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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하 Dec 30. 2023

불후의 산울림 - 5

나는 지구인이다

12월 8일 서울 영상 17도

한겨울임에도 더운 서울입니다. 서울이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점심 약속이 있어서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다 몇 발자국 못 걷고 돌아섰습니다. 일기 예보를 보고 입은 옷이었지만 문밖을 나서니 그 이상으로 더워 그 옷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진 것입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좀 더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고 나섰습니다. 그날은 단순하게 따뜻한 날이 아니고 아예 봄기운이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 버스 차창 밖으로 길 옆에 노란 개나리가 피어있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그런 화사함이 창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어딘가엔 계절을 착각하고 진짜로 핀 봄꽃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은 그다음 날인 토요일에 게재하는 원고 완성이 덜 되어 전날 밤늦게까지 글을 쓰다 잤는데 새벽 잠결에 급 수정 생각이 나서 벌떡 일어나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 거의 하얗게 샌 날이었습니다. 그래도 날씨가 이렇게 청명하고 따뜻해서인지 생각보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이 글을 처음 쓰고 있는 오늘(12월 15일 하루종일 흐리고 비)과 같은 날씨였다면 가는 발걸음이 꽤나 무거웠을 것입니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 맞습니다.


오후 12시 30분 논현동 국시집

점심 약속 멤버는 4명으로 모두 사회에서 만난 선배들입니다. 선배라도 나이가 붙은 것이 아닌 좀 벌어진, 그래서 제가 확실한 막내인 모임입니다. 이렇게 6개월에 한 번씩 1년에 두 번 만나고 있습니다. 성원이 되자마자 그간 못 만난 반가움으로 상투적인 인사를 나누고 각자 그간 있었던 일들을 수다스럽게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군번이 낮은 저는 주로 듣고 추임새만 넣는 자리가 됩니다. 이 나이대가 되면 남자는 여자가 된다고 하는데 그 말이 꼭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많아지는 데다가 나이순으로 대화점유율이 높은 것을 보면 말입니다. 모두들 현업에서 은퇴, 또는 반은퇴를 하였지만 그날 겨울 기온 이상으로 뜨겁게 사는 분들입니다.


Y 선배 (1956년 생)

그는 은행원으로 해외 생활을 오래 한 분입니다. 그는 클래식 음악에 매우 조예가 깊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음악다방에 살다시피 하며 클래식에 파묻혀 살았습니다. 그래서인가 은퇴 후 그는 특수하고도 특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LP 클래식 음반 거래입니다. 숍에서 살 수 없는 희귀 클래식 음반을 팔거나 중개하는 일을 취미 삼아 하고 있습니다. 파는 음반은 그가 오랫동안 수집한 음반들 중에서 그의 손을 떠나보내는 것이고 중개하는 것은 그가 보유하지 않은 특정 음반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해외에서 음반을 알아보고 그것을 연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음반을 소유하고 있고 오랜 해외 생활 플러스 해박한 클래식과 음반 지식으로 많은 소스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은퇴 후 (그 나이에) 여전히 온라인을 통해 뜨겁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음반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클래식 마니아일 텐데 그는 그 분야에서 그런 마니아들이 찾는 지존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현재 클래식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강연도 하며 2020년 <LP로 듣는 클래식>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대단한 지구인입니다.


N 선배 (1959년 생)

그는 검사 출신의 변호사입니다. 아니 지금은 변호사가 맞나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만큼 열심히 일해왔기에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과거 방문판매법 관련 책을 냈을 정도로 글쓰기도 좋아하는 그가 현재 (그 나이에) 가장 꽂혀있는 것은 자전거입니다. 몇 년 전부터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있습니다. 자전거는 국내를 모두 섭렵하여 더 이상 갈 길이 없는 수준이 되어 이젠 해외 진출을 넘보고 있습니다. 목표하는 행선지는 스위스입니다. 아마도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뚜르 드 프랑스(le Tour de France)의 영향이 큰 듯합니다.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이 그만큼 큰 것이겠지요. 그가 그날 끌탕을 치며 하소연한 문제는 그의 애마인 자전거를 그곳까지 공수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분해해서 케이스에 넣어 싣고 가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별 문제없지만 스위스에 도착해서 그것을 조립할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배우고 연습해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기계치로 신은 그에게 그 재능까지 주지 않았습니다. 과연 공평하신 신입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도 절치부심하고 있을 것입니다. 대단한 지구인입니다.    


