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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물킴 Sep 23. 2020

내가 만난 최악의 상사 셋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상사, 그중에서도 손에 꼽게 최악인 상사는 생각보다 많다. 성격이 괴팍하거나, 일을 못하거나, 사생활을 간섭하거나 등등.. 많은 카테고리의 상사들이 나의 직장생활을 괴롭게 했었다. 걔 중에는 어떤 카테고리에도 포함시키기 쉽지 않은 상사들도 있었다. 적지 않은 사례 중,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던 세 명의 상사를 소개한다.



1. 니 입술이 그렇게 대단해?


 영화계에서 일하다 보면 배우들과 술자리를 가질 일도 상당히 많다. TV와 스크린 속에서는 멋진 모습으로 대중을 사로잡지만, 실제 모습은 의외의 면모를 지닌 이들이 다반사이다. 그 당시 회식 자리에 참석 예정이었던 배우는 술만 먹으면 주변 동석자들에게 '뽀뽀'를 하는 주사가 있다는 예고를 듣고 참석하게 되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아니나 다를까, 그는 슬슬 주변 사람들에게 애정 어린 주사를 뽐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옆자리의 남자 후배에게 먼저 뽀뽀를 건넸다. 장난스러운 그의 주사에 다들 깔깔깔 웃어넘겼다. 하지만 그는 슬슬 주변의 남자 후배뿐만 아니라, 여자 후배들에게까지 주사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비롯한 몇 후배들은, 그 자리가 불편한 나머지 몰래 자리를 뜨고 한참 있다 분위기가 조용해질 때쯤 돌아왔다.


 소문으로 듣던 주사의 실체를 확인한 것도 황당했지만, 그 날 헤어지기 직전 팀장의 코멘트가 절정이었다. 회식자리가 끝나고 헤어지는 길에 팀장이 나를 붙잡았다. 


'니 입술이 그렇게 대단해? 얼마나 대단하길래 그 뽀뽀 하나를 못해줘?" 


 선배가 기분이 좋아 가볍게 주사를 부렸던 것뿐인데, 그렇게 자리를 떠 분위기를 꼭 망쳤어야 했냐는 것이었다. 참 황당했다. 혹시 내가 이상한 건가? 내가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 상황인지, 위로를 받아야 할 상황인지가 급기야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나는 그 배우가 참석하는 회식 자리에는 절대 참석하지 않았다.



2. 집들이 선물로는 식탁을 사 와


 나는 회사 사람들과 지나치게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항상 경계했다. 친분이 생기면 일하기가 편하다고들 하지만(실제로 그 덕을 안 본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많은 상황에서 오히려 일하기가 불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각자 주어진 역할과 책임을 다하면 회사는 당연히 굴러가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나의 마인드였다. 


 당시 팀장은 유난히 사적인 팀워크를 중시하는 스타일이었고, 팀 내 대리가 새집을 샀다며 자랑 겸 집들이를 연다고 했다. 나는 집들이를 초대해주지 않아도 서운할 것이 없었지만, 팀워크 정신이 투철한 팀원은 그래서는 아니 되었다. 집들이에 초대를 받고, 선물을 고르고, 준비하고, 먹을 것을 사서 이동하고, 먹고 놀고, 늦은 시간 집에 가고, 그다음 날 일찍 다시 또 출근을 하고. 예정된 과정이 기대되진 않았지만, 이왕 하기로 한 거 기분 좋게 축하해주고 놀고 오기로 했다. 


집들이 일주일 전, 그래도 집들이 선물을 같이 사야 하지 않을까 싶어 팀장에게 운을 띄웠다. 

"어떤 집들이 선물을 사는 게 좋을까요?"

"아 사실 0 대리가 사달라고 골라준 게 있어.
이왕이면 필요한 걸 사주는 게 좋으니 이걸 사가자."


0 대리가 사달라고 했다는 집들이 선물은 상당한 고가를 자랑하는 4인용 식탁이었다. 이런 걸 보통 집들이 선물이라고 하나...? 이런 건 혼수 아닌가...? N분의 1씩 비용을 나눠낸다고 해도 상당히 부담되는 가격이었다. 그걸 사달라고 선주문하는 0 대리나, 그걸 사주자고 큰 통을 자랑하는 팀장이나 모두 나에겐 상식 밖이었다. 역시 투철한 팀워크 정신을 가진 직원으로서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지령받은 금액을 입금했다.



3. 일본에서 올 때 맥주 한 박스만 사다 줄 수 있어?

 

 참 그립게도 가까운 아시아 나라들을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 가는 것을 좋아했었다. 특히, 일본은 거리도 가깝고 친구들도 꽤 살고 있어 자주 기분 전환차 다녀왔었다. 당시만 해도 요새 같은 세상에 해외여행 가는 일이, 비행기 타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요란하게 선물을 사 올 일인가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에게 말을 안 하고 다녀오기까지 할 일인가 싶어 종종 과자 같은 가벼운 선물을 사 와 나눠먹으며 여행 후기를 공유하기도 했다. 상당히 눈치 없기로 유명했던 0 과장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에게 다음번 일본 여행을 또 가게 되면 꼭 부탁할 것이 있으니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알겠다고 대답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몇 달뒤 나는 다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예정이었는데,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그때 그 0 과장이 나를 찾아왔다. 


'나 뭐 하나 사다 줄 수 있을까? 그게 한국에서 팔지 않는 거라..'

'아 네, 과장님. 제가 여력이 되면 가급적 사 오도록 할게요. 어떤 게 필요하세요?'


'일본에만 파는 00 맥주가 있는데 그거 한 박스만 사다 줄 수 있어?'


'한 박스요?'

'응 요새 짐 부치면 들고 올만 하지 않나?'

'아 네네. 애써볼게요!'


한 캔 정도를 부탁했다면 두 캔 정도는 사다 줬을 것이다. 한 박스라니... 나는 그 뒤로 누구에게 구매 대행 부탁을 받더라도 확실하게 거절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상식 밖의 일들이 생각보다 많아, 내 상식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싶은 순간들이 오기도 한다.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배움이라면 배움이랄까. 10년 차를 채운 지금은 웬만한 일로는 눈도 꿈쩍하지 않게 된 나를 보면서, 참 많이 성장한 건지 참 많이 무뎌진 건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모쪼록 분투하는 모든 직장인들이 본인들의 상식이 통하는 세상 안에서 살아가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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