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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Dec 28. 2022

<난쏘공> 아이러니

나는 소설이 뭔지 '난쏘공'에서 배웠다. 의미 있는 소설은 눈이 빠지도록 현실을 탐구해 여러 갈래의 미래와 가능성을 그린다. 그렇게 소설이 제시한 밑그림 중 어떤 것에 색을 칠할지는 힘을 가진 우리 사회 위정자들이 결정한다. 나는 학창 시절 소설을 둘러싼 이런저런 주입식 설명을 들었지만 정작 소설이 무한한 '허구성'과 절제된 '핍진성'을 무기로 이런 기능을 뿜어낼 수 있다는 걸 난쏘공을 읽고 나서 깨달았다.


그만큼 난쏘공은 그 시대의 단면 중 많은 이가 체감하면서도 언어로 묶어내기 어려운 것을 조명해 진단하고 정의했다. 그러면서도 난쏘공은 우리 사회가 '난쏘공 사회'를 유지할지 말지는 소설이 결정할 수 없다는 한계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작가가 "더는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라고 최근까지도 습관처럼 강조했던 것이다. 이는 난쏘공 출간 44주년이 되도록 이 소설이 회자되는 이유이자 함축이다.


그래서 더 지금 이 순간 난쏘공이 제시한 여러 밑그림 중 우리 사회가 잘못된 것에 색을 칠하느라 시간을 허비한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작가인 조세희 선생은 이틀 전 세상을 떠났고 1983년부터 이어진 그의 '절필'은 영원한 침묵으로 잠들었다. 다행히 소설은 그 시절 그대로 남았으며 작가의 영면을 계기로 작품이 제시한 밑그림은 조명받고 호명될 것이다.


그렇지만 난쏘공이 1978년부터 존재했다는 점에서 다른 밑그림에 색을 칠할 수 있을지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논리적으론 합당하다. 작가는 2008년 난쏘공 출간 30주년 인터뷰에서 "청년이 이 책 내용에 공감한다는 게 괴롭고 30년 전 내가 우리 사회에 품었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한 한국은 성장하기를 멈춘 나라"라고 비판했다. 이것이 난쏘공이라는 그림을 그렸던 주체가 작심하고 내놓은 발언이며 오늘 이런 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그사이 사회에서 힘 좀 썼거나 지금도 쓰고 있다는 이들은 작가의 빈소를 찾아 '난쏘공 유산'을 운운하고 있으니 블랙코미디도 이런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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