P 선배 (1960년 생)

그는 시작은 저와 같은 광고인이지만 이후 광고주로도 근무했고 마지막엔 해외에서 공직자로도 근무를 하였습니다. 지금은 서울을 떠나 지방 소도시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와인에도 조예가 깊은 그가 (그 나이에)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엉뚱하게도 수학 공부입니다. 현직에 있을 때에도 머리가 복잡한 일이 생기면 조용히 앉아 <수학의 정석> 문제를 풀면 머리가 맑아진다고 했던 그였습니다. 문과 출신이지만 그 정도로 수학과 가깝게 살던 그가 지금은 원 없이 그 공부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마치 과거 조선시대 선비가 관직을 떠나 향촌에 내려가 유학에 매진하듯 그는 수학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그의 수학 실력은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와 있습니다. 아니 있다고 합니다. 제 앞에서 아무리 열을 올려 설명을 해도 저는 수학은 젬병이라 못 알아들으니까요. 어학까지 능통해 매년 수험생들의 국영수 수능시험도 풀어보는 그는 현재 우리나라 수능의 문제점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교육부나 청와대에서 그의 말을 좀 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제가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는 오전 시간엔 틀림없이 수학 공부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진도가 수학 2를 넘어 어디까지 나갔나 모르겠습니다. 대학의 공업 수학이 어쩌고 저쩌고 하던데 말입니다. 대단한 지구인입니다.  


오후 5시 30분 동부이촌동 가정식집

12월 8일 그날은 긴 점심과 긴 저녁 약속만으로도 하루가 꽉 찬 드문 날이었습니다. 세 선배들과 점심 식사 후 자리를 근처 커피 하우스로 옮겨 수다를 이어가다가 저는 곧바로 이른 저녁 약속 장소인 동부이촌동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역시 또 어느 선배와의 약속이 있어서 그곳으로 간 것인데 저녁 식사를 빨리 하는 것은 그다음 일정이 있어서 그랬습니다. 이렇게 그날은 계속 이어서 등장할 선배까지 치면 세 타임에 걸쳐 총 5명의 선배를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이른바 제겐 선배 특집으로 하루를 보내는 '선배의 날'이었습니다. 이번엔 지하철로 이동해 처음 가보는 상가 지하 그 가정식집엔 네 번째 선배가 먼저 와있었습니다. 매우 따뜻했던 날이라서인가 선배는 샛노란색의 가벼운 코트를 걸치고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뵐 때마다 달라지는 모자와 안경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H 선배 (1957년 생)

그녀는 현역 화가입니다. 그런데 그림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쓰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출간도 몇 권 했고 지금도 새 책 출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간지에 정기 칼럼도 게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본업인 그림을 계속 그리면서 말입니다. 그런 그 선배가 요즘 새롭게 집중하는 것은 영어 공부라고 밝힙니다. 매일 아침 TV 영어를 1시간씩 하고 있다는 것은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그것으론 모자라 미국 현지에 사는 원어민과 매일 전화로 회화 강습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 후배인 저는 대체 왜 영어 공부를 (그 나이에) 그렇게 열심히 하시냐고 했더니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해서라는 진위를 알 수 없는 농담성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두고 볼 일입니다. 그녀는 다양한 재질의 미디어를 화폭으로 삼아 많은 그림을 그리는 다작 화가입니다. 전시도 자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꽤나 소요될 텐데 그녀는 자꾸만 새로운 것을 추가합니다. 대단한 지구인입니다.


