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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Jan 27. 2024

합창의 추억

지난 12월 친애하는 후배의 독창회를 다녀왔습니다. 그녀는 소프라노 가수입니다. 그 음악회엔 여러 흥미 요소가 있었는데 일단 열린 장소가 미술관이었습니다. 초행길인 서울대학교 미술관이었습니다. 과연 그곳은 개관한 지 20년이 채 안 된 미술관답게 안팎으로 조형미가 가득한 아름다운 현대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런 공간적인 어드밴티지가 더해서인가 시간을 달려가는 그녀의 독창회는 그곳을 공감각적인 장소로 만들어주었습니다. 연주한 아리아는 청아하고 낭랑하게 울려 퍼져 그 높은 천장까지 가득 채워졌습니다. 그 와중에 그녀는 노래 사이사이 그 곡에 대한 배경과 사연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독창회는 렉처까지 겸한 흥미로운 음악회였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방문한 모든 관객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흥미 요소는 그 무대의 마지막에 등장했습니다. 그녀의 제자들이 나와서 그 독창회를 축하하는 합창을 부른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지만 음악 전공자들이 아닌 MBA 과정의 남녀 성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날 <넬라판타지아>를 불렀는데 퍼포먼스와 상관없이 프로 연주회에서의 그 아마추어 합창은 제법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늦은 밤 음악당이 된 미술관을 나서자마자 동반자 중 한 분이 갑자기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우리도 한번 합창단을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입니다. 지휘는 오늘 연주한 후배인 소프라노 가수가 맡으면 된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아마도 그 사모님은 그날 합창을 감상하며 그녀의 기억 속에 죽지 않고 살아있던 합창의 추억이 떠올랐나 봅니다.


고정호 소프라노의 독창회에서 피날레를 장식한 제자들의 합창 (2023. 12. 15. 서울대 미술관)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아마추어 합창 공연을 보며 저도 고교 시절 참가했던 교내 합창대회를 떠올렸으니까요. 입시에 부담이 덜한 1학년 때 열린 학급별 대항전이었습니다. 제가 다닌 고등학교가 카톨릭 스쿨이라 당시 그 대회는 교내 성당에서 열렸습니다. 신부인 교장 선생님은 그 성당의 주임 신부를 겸하였습니다. 그때 인천 대건고 1학년 4반의 다른 급우들보다 보다 제가 그 합창대회를 더 선명히 기억하는 것은 그 대회의 지휘를 제가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대회에서 우리 반이 우승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늘색 교복 상의만큼이나 하늘도 푸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 그 성당의 제단 앞에 단정하게 도열해 앞에 서있는 제 손을 바라보던 60명 급우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떠오릅니다.


그때 지휘는 저의 음악성과는 상관없이 "저요! 저요!"가 아닌 "쟤요! 쟤요!"로 강제로 떠밀려 맡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맡게 되었으니 잘해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반은 대회 전까지 방과 후 남아서 합창 연습을 열심히 했고 결국 우승까지 한 것입니다. 그 우승은 다른 학급과는 달리 1명도 열외 없이 모두 남아서 열심히 연습해서 얻어낸 결과였습니다. 당시 반에서 힘 좀 쓰던 친한 친구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그 누구도 도망갈 수 없게 막아서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노래를 아주 잘했습니다. 그래서 저와의 관계도 있었지만 공부가 아닌 합창대회를 즐거워해 열심히 무력으로 분위기를 잡아준 것이었습니다. 전 그 친구에게 2절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8마디 솔로를 맡겼습니다. 바터가 아니라 진짜 실력이 뛰어나서였습니다. 그 부분에서 나머지 급우들은 허밍 코러스를 했습니다. 인천 대건고는 남학교입니다.  


그때 제가 선택한 곡은 <애니 로리(Annie Laurie)>였습니다. 음악 교과서에 나왔던 그 노래는 일찍이 교회학교에서 다른 제목의 노래로도 익숙하게 알고 있던 곡이었습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라는 제목으로 지금도 찬송가에도 나오는 노래이니까요. 그 곡은 스코틀랜드에서 유래한 노래입니다. 이렇듯 찬송가엔 스코틀랜드의 곡들이 눈에 띕니다. 이별곡인 <올드 랭 사인>도 <천부여 의지 없어서>라는 곡으로 나오니까요. <올드 랭 사인>은 1936년 안익태가 작곡한 <한국 환상곡>의 합창곡이 정식 <애국가>가 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국가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세 가지 버전의 가사가 있는 다목적 노래가 된 것입니다. 아마도 유럽이 중세로 들어서며 대륙에서 건너온 앵글로색슨족에게 탄압을 받아 춥고 척박한 북쪽 땅으로 쫓겨 간 켈트족인 스코틀랜드인의 정서가 우리랑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그런 듯합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선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한 위의 두 곡이 국내 교회에선 주로 장례식장에서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과 가슴 아픈 이별이라는 슬픈 정서가 종교적으론 죽음으로 해석된 듯합니다.


