 정작 유리한 고지는 다른 시니어에게 뺏기는 웃픈 상황도 노출하는 유형이다. 주니어의 경우, 이 꼰대에게 시달리며 소비하는 에너지에 비해 문제 해결 능력을 배울 기회는 적어, 시간이 지나면 '나는 대체 이 회사에서 무엇을 배웠나' 현타가 오게 만드는 유형. 주니어 퇴사율이 가장 높을 유형의 꼰대다.
시니어가 되면, 회사 내 정치전에 참전하는 것도 하나의 미션이다. 시니어들의 세계에서 그것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경쟁의 미션이 된다. 참전을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된다. 파면 팔수록 끝을 모르게 연결된 고리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니어에게 허용치 이상의 업무를 믿고 맡긴다.(고 말하며 떠넘긴다.) 주니어들은 본인의 연차에 맡기 힘든 일들을 해내며 나를 믿어준다는 신뢰감과, 그 일을 해결해 낸 뒤 얻는 보람 등 무형의 베네핏을 얻는다고 착각한다. 본인의 시니어가 사내에서 좋은 입지를 지닌 것으로 보여 믿음직스러워 보일 때도 있겠으나, 이 역시 착각이다. 이 유형의 꼰대는 주니어의 성장과 뿌리내림에 별 관심이 없다. 결국 올바른 가치관과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팀과 조직을 리드할 가능성이 높다. 조직이 가장 올바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의견을 내는 사람인가의 물음에 가장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유형이자, 결국은 조직에 해가 되는 퍼포먼스를 보이기도 하는 유형이다.
팀장이 된 이후 팀원들과 함께하는 점심시간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팀원들과 점심을 먹으면 우쭐해지기 쉬웠다. 메뉴 선정부터 모든 의사결정권이 나에게 먼저 주어지니까.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일단 들어 주(는 척 해주)니까. 처음엔 어색하고 신기했지만, 시간이 가니 금세 그런 대접이 익숙해졌다. 그렇게 권력의 맛을 알아가는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팀원일 때 함께 나누던 공감과 이해를 더 이상 주고받기는 힘들었다. 팀원들과의 적절한 소통도 중요하지만, 매일의 점심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서로에게 필요 이상의 교집합이었다.
1-2주에 한 번 정도 법카 찬스를 획득하여 맛있는 것을 먹고, 편하게 수다(주로 팀원들의 수다를 듣는 것)를 떠는 것이 다였다. 무엇을 억지로 말하려 하지도 않았고, 물으려 하지도 않았다. 팀장은 팀원을 떠날 줄 알아야 했다. 팀장은 이제 팀 안의 일들과 더불어 더 많은 범위의 대외 업무를 섭렵하고, 더 많은 범위의 사람들을 만나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낸 접점과 정보들로 팀을 잘 이끌 수 있는 선장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팀장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사람을 지난 10년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생각보다 많이 볼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