오후 7시 30분 용산 LS타워

이제 그를 만나러 갈 시간입니다. 바로 전 H 선배를 만나 저녁을 먹은 것은 가까운 LS타워 지하에서 K 선배를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음악을 하는 그 선배는 선배의 날이라 할 수 있는 그날 제가 만나는 선배들 중 최고참입니다. 그런데 (그 나이에) 활동은 가장 왕성하게 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는 아직도 은퇴하지 않은 현역이니까요. 그런데 그냥 은퇴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나도'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본업 이외에도 여전히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본업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은 무려 46년 동안이나 하고 있습니다. 그 선배는 그날 저녁 그곳에서 열리는 공연에 출연합니다. 이름하여 '송강.뭉클' 송년 콘서트입니다. 공연 시작 전에 도착해 분주하게 준비 중인 K 선배를 먼발치에서 봤는데 우리 일행을 알아본 그는 반갑게 웃으며 봤다는 사인을 보내주었습니다. 공연 타이틀인 '뭉클'은 마음과 마음이 부딪히는 소리라고 합니다. 틀림없이 그 선배가 정한 타이틀일 것입니다.


김창완 밴드가 출연한 송강재단의 송년 음악회 포스터


김창완 선배 (1954년 생)  

그렇습니다 그는 산울림과 김창완밴드의 리더인 김창완 아티스트입니다. 굳이 그의 이름을 오늘 제가 만난 다른 선배들처럼 이니셜로 숨길 필요는 없겠지요. 그날 저녁 그 시간에 김창완밴드의 단독 공연이 있어 H 선배와 함께 그곳에 간 것입니다. 그는 최근인 지난 11월 신곡을 발표했습니다. <나는 지구인이다>라는 앨범입니다. 이 기사가 처음 떴을 때 저는 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나이에 또 신곡을 발표하다니요?!"라는 의문성 감탄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밀려 나온 것이었습니다. 신곡이라고 소개하며 노래하던 <노인의 벤치>라는 곡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또 새 앨범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날 그는 다른 신곡도 연주했는데 다소 생뚱맞게 2년 동안 연습했다며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무반주 기타 솔로로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올해 2월 이곳에 제가 기고한 <불후의 산울림 - 4>의 사적인 무대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했을 때보다 그날 정식 공연에서 연주한 <월광>은 훨씬 더 유려하고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연습 기간이 10개월 더 늘어나서인지, 제 귀가 변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송강.뭉클' 송년 콘서트에서 연주 중인 김창완 밴드 (2023. 12. 8. LS타워)


나는 지구인이다

그날 라이브로 처음 들은 <나는 지구인이다>는 매우 심플하고 담담하게 흘러갔습니다. 광의적이면서도 다소 철학적이기도 한 주제의 제목이지만 가사는 역시나 아이가 쓴 시와도 같이 들렸고 후반부 "라라라~"로 이어지는 코러스 부위는 꽤나 중독성이 있게 들렸습니다. 마치 아이의 노래를 흰 수염을 늘어트린 그날 공연 포스터 속 산타 할아버지와도 같은 도인이 유영하듯 원숙하게 부르는 것 같았습니다. 생활 전선에선 밴드를 이끄는 가수, 프로듀서, 라디오 DJ, 연기자, 화가, 수필가 등의 멀티 플레이어로 쉴 틈 없이 바쁘게 시간을 쪼개며 살고 있지만 무대 위에선 옅은 미소와 함께 우아하고도 여유 있게 그렇게 천천히 연주해 가는 그였습니다. 하얀 상의를 입어서인가 그날 <나는 지구인이다>를 부르는 그 지구인에게선 백조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부르는 노래는 우아하고 아름답게 흘러가지만 무대 아래에선 그가 벌려놓은 많은 일들이 치열하게 부딪히며 돌아가고 있을 테니까요. 하긴 46년이나 무대에 섰으니 이제 도인이든 백조든 될 때도 됐습니다. 흔들림이 없는 불후의 경지에 오른 것입니다.


