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4. 바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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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타고 한참을 달린 은정은 산속 아지트로 향했다. 한때 함께 했던 그들만의 아지트로. 산길을 따라 거칠게 올라가니 차가 매우 흔들렸다. 뒤에 있는 종현을 백미러로 잠깐 살펴보니 여전히 기절한 상태였다. 차가 들썩일 때마다 종현은 이리저리 흔들리며 신음했다. 은정은 그런 종현의 모습에 한 번 코웃음을 치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아지트 앞에 도착한 은정은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 밧줄을 갖고 나왔다. 그리고 종현의 팔과 다리를 꽁꽁 묶었다. 차에서 들어 아지트로 옮겨보려고 애썼으나 무거워서 도저히 그를 옮길 수 없었다.
은정은 다시 운전석에 앉아 차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산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갔다. 올라가니 절벽이 나왔고, 그 앞에 차를 세웠다. 기절한 지 두 시간쯤 흘렀을까. 종현의 몸이 조금씩 들썩이며 깨는듯했다. 은정은 종현의 얼굴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여자 꽤나 울렸을 것 같은 나쁜 남자의 인상, 긴 장발의 종현은 은정이 한때 사랑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돈을 훔쳐간 나쁜 놈일 뿐이었다. 은정은 종현의 뺨을 반복적으로 때렸다.
“야, 언제까지 잘 거야? “
종현은 뒷좌석에서 묶인 채 신음하며 조금씩 눈을 떴다. 그리고 눈을 잔뜩 찡그린 표정으로 은정을 보며 말했다.
“어..? 이게 무.. 무슨 상황이야?”
은정은 황당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억 안 나? 내 돈 내놔 이 새X야.“
은정은 종현의 뺨을 세게 때렸다. 놀란 종현은 다급하게 말했다.
“미안해 은정아. 근데 진짜 오해야. 내가 돈 갖고 튀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 거 아니야.”
은정에게 뺨을 맞아 볼이 빨갛게 상기된 종현은 속사포처럼 말을 뱉기 시작했다.
은정은 그런 종현의 뺨을 다시 세게 때렸다.
“변명하지 말고, 내 돈 어디 있어? “
종현은 우물쭈물하며 은정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조심히 말했다.
“다.. 썼어.”
은정은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자 종현은 다시 다급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 이유가 있어서 그랬어. 먼저 말하지 않은 건 미안한데 진짜야 믿...읍읍!”
은정은 자신의 양말을 벗었고, 종현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은정은 이마에 손을 짚고 눈을 가린 채 말했다.
“네가 없어지고, 죽은 건 아닌가 걱정했어. 돈 다 사라진 거 보고도 배신은 아닐 거라 믿었어. 근데, 도박에 다 썼다고? 넌 진짜 미친놈이야.”
종현은 몸을 마구 흔들며 말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입안에 가득 물린 양말로 인해 말을 할 수 없었다.
“읍.. 읍.. 읍!”
은정은 그런 종현을 싸늘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은정은 허리춤에서 빠르게 단검을 꺼내 그의 뒷덜미를 쨌다. 그리고 그의 메모리 칩을 꺼냈다. 종현은 고통스러워하다가 메모리 칩이 빠짐과 동시에 기절했다. 은정은 뒷좌석의 종현을 그대로 두고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차량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천천히 엑셀을 밝았다. 차량이 점점 절벽을 향해 다가갔다. 차가 내리막으로 향할 때쯤 은정은 운전석을 열고 뛰어내렸다. 은정은 구르며 바닥에 뻗었다. 그대로 차는 계속 내려갔다. 그리고 이내 곧 절벽에서 떨어졌다. 잠시 후 큰 충돌소리가 들리고 폭발하는 소리가 은정의 귀에 들렸다.
은정은 그대로 한동안 누워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컨테이너로 돌아갔다. 차에서 뛰어내리며 구른 탓에 다리가 조금 아팠지만 참을만했다. 컨테이너에서 H사 오프로드 바이크를 꺼냈다. 헬멧을 쓴 그녀는 바이크를 타고 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그리고 시내 입구에 도착한 은정은 바이크에서 내렸다. 답답한 헬멧을 벗었다. 은정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진짜 개새X..”
은정은 주머니에 넣은 종현의 메모리 칩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은정 본인이 칩을 이식하기에는 종현과 함께했던 범죄기록으로 인해 현상수배가 걸려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가 생각해 낸 방법은 새로 메모리 칩을 이식하는 환자에게 종현의 칩을 이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포섭할 계획이었다. 그렇게 해야 그를 통해 종현의 기억을 읽고, 조금이나마 남은 자신의 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종현이 그 많은 돈을 다 썼다는 사실을 은정은 여전히 믿을 수 없었다. 다시 헬멧을 쓴 은정은 펄센코사로 향했다. 펄센코에 도착한 은정은 몰래 회사에 잠입했다. 그리고 민수가 곧 이식하려던 칩과 종현의 칩을 바꿔치기했다. 그렇게 민수는 종현의 칩을 이식하게 되었고, 그를 만나 포섭하기 위해 은정이 찾아온 것이었다.
민수는 의자에 묶인 채 은정을 노려보며 물었다.
“그니까 내가 새 메모리 칩을 이식한 게 아니라 네 죽은 남자친구 메모리 칩을 끼웠다는 거네?”
은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역시 이해가 빨라. “
민수는 묶인 손목이 불편한지 계속 팔을 흔들어대며, 소리치듯 말했다.
“어쩌라고! 난 아무 상관도 없으니까 풀어줘! “
“아니, 내 돈을 찾기 전까진 그럴 수 없어.”
은정은 단호하게 말했다.
민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곧 다시 차분한 목소리로 은정에게 말했다.
“그런데 난 그 남자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어. “
은정은 두 손바닥을 위로 향하며 상관없다는 듯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기억할 수 있게끔 만들어줄게. 기대해도 좋아. “
은정은 민수의 뺨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