그녀의 이마는 눈더미처럼 하얗고

그녀의 목은 백조처럼 희고 길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

햇빛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

그리고 짙푸른 그녀의 눈동자

사랑스러운 애니 로리를 위해서라면

나는 쓰러져 죽을 수도 있어


<애니 로리>의 2절 시구입니다. 원문을 번역한 것이라 우리나라에서 불리는 노래 가사와는 조금 다릅니다. 아름다운 애니 로리를 예찬하며 그녀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 남자는 윌리엄 더글러스라는 사관생도입니다. 18세기 초 전쟁에 참전한 후 귀향해 애니 로리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의 아버지가 정치적인 이유로 둘의 결혼을 반대해 그 사랑은 깨졌습니다. 그가 실연의 아픔으로 그녀를 그리워하며 쓴 시가 바로 <애니 로리>입니다. 그 러프한 시를 스코틀랜드의 작곡가인 레이디 존 스코트(1810~1900)가 다듬어 1835년 3절의 가사로 완성하고 거기에 곡을 붙여 비로소 노래로 완성했습니다. 이후 <애니 로리>는 크림전쟁(1853~1856)에 참전한 영국 병사들이 고향의 애인을 그리며 애창하여 전 세계까지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로 치면 설화적인 요소에 사실이 더해져 만들어진 스코틀랜드 민요 <애니 로리>입니다.


고교 시절 교내 합창 대회에서 <애니 로리>를 지휘하는 필자의 옛 모습


저처럼 이렇게 과거 학창 시절 합창의 추억이 있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위의 후배의 독창회에서 합창을 듣고 즉석에서 합창단을 결성하자는 그 사모님도 분명히 그런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땐 요즘과는 달리 합창이 대유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등 각급 학교에서 교내 합창대회는 연례행사였으며 교정을 벗어나 시내, 군내, 도내 합창대회도 많이 열렸으니까요. 물론 각 대학들의 합창 동아리의 활동도 지금보다 훨씬 왕성했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걷다 보면 졸업생들이 여는 OB(old boy) 합창 연주회 공연 포스터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당, 절 등 종교 기관에서의 성가대 합창단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땐 더 활성화되어 있었습니다. 학교와 마찬가지로 지역 내 종교 기관이 참여하는 성가 합창 경연 대회까지 열렸으니까요. 그리고 예외 없이 그 지역을 통과한 합창단들이 모여서 경합하는 전국 규모의 대회들이 열리곤 했습니다.


또한 이런 아마추어 합창단 이외에 전문 합창단들도 성행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몇 개의 시립합창단들이 존속하고 있지만 그때엔 선명회합창단, 마드리갈합창단, 숭실합창단, 대우합창단, 레이디스싱어즈합창단 등 특화된 합창단들도 존속하였습니다. 대기업이었던 '대우'라는 브랜드가 합창에까지 맹위를 떨치던 시대였으니 지금 이 글의 배경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 IMF가 오기 전까지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아, 회사에도 합창단이 구성되어 사내나 외부 행사에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광고대행사 재직 시 지금은 KB국민은행으로 합병된 주택은행의 TV CF 시사 시 그 시사와 함께 행장과 임직원들 앞에서 행해진 주택은행 합창단의 공연을 본 적도 있으니까요.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라서 그랬을까요? 이렇듯 사람이 모인 곳엔 대개 합창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합창단을 이끄는 지휘자가 귀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는 작은 교회들도 융성했던 시절이라 그 많은 성가대 지휘자의 경우 스카우트전까지 치열하게 펼쳐지곤 했으니까요.


그런 지휘자들 중 우리나라 합창의 대부라고 불리는 마에스트로가 있는데 그는 윤학원 지휘자입니다. 위의 전문 합창단인 선명회, 마드리갈, 대우, 그리고 레이디즈싱어즈 등은 모두 그가 거쳐간 합창단일 정도로 그는 합창에선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대형교회의 성가대는 그의 지휘를 한 번쯤은 받을 정도로 그는 종교 음악으로도 꽤나 명망이 높았습니다. 지금도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해 지명도는 떨어지지만 숫자로 보면 합창 지휘자들이 오케스트라 지휘자들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학교와 교회만 보더라도 여전히 수많은 아마추어 합창단이 있으니까요. 이렇듯 윤학원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와도 같은 합창 지휘자의 영역을 개척하고 홀로 우뚝 선 존재였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 합창의 전성시대를 이끈 인물입니다. 1938년생인 그는 지금도 합창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 합창계의 대부 윤학원 지휘자