나는 지구인이다 / 지구에서 태어났다 / 지구에서 자라나고 여기서 어슬렁댄다 / 동산에서 해가 뜨고 서산에서 해가 진다 / 달님이 지켜 주고 별들이 놀아 준단다 / 온갖 꽃이 만발하고 나비들은 춤을 추고 / 새들은 노래하고 구름 둥실 떠 가고 / 천만년이라나 억만년이라나 / 바닷가엔 파도치고 산 위엔 바람이 불고 / 라라 라라라 라라 라라라..


<나는 지구인이다> 앨범. 리마스터링 버전의 <기타가 있는 수필> 앨범과 더블로 발매 (2023. 11. 24)


12월 13일 오후 7시 30분 블루스퀘어

그다음 주 그날은 김창완밴드가 크라잉넛과 합동으로 서울 공연이 열린 날입니다. 공연 타이틀은 <아니 벌써 밤이 깊었네>였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제가 난생처음 2주 연속 같은 밴드의 공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의 공연은 달랐습니다. 펑크록 밴드 크라잉넛과 함께 하는 공연으로 관객의 평균 연령이 전주와는 달리 어렸기에 연주하는 그의 곡들도 달라진 것입니다. 통상 그의 공연은 서정적인 곡과 록킹한 곡을 반반쯤 섞는데 그날은 압도적으로 록킹한 노래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모르는 곡들도 많은 것으로 보아 그런 곡들은 김창완밴드 결성 후 만든 신곡들인 것 같았습니다. 크라잉넛에 이어 무대에 올라선 그가 말합니다. "지난 히트곡 몇 곡 부르겠다고 이 무대에 선 것이 아닙니다. 일흔 나이에 무대에 선 모습을 여러분들께 보여주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 메시지를 전달받은 스탠딩 관객석의 어린 친구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니다. 동시에 무대 위에선 "와르릉 붕붕"거리며 기타가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벌써>를 협연 중인 김창완밴드와 크라잉넛 (2023. 12. 13. 블루스퀘어)


비정형적 천재의 루틴

12월 8일과 13일 늦은 밤 그 공연들이 끝나고 아니 벌써 아침이 면 김창완 아티스트는 얼리 버드가 되어 집을 나설 것입니다. 동지 무렵이라 아직도 해가 솟지 않았음에도 말입니다. 8일 송년음악회의 경우 무려 22곡을 인터미션도 없이 계속해서 초인적으로 부른 그이지만 매일 아침 6시 20분이면 샐러리맨처럼 어김없이 출근하는 그입니다. 애마인 자전거에 올라 타 여의도를 향해 페달을 밟습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우중충한 아침이라도 백조와도 같이 우아하게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의 라디오 방송 멘트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올해로 24년째 진행하고 있는 그의 프로그램입니다. 이 정도면 정말 지겹도록 지루하게 이어지는 그의 루틴입니다. 때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전 방송이 끝나면 오후엔 드라마 촬영, 저녁엔 공연이 또 이어지기도 합니다. 비정형적 천재만이 할 수 있는 초인적인 루틴입니다. 제가 이곳에 먼저 쓴 <불후의 산울림 - 2> 글엔 이런 루틴을 대단함을 넘어 신기해하는 저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 들어 있습니다.


아이의 루틴으로

루틴을 갖고 산다는 것은 아이처럼 사는 것은 아닐까요? 태아는 엄마의 뱃속 자궁에서 웅크리고 삽니다. 그의 공간은 매우 좁고 루틴은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심플합니다. 자라면서 가끔 바깥이 궁금하여 엄마 배를 차는 것이 다입니다. 그래도 태아는 아무 불편함이 없습니다. 엄마의 뱃속을 나온 아기의 루틴은 먹고 자고 울고 싸고가 다일 것입니다. 역시 매우 심플합니다. 그의 영역은 반 평 정도의 포대기가 다이지만 아기는 아무 불편함이 없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루틴은 그보단 좀 더 복잡해지지만 역시 또 심플합니다. 어른과 비교하면 그 루틴은 턱없이 적습니다. 움직임도 학교와 집을 잇는 정도의 거리와 면적이 영역의 대부분이라 어른들에 비해선 매우 작습니다. 어떤 어른은 세계를 정복하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아이는 그의 세상에서 불편함이 없습니다. 혹시 김창완 아티스트도 그런 아이와도 같은 루틴을 가지고 사는 것은 아닐른지요. 우리에겐 많고 복잡해 보이지만 그에겐 아이와도 같은 그것만이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것입니다. 그의 노래들 중에 아이의 언어인 동시와 아이의 노래인 동요를 차용한 곡이 많은 것도 어쩌면 그런 연유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7월 15일 울산 록 페스티벌

