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과 공립, 두 갈래 길목에 서 계시는 분들께.
영국행이 결정되었을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이의 학교였다. 한국에서 운 좋게도 원하던 사립초등학교에 당첨되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던 아이는 새로운 학교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숨기지 않았다. 어디서든 아이가 잘 적응해야 부모의 삶도 편안하기에 나 역시도 그 어떤 것 보다 아이의 학교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우리나라는 거주지 기준으로 학교가 배정되는데 이건 공립학교 기준으로 영국도 마찬가지다. 원하는 학교 세 곳을 지원서에 적어 지역 카운슬(council)에 제출하면 카운슬에서 학교를 배정해 준다. 1지망을 고려해준다고는 하지만 근거리의 학교에 '공석이 있을 경우' 배정이 일반적이다. 우리는 출국 전 미리 집이 정해진 경우라 집 근처 배정받기 쉬운 학교들을 자세히 알아보았는데 다행히 우리가 원했던 학교가 가장 근거리에 있어 그곳으로 보내기로 했다. 우리의 경우 입국한 이후에 지원서를 냈고, 학기가 시작된 지 한달 후에 배정받아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아이의 학교는 참 좋은 곳이었다. 입학 당시 알파벳밖에 몰랐던 아이를 위해 학교는 학부모에게 전혀 돈을 받지 않는 공립학교임에도 할 수 있는 모든 지원들을 해주었다. 책읽기 보조 봉사자도 붙여주고, 주 1회 1시간 따로 시간을 정해 한국선생님도 붙여주셨다. 집에서도 따로 튜터를 붙여 한동안은 영어공부에만 집중했지만 무엇보다 학교에서 많은 지원을 해주셨기에 영어실력이 생각보다 더 빠르게 늘 수 있었고, 심리적으로도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나라에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타국의 아이가 전학을 온다면 이렇게 지원해 줄까? 2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학교에 늘 감사한 마음이다. 중간에 사립학교로 옮길 기회가 있었지만, 아이가 이미 너무 잘 적응한 상태였고, 초반의 학교의 헌신을 잊을 수 없어 그냥 남기로 결정했을 정도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얼마나 지금의 학교에 만족하는지 느끼실 것이다.
그럼에도 역시 돈을 내고 다니는 사립학교와 비교해 본다면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다. 한국과는 다르게 영국 에서 '사립학교와 공립학교' 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한 반의 학생수도 공립보다 적고, 교실 이외의 음악실, 과학실, 학교 자체 도서관부터 어떤 곳은 소공연장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시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시설이 갖춰진 만큼 다양한 체육활동과 음악교육, 독서교육 등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시험대비도 학교가 체계적으로 준비시켜 주는 곳도 많다.
물론 학부모가 감당해야 될 '돈'의 차이도 하늘과 땅이다. 우리나라 사립학교의 1년 학비를 거의 한 텀(Term)-1년에 세번의 텀이 존재한다. 에 지불해야함에도 그 외 부대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 한 예로, 다양한 체육활동이 있는만큼 그에 맞는 장비나 옷, 가방에서 양말까지 전부 학교에서 정해준 것들을 준비해야 한다. 활동이 많다는 건 그만큼 부모가 지불해야 할 '활동비' 와 '기타비용'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립학교라고 모든 곳이 다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존재하는데 어떤 곳은 정말 일반 집 크기와 크게 차이가 없는 소위 House school 형태의 사립학교도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outstanding 평가를 받은 좋은 공립학교 대비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교육적 환경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내가 언급한 사립은 역사와 전통이 있어 입학하려면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어야만 하는 '좋은 사립학교' 들의 특징이다)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차이가 단순한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점점 알게되면서 나는 그 어느때보다 '교육 불평등' 에 대해 자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을 지불하고 그만큼의 이득을 취하는 것은 어찌보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에도 사교육비에 많은 비용을 지출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않은 가정 사이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고 영국에는 없는 또 다른 교육문제가 분명 존재하기에 우리나라 초등교육환경이 영국보다 월등히 좋다고도 말할 수 없다. 공립 초등학교를 졸업해 공립 그래머 스쿨을 가고, 다음 코스로 명문대로 가는 아이들도 분명 존재하지만, 옥스브릿지 기준 사립학교 출신들의 입학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통계는 때로는 사립학교가 기득권 양성소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는 가장 큰 근거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오시는 분들도 형편과 사정에 따라 아이를 공립에 보내기도 하고 사립에 보내기도 한다. 우리는 결국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고, 입학 당시엔 공립학교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오히려 큰 고민이 없었다. 공립이라고 다 별로인 것이 아니고, 사립이라고 공립보다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훌륭한 공립학교도 너무 많고, 생각보다 별로인 사립학교도 너무 많다. 무엇보다 우리아이의 성격과 성향에 맞는 학교가 사실은 가장 좋은 학교라고 느낀다. 특히나 초등교육 과정인 primary school의 경우엔 공립과 사립의 차이가 secondary school보단 훨씬 덜하다.
여기서 짧은 시간이나마 지내다보니 나름대로 느낀 점들에 대해 두서없이 써보았지만... 내가 보고 느낀 것이 전부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고 싶다는 생각은 인종에 상관없이 어느 부모든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가정은 절때 감당할 수 없는 이곳 사립학교의 학비는 정말로 교육의 질과 평등과의 관계, 더 나아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