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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그래퍼 Jan 02. 2021

Keep the faith

파란 휴머니스트

귀국길에 오르는 여행자에게서 어디선가 짤랑짤랑 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여행이 끝날 무렵 버리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처리하기 번거로운 흡사 계륵 같은 주머니 속 남은 외화 동전 한 줌 때문이다. 나 역시 주머니 속 남은 동전과 지폐를 만지작 거린다. 쿠바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JoséMartí International Airport) 귀국길, 쿠바 화폐는 특이하게 내국인 전용과 외국인 전용으로 구분되어 화폐가 유통되다 보니, 남은 외국인 전용 화폐를 무조건 처리해야만 했다. 어차피 얼마 되지 않은 적은 화폐인 만큼 기부박스도 찾아보지만 눈에 안 띄고 결국 공항 면세점과 기념품샵을 기웃기웃거리고 있다. 쿠바를 떠나는 길이라 아쉬움이 큰 만큼 기념품샵에서 수 십 분을 두리번거리다 결국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 한 장을 손에 쥐었다. ‘쿠바’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이 ‘체 게바라(Che Guevara)’이지 않던가. 남은 쿠바 화폐 미션 클리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행자들이 쿠바에서 그의 흔적을 찾는다.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쿠바 어딜 가든 체 게바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념품샵은 기본이고 쿠바 길거리 곳곳 베레모를 쓴 체 게바라의 이미지가 여행자들을 반긴다.

이쯤 되면 체 게바라가 당연히 쿠바 출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신기하게도 그는 쿠바 태생이 아닌 아르헨티나 출신이다. 체 게바라가 관광수입으로 쿠바를 먹여 살린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도대체 체 게바라는 어떤 사연을 갖고 쿠바에서 추앙받는 것일까?

쿠바 여행을 떠나기 훨씬 전인 2000년대 초 한국에 체 게바라 열풍이 분 적이 있다. 너 나 할 것 없이 나름 지식인이라면 혁명을 상징하듯 강렬한 붉은색 표지의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 역시 유행 따라 베스트셀러를 집어 들긴 했지만, 그 당시엔 완독을 하진 못했었다. 오히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통해 사회주의 혁명가인 체 게바라가 아닌 한 인간이자 휴머니스트인 에르네스토 게바라(Ernesto Guevara de la Serna, 본명)의 삶을 들여다봤다.

혁명가가 되기 전 청년 게바라는 의대생이었는데, 의사시험 합격 후 오토바이 포데로사를 타고 친구와 함께 8개월 간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 라틴아메리카 여행을 다닌다. 곳곳에서 서구 열강으로부터 핍박받아 가난하고 불행한 민중의 삶을 직접 목격하게 되고 세상의 불평등을 인식하게 된다. 그 계기로 아르헨티나 의사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라틴아메리카 노동자와 농민들을 포함하는 전 세계 민중을 위한 휴머니스트로 거듭난다.

의사라는 안락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평등한 사회로 가는 길을 걸어간 체 게바라… 민중과 함께 직접 노동을 하고 교육을 시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하며 그들과 함께 결국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 최고 지도자의 위치에 이른다. 하지만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히려 다 포기한 채 다시 라틴아메리카의 자유를 위해 볼리비아로 떠난다. 그의 변하지 않는 올곧은 신념 때문에 체 게바라는 쿠바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영원한 혁명의 아이콘이자 친구로 사랑받고 있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외곽으로 현지 투어를 나섰다가 들른 기념품 삽의 인테리어 역시 체 게바라 모습이 담긴 천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파란색의 천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혁명이나 사회주의에 붉은색을 많이 사용하지만, 개인적으로 체 게바라는 붉은색보다 파란색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노란색, 주황색의 천도 있었지만 파란색의 천이 가장 체 게바라와 잘 어울려 보였다. 이상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를 닮은 색은 단연 파란색. 옛날부터 파란색은 자유, 꿈, 평화를 상징했으니까.

