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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물킴 Jul 07. 2020

퇴사의 변

당신의 동력은 무엇입니까

 지난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들지 않았던 감정이 언제부터인가 내 머릿속을 휘감아 견딜 수가 없었다. 이력서에 한 줄 채워 넣을 요량으로 앉아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던 인턴, 나랑 같은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 자존심 상할 지경이었던 입사 동기, 쟤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잘 나가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던 후배, 저 사람의 머릿속엔 정말 '현명한 의사결정'이라는 단어 따위는 없는 것일까 의심 들게 했던 팀장. 


내 주변을 순간순간 채웠던 '회사원'들에게 멸시와 분노라는 감정을 배설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안 그러고 사는 사람도 있나?'라는 생각은 조금 남은 죄책감마저 깨끗이 씻겨주곤 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워가고 있었던 알 수 없는 감정에 대해서 파고들어 보았다. 그것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불안감, 답답함 등과 엇비슷한 감정이기도 했지만, 꼭 같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나의 매일을 채워주었던 공간, 사물, 인물 


모두 그대로인데 딱 나 하나만 변해버려 세상 모든 것이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이 감정, 혹은 생각의 정체가 무엇인지 외면할 수는 없었다

알게 된 것을 모르던 삶으로 되돌아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난주까지 매진하던 일이 시시했고, 며칠 전까지 사고 싶은 옷이 시큰둥해졌다. 닦지 못한 뒤가 신경 쓰이는 사람처럼 나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여전히 교촌치킨 허니콤보는 맛이 있었다.
정말 대단한 레시피.


 "김 팀장, 극비리로 진행되는 다음 영화 시나리오야. 팀원들에게도 보여주지 말고 혼자 읽어봐."


 회사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은밀하게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영화 마케터'라는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냐는 질문을 수차례 받기도 했던 나에게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며 머릿속으로 감독이 그려낼 연출, 배우가 연기해 낼 표정, 스텝들이 만들어 낼 그 날의 분위기 같은 것들을 상상하는 일은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잠시 내려간 나의 바이오 리듬도 금방 다시 튕겨지듯 올라올 거야.'


생각하며 나는 워터마크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시나리오를 펼쳐 들었다. 초고인 탓에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마주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나는 당황스러웠다. 시나리오는 재미있었다. 항상 흥행에 성공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의 각본이었고, 주연 캐릭터가 제각기 매력 있어 S급 배우들을 탄탄히 캐스팅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액션씬이 많아 제작비가 훌쩍 올라가겠구나 싶었지만, 안정적인 손익분기점 확보와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을 들먹이며 몇 개의 비효율적인 시퀀스는 걷어내 보자고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설레지 않았다. 심각했다.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감정, 또는 생각은 여전히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깨닫게 되었다. 


이것은 감정의 높낮이라기 보단, 생각의 변화에 가까웠다. 

생각의 변화를 인정하자 나의 행동은 걷잡을 수 없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의 직장생활 동안 내가 멸시하고 비난했던 누군가의 행동들이 나에게서 발견되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기도 했다. 회사 안팎의 동료들과 빼곡히 채워 넣은 점심, 저녁 스케줄은 비워져 갔고, 시키지 않아도 업무의 완성도를 위해 자처했던 야근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나에 대해, 이 변화의 정체와 이유에 대해 충분히 탐구할 시간이 필요했다


때때로 나에게 처절한 멸시를 받아야만 했던 지나간 동료들에 대해 떠올리기도 했다. 어쩌면 그들은 내 생각처럼 회사원이라는 직업의 책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한 명의 사회 구성원일 뿐이었다는 대인배적 생각이 떠올랐다. 불성실함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거나 잘못 잡아 도움과 이해가 필요한 누군가였을지도 모른다는 어른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더 많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역시 나이를 헛먹은 것은 아닌 거야.'라는 뿌듯함을 느끼는 나라는 인간의 자기중심적 태도와 나르시시즘에 구역질이 났다.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집요하고 골똘하게 파헤친 끝에 


정확히는 동력을 잃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난 10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딱히 내세울 것이 없어 성실함이 최고의 가치라고 믿고 살았던 80년대생), 빠른 승진을 했으며(뭐 그게 또 딱히 내가 잘해서였나 돌이켜보면 회사와 나의 이해관계가 맞았을 뿐이라는 생각), 업계에서는 나름 시기와 질투(회사생활을 하며 먹는 욕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소화시키기 위해 내린 정의)를 받기도 했다.


그 궤적에는 나만의 동력이 존재했다. 

이 동력이 '약 10년어치'였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난 좀 더 준비된 채 지금을 맞이했을까. 


남들은 어떤 동력을 지녔는지, 그들이 가진 동력의 내구성과 지속성은 어떻게 되는지 모를 일이었다.

내가 가진 동력을 최고속력으로 내달리기에만 급급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멈춰서 돌아본 세상은 너무나도 생경했고,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 앞에서 막막히 떠있었다. 


영원히 잃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을 빼앗겨 허망한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 선 채, 

나는 다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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