합창으로 들어야, 그리고 합창이 들어가야 더 좋은 음악이 있습니다. 교향곡의 텍스트를 정립한 베토벤은 그의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에 합창을 넣어 그 곡은 아예 <합창>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습니다. 그의 추종자이면서도 그를 넘어서기 위해 애를 썼던 말러도 그의 2번 교향곡인 <부활>과 8번 교향곡인 <천인>에 합창단을 세팅했습니다. 같은 비엔나에 살며 역시 또 베토벤을 추앙했던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가곡 <들장미>, <송어>, <보리수> 등은 같은 노래라도 왠지 독창이나 악기 연주보다는 합창으로 들어야 더 좋고 깊게 들립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인트로만 들려도 귀가 먹먹해집니다. 또한 모차르트, 브람스, 슈베르트가 작곡한 <자장가>들도 합창으로 연주되어야 아기들의 잠이 더 잘들 것만 같습니다.


물론 그 전인 바로크 시대에도 합창은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1742년 초연된 헨델의 오라트리오 <메시아> 중 하이라이트인 <할렐루야>는 그전까지 졸고 있었을지도 모를 영국의 왕 조지 2세를 벌떡 일으켜 세웠으니까요. 그 어떤 세례보다도 강력한 합창의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아마도 소프라노가 천상을 뚫을 듯이 하염없이 올라가는 'king of king' 가사 부분에선 전율을 느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는 지금도 기독교의 가장 큰 축일인 부활절과 성탄절에 단골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물론 연주될 때마다 관객들은 조지 2세와도 같이 벌떡 기립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로크 시대 이전 중세 시대 교회의 미사 시간에 흘러나오던 그레고리안 성가도 남자만의 단성(單聲) 단부(單部)이지만 신자들에게 종교적인 감흥을 준 합창곡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150여 명의 합창단과 함께 베토벤 9번 <합창>을 연주한 베를린 필하모닉 (BBC PROMS 2004)


합창곡들 중에서 저의 추억 때문에 이 글의 주인공이 된 <애니 로리>도 그렇지만 미국의 민요인 <클레멘타인>, <은발>, <오 쉐난도>, <콜로라도의 달>, <매기의 추억> 등도 역시 합창으로 들어야 그 감흥이 제대로 살아날 것입니다. 또한 미국 민요의 아버지라 불리는 포스터의 <스와니강>, <켄터키 옛집>, <올드 블랙 조>, <오 수재너>, <금발의 제니> 등도 합창으로 들어야 그 깊은 여운과 애수를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나 브라스밴드, 또는 독창으로 연주된 그 곡들도 좋지만 합창으로 듣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가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수인 님의 <고향의 노래>, 최영섭 님의 <그리운 금강산>, 박태준 님의 <동무 생각>, 김성태 님의 <동심초> 등도 제겐 그렇게 들리고 있습니다. 독창이나 중창으로 들어도 좋고 악기 연주곡으로 들어도 좋지만 왠지 합창곡이 더 끌린다는 것입니다.


과거 KBS TV <남자의 자격>에서 합창단에 도전하고 대회까지 출연하는 리얼 프로그램이 방송된 적이 있었습니다. 검색해 보니 2010년에서 2012년까지 그 프로그램 안에서 매년 다른 3개의 합창단이 만들어지고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1기 박칼린 지휘자의 남격합창단이 가장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만 2기 때엔 위의 윤학원 지휘자도 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 지휘자의 청춘합창단 멘토로 출연했었습니다. 그리고 3기엔 금난새 지휘자가 패밀리합창단의 지휘자로 출연을 하였습니다. 당시 그 프로는 합창단과 합창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단원 오디션 과정부터 보여주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시청자들이 그렇게 느끼는 데에는 그들도 과거 합창의 추억이 있기에 쉽게 동화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10여 년 전 공중파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남자의 자격>으로 일반인들 사이에서 합창의 인기가 살아나는 듯했지만 생각만큼 길게 이어지지는 못한 듯합니다. 반짝 붐이 일고 다시 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인가 불과 6개월 전인 2023년 7월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합창 대회가 열린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강원도 강릉에서 10일간 열린 그 합창대회는 합창의 올림픽과도 같은 큰 이벤트였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평화와 번영이라는 주제로 인종, 세대, 국경을 초월해 국내에서 참가한 229팀을 포함해 전 세계 34개국에서 온 323개 팀의 함창단원 8000여 명이 참가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대회는 그렇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20세기말 우리나라에서 그런 대회가 열렸다면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등 크게 각광을 받았을 것입니다.  