천에 스페인어로 쓰인 표어, !Hasta la Victoria Siempre(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에서 펄럭이는 그의 신념이 전해진다. 신념이란 깊은 고민과 사유에서 나온 것이기에 자신만의 일관된 신념을 갖는 것이 쉽지 않다. 그리고 그런 신념을 계속 지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시시때때로 바뀌는 감정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싶은 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건 주변 사람들에게든 ‘신념 있는 사람’으로 불릴 정도의 인격을 아직 갖추지 못했지만 나에게 신념, ‘faith’란 단어는 꽤 친근하고 익숙하다. 인터넷 계정이나 닉네임을 정해야 할 때면 늘 이 단어를 사용해왔기에 내 몸의 일부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운동을 하거나 종교적 신념이 있어 그 단어를 써왔던 건 아니었다. 학창 시절 우연한 기회로 ‘faith’란 단어에 꽂혀 지금까지 줄곧 사용하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 단짝 친구와 교환 일기장을 나눈 적이 있다.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들의 우정 놀이로 말이다. 시시콜콜한 일상, 유명한 명언, 특정 주제에 대한 짧은 메모, 그리고 심각한 고민거리까지 공용 일기장을 서로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비밀스러운 둘 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친구가 어떤 내용으로 글을 보내올지 늘 설레었고 그 기다림의 시간이 즐거웠다. 그 당시 우리 둘은 취미로 팝(pop)을 즐겨 듣고 90년대 유행했던 미국 케이블채널 MTV의 뮤직비디오에 빠져있었는데, 특히 MTV의 전성시대를 연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즐겨 들으며 학업 스트레스를 풀어왔었다. 어느 날 그녀가 답해온 교환 일기장의 글은 마이클 잭슨의 노래 ‘Keep the faith’ 가사 중 일부였다.

So keep the faith, baby, yeah
그러니 친구, 신념을 가져
Because it's just a matter of time
왜냐면 단지 시간문제이거든
Before your confidence will win out
너의 자신감이 성공을 거두기까진
Believe in yourself no matter what it's gon' take
어떤 대가가 필요하든지 간에 너 자신을 믿어
You can be a winner
 너는 승자가 될 수 있단다,
But you got to keep the faith
하지만 먼저 신념을 가져야지

 

마이클 잭슨의 노래에 워낙 좋은 가사가 많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교환 일기장 속 오늘의 명언은 절친의 선택을 받아서인지 더 의미 있게 다가왔었다. 그 후로 ‘keep the faith’라는 문장을 좋아하게 되었고 아이디에 이 단어를 자주 쓰고 있다. 좋아하다 보면 닮아간다는 말처럼 이 단어를 곁에 두고 쓴다면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지키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 바람을 더했던 것 같다.

소시민인 나의 경우, 체 게바라처럼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원대한 신념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다 보니 요즘은 자신만의 소신이나 가치관이 아집이 되지 않기를 늘 경계하며 사는 것이 어쩜 더 나에게  맞지 않을까 싶다.

흔히 ‘저 사람 곤조 부리네’ 같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기 생각과 안 맞으면 부정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지칭한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과 경험이 체화되면서 자연스레 자기 색이 강해지기 마련이나 자칫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굳어지는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타인의 생각에 귀 기울이고 포용하되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아야 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게다가 곤조가 너무 세도, 곤조가 너무 없어도 문제다.

한 예로 정치 사회문제에 있어 각 진영마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보수와 진보로 편 나누기의 프레임 속에서 대표주자로 일컬어지는 진보성향의 언론 뉴스를 소비해왔다. 뉴스나 방송을 찾아볼 때 극우 및 보수성향의 기사나 영상은 일부러 회피하거나 손사래 치며 혐오할 때도 있었다. 나처럼 편향적인 언론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즐겨 듣는 라디오에서 인터뷰를 했던 언론학자 정준희 교수의 말을 빌려본다.

대중들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실에 기반한 기사를 통한 유익한 경험의 부재로 인해 언론 자체에 대한 기대감과 신뢰감이 거의 없다. 그런 불신으로 차라리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정보를 주는 언론을 편향적으로 소비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간혹 뉴스 소비에서 끝나지 않고 곤조 플러스 얄팍한 자존심까지 한 몫하는 대화를 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런 경우 늘 대화의 끝에서 돌아오는 건 숨길 수 없는 차가운 표정과 냉랭해진 분위기이다. 곤조나 아집으로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지낸다면 남은 인생은 외로움뿐일 것이다.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린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자신만의 신념은 지키되 아집엔 사로잡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나만의 생각만으로 가득 찬 단 칸 방을 버리고 여러 개 방을 만들어 함께 살아가는 마음부자 셰어하우스에서 삶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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