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프로젝트가 가동될 예정이었다. 정치권에서도 민감히 반응할 수 있는 소재인지라 캐스팅도 여러 번 바뀌었던 데다,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나 있을까 싶은 문제적 시나리오였다.
"이 프로젝트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 사람들만 저에게 따로 찾아와 주세요. 특별히 TFT를 구성해 진행하겠습니다."
'이런 영화가 세상에 나와야 한다면 우리 회사에서 하고 싶다'는 대표의 포부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지만, '그러니까 자꾸 돈을 까먹지' 비아냥 거리는 직원들이 태반이었다. 그 시나리오를 처음 읽던 날을 기억한다.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시나리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괜스레 엄마 생각이나 영상통화를 걸었다. 눈은 이미 퉁퉁 부어있었다.
"새벽 1시에 왜 울면서 전화하고 난리?"
"엄마, 나 이 영화 같이 해보고 싶어. 이 영화가 사람들을 만나는데 어떻게든 함께하고 싶어.
돈을 벌겠다는 마음보다, 진심을 전하겠다는 의지에 동참해보는 것도 해볼 만한 일 아닐까?
그런 영화를 만들겠다는 회사의 결정도 난 리스펙이야."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일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의 내용을 요약해 읊어주자 엄마는 딱 잘라 말했다.
"야. 잠깐 들어도 고생길만 훤 해 보이니까 절대 손들지 마. 너 내 말 잘 안 듣는 거 아는데, 이번엔 좀 들어."
나는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프로젝트에 참여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파란만장할 앞 날은 예측했지만, 어떤 경험과 변화를 겪게 될지는 쉽게 예측하지 못했다.
예민한 환경 속에 진행되는 프로젝트였던 만큼, 사람들은 매일 같이 날이 서있었다. 영화의 제작사, 배우들은 모두 베테랑들이었지만, 동시에 기성세대적인 면모 역시 유감없이 발휘했다. 기성세대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갈수록,
기성세대들의 연차는 때때로 권력이 되기도 했다.
누구 하나 함부로 의견을 더하기도, 더 나은 결과를 위한 건강한 대화를 하기도 힘든 나날들 속에서 영화는 무탈히 개봉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영화는 의미 있는 스코어를 거두었지만, 모두를 만족시키진 못했다. 맨 처음 제각기 가졌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거창한 사연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일일 관객수, 예매율, 수익률 등 숫자에 몰입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자원봉사하자고 모인 것도 아닌데 당연한 것이었지만, 괜스레 그 풍경이 섭섭했다.
개봉을 하고 나를 뜯어말렸던 엄마와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엔딩 크레딧이 시작되고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겨우 찾을 수 있는 내 이름이 올라올 때까지 엄마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내 이름을 발견하고 우린 채 반도 차있지 않던 상영관의 자리를 떴다.
남들이 피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평범치 않았을 과정이 훤히 보이는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본인의 아들이 했을 고생만 떠올라 속이 상한 엄마였다. '진심'을 쫓기 위해 내가 배운 것과 잃은 것, 무게는 어느 쪽으로 더 기울었을까. 예민한 나날들 속에 지쳐 희미해져 가던 나의 에너지와 의욕도 애초부터 '진심을 함께 하기로 한 내 몫'에 포함되어있었던 걸까.
회사는 감정과 관계를 나누기 이전에, 비즈니스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일에 마음과 정성을 담는 것이 미련한 짓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꼭 올바르고 선한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영화를 개봉시킨 후, 나는 일에 있어서 '감정의 과몰입'을 철저히 경계하게 되었다. 어쩌면 조금 더 이성적이고 계산법이 분명한 '태도'를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이어가며 탕비실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리던 아침, 옆 영화팀 선배가 안쓰러운 표정(살짝 머금은 미소가 보였던 것은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으로 다가왔다. 그 선배는 이 영화에 지원하지 않았었다.
"너무 고생했어. 진짜 너 아니면 이 영화 누가 했겠니? 남들이 피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건데, 넌 진짜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