KBS TV <남자의 자격>에 출연한 남격합창단과 발칼린 지휘자 (출처, bnt news)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다성(多聲)과 다부(部)로 화합과 화음을 중시하는 합창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음악 활동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팀플레이라는 특성 때문에 어느 단체이든 쉽게 시도를 하려 합니다. 단원들에겐 그가 조금 실력이 모자라도 동료들의 힘으로 그것을 메울 수 있다는 안심감도 작용해 참여를 용이하게 해줄 것입니다. 티가 날 수밖에 없는 독창과 중창은 참여가 힘들어도 합창은 누구라도 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중창도 큰 범주에서 보면 합창에 들어가겠지만요. 그런 특성까지 작용해 합창은 대중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해 올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언제든 바로 시도가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입이 악기이기에 악기 연주와는 달리 크게 준비물이 필요하지도 않으니까요. 물론 음악 재능자나 전공자가 참여하는 전문 합창단이나 프로 합창단은 이런 명제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과거 합창이 유행했던 시절엔 그런 예체능 단체 활동이 무엇이든 성행했습니다. 학교만 봐도 교실에선 음악 활동으로 모두가 참여하는 합창이 있었다면 운동장엔 체육 활동으로 단체 체조와 매스게임이 있었습니다. 미술 시간엔 풍경화도 그렸지만 단체 계몽과 각성을 촉구하는 포스터도 많이 그렸습니다. 국어 시간엔 역시 같은 목적인 표어도 많이 숙제로 제출하곤 했습니다. 한때는 무용이 유행해 여자는 물론 남자들에게도 보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무용은 단체로 동작을 맞추어서 추는 군무(群舞)였습니다. 그것은 군대까지 시행령이 내려와 제가 군 복무 시절엔 1주일에 1회 연병장에 모든 대원들이 모여 군무를 배우고 추었습니다. 당시 우리 부대의 강사는 전주에서 가장 잘 나가는 디스코텍의 최고 춤꾼이었던 제 동기였습니다. 그는 그때 전 사단을 돌며 장병들에게 군무를 가르쳤고 과외로 장교 부인들에게도 교습을 하였습니다. 이런 단체 예체능 활동들은 학교든, 기업이든, 군대든 콘테스트를 통해 반드시 우승자를 가렸습니다. 제 고교 시절 열렸던 합창대회처럼 말입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과거 20세기말보다 주변에서 합창이 덜 들리고, 합창단이 덜 보이는 것은 이렇듯 단체가 하는 공동작업이라는 특성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그것은 합창뿐만이 아니라 위에서 열거한 모든 단체 예체능 활동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체임에도 원 보이스, 원 컬러를 요구하고 중시했던 시대에서 개인이지만 멀티 보이스, 멀티 컬러를 요구하는 시대로 바뀐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과거 그 시대엔 대세가 협동과 합심을 강조하는 단체주의였는데 지금은 그 반대가 된 것입니다. 대신 과거의 그것들엔 심미적인 요소가 있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그런 심미성보다는 개성을 더 중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교육적 효과가 전제되지 않는 한 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합창이나 매스게임, 군무 등에 무조건적으로 참여시키기가 어려워진 것입니다. 이젠 그런 단체 활동은 하고 싶은 사람만이 참여하는 활동이 되었습니다. 회사의 단체 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보통 사람들이 과거보다 합창에 단원으로 참여할 기회는 줄어들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합창은 여전히 매혹적입니다. 어디선가 아는 노래의 합창곡이 들리면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입으로 중얼거리며 손으로 가볍게 지휘를 하기도 합니다. 손가락을 반사적으로 까닥까닥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요. 솔로곡이나 악기 연주곡과는 달리 합창은 그만큼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숙하기에 그럴 것입니다. 금세기 최고 지휘자인 카라얀과 번스타인의 만남이 실려있는 존 마우체리가 쓴 <지휘의 발견>이란 책엔 그 책을 번역한 역자 이석호 님의 재미있는 표현이 나옵니다. 바로 '핸즈온(hands-on)'이라는 어구입니다. '직접 해보는', '실천 위주의'라는 뜻이라는데 이런 지휘 흉내도 그런 핸즈온에 속할 것입니다. 합창이 그 지휘 손짓에 올라타는 건가요?


이 글을 마치는 대로 <애니 로리>의 합창곡을 찾아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어봐야겠습니다. 그때 음악책의 가사는 위의 레이디 존 스코트의 시와는 달랐습니다. 물론 위의 시는 2절이고 저의 기억은 1절부터 시작됩니다. "저 새벽이슬 내려 빛나는 언덕은 / 그대 함께 언약 맺은 내 사랑의 고향 / 참 사랑의 언약 나 잊지 못하리 / 사랑하는 애니 로리 내 맘에 살겠네.." 합창과 함께 제 손도 막손짓으로 허공에서 춤을 출 것입니다. 핸즈온!


<애니 로리>의 국내 악보

https://youtu.be/P1ukTI3wgl0?si=me2lp3rJ3AZXyCg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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