올해 그날 울산 태화강에서 록 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KBS TV가 주관하여 음악 프로인 <불후의 명곡> 특집으로 2022년 강릉 록 페스티벌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것입니다. 전 8월 초 방영된 TV를 통해서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였습니다. 그곳엔 제가 좋아하는 김창완밴드도 작년에 이어 나왔으니까요. 방송을 시청한 후 전 김창완 선배에게 재미있게 잘 봤다고 카톡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그의 대답은 엉뚱하게도 "잘 나왔어요? 이른 저녁에 방송을 하네.."라는 것이었습니다. 방송을 안 봤다는 것인데 밖에 일정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그는 토요일 저녁 그 시간 집에 있었습니다. 제 딴엔 조금 이해가 안 가서 약간은 따지듯이(?) 아니 그래도 그냥 방송도 아니고 구름 관중 앞에서 후배 밴드들과 함께 한 록 페스티벌이고 방송을 보니 그 페스티벌을 제안하시고 엠블렘까지 직접 디자인하셨다던데 궁금하지도 않냐고 했더니 나온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녹화 방송이므로 방송용으로는 편집되어 짧아지거나 다르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다음 공연 레퍼토리를 짜고 있어서 볼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한시라도 빨리 선곡을 해줘야 밴드 멤버들과 스태프들이 편하다는 답을 보내주었습니다. 과연 김창완 아티스트다운 멘트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완전히 이해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요. 그렇게 그 대답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전 그가 다소 심드렁하게 궁금해했던 답을 보내주었습니다. 1) 물론 아주 잘 나왔습니다. 외모도 어리게.. 2) 보너스로 어머니 장면도 잘 나왔습니다. 3) 다 좋았지만 <노래 불러요>가 개인적으로 신선했습니다. 20대의 젊고 어린 목소리로 낭랑하게 들려서.. 4) <불후의 명곡>은 매주 토요일 오후 6시 20분에 시작합니다.


다음 공연을 위해 선곡 작업 중인 김창완 아티스트 (2023. 8)


대단한 지구인들

2023년 12월 8일 서울 영상 17도, 다섯 명의 선배들을 만났습니다. 공개했듯이 모두 다 60대 중반부터 70세에 이른 선배들입니다. 그날 하루 점심부터 늦은 밤까지 그들은 은퇴를 했든, 은퇴를 안 했든, 아님 반은 은퇴를 하고, 반은 현업을 이어가든 정말로 열심히 사는 모습들을 보여주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 나이대가 되면 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지기도 하는데, 그리고 그것을 당연스럽게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 선배들은 일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새 일을 만들고 있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루틴화 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었습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노동이 투입되는 총합으로 볼 때 현직일 때와 일량으로만 보면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일들입니다. 그 선배들을 만나기 전엔 새벽까지 이어진 과로로 인하여, 그리고 친구가 아니고 선배라는 무게감에서 오는 의무감도 다소 있기도 해서 출발 전엔 꾸물럭거리기도 했었지만 정말로 보람찬 하루가 되었습니다. 그 선배들이 저를 매우 긍정적으로 자극했으니까요. 저의 게으름을 꾸짖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점점 실버화 되어가는 우리 사회에 그런 선배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에게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선배들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대단한 지구인들입니다. 모두들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Happy New Year!


김창완 아티스트가 손수 그린 작품으로 팬들에게 보내는 2024년 연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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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혹시 참가를 희망하시는 브런처님 계시면 kay68@naver.com 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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