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상>편에서 영국(UK)의 국기인 유니언 잭이 일단 완성은 되었습니다. 잉글랜드가 주도한 연합법을 통한 통일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유니언 잭엔 유나이티드 킹덤인 영국과 관계없는, 영국의 구성국이 아닌 나라도 들어있습니다. 반면에 영국의 구성국임에도 그 국기 안에 들어가지 못한 나라와, 들어가는 것이 마뜩지 않은 나라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등한 지위임에도 영국의 구성국에 아예 이름을 올리지 못한 나라도 있습니다. 왜들 그럴까요? <하>편에선 복잡하지만 역시 또 재미있는 유니언 잭의 보이지 않는 역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유니언 잭 - 아일랜드의 국기?
영국은 아일랜드가 1937년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지만 아직도 그들의 상징인 과거 국기 문양을 유니언 잭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통일할 때 넣었으니 독립하면 빼는게 맞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입니다. 아일랜드는 현재 영연방에서도 탈퇴한 공화국이라 영국 왕인 찰스 3세가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국가입니다. 가장 가깝지만 먼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영국(UK)은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을 상징하는 성 패트릭 십자가를 그들의 국기인 유니언 잭에 여전히 넣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회도 아닌 카톨릭을 대표하는 성인인데 말입니다.
아일랜드가 영국에 그것을 강력하게 빼달라고 요청 안 하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아일랜드는 더이상 성 패트릭기를 국기로 사용하고 있지 않아서입니다.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보았듯이 아일랜드의 국기는 초록색, 흰색, 오렌지색이 들어간 삼색기로 과거 사용했던 성 패트릭기와는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바뀌었습니다. 1848년 아일랜드의 청년 독립 운동가인 오마하르가 제정한 깃발을 독립하면서 정식 국기로 채택해서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유니언 잭에 들어가 있는 성 패트릭 십자가의 진위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성 패트릭은 순교를 하지 않았기에 고유의 십자가가 있을 수 없는데도 잉글랜드가 통합하면서 유니언 잭의 십자가 아이덴티티를 맞추기 위해 당시 아일랜드를 통치했던 잉글랜드 가문의 십자가 모양의 문장을 성 패트릭 십자가로 둔갑시켜 끼워 맞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848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아일랜드의 국기
반대로 영국(UK)이 유니언 잭에 들어있는 성 패트릭 십자가를 빼지 않는 것엔 그 자체로도 복잡다단한 면이 있지만 아일랜드와 끈이 이어지고 있어서일 것입니다. 아일랜드섬의 일부인 북아일랜드는 전체가 아닐 뿐 여전히 아일랜드이며 여전히 영국을 구성하는 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니언 잭의 성 패트릭 십자가를 아일랜드와 상관없이 그 북아일랜드의 국기로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과거 영국이 아일랜드를 통치할 때엔 북아일랜드에도 성 패트릭기가 펄럭이고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북아일랜드의 국기
그런데 여기에 또 반전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월드컵 축구나 PGA 골프 대회에서 보듯이 오늘날 북아일랜드는 성 패트릭기를 국기로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북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골프 선수인 로리 맥길로이 옆에 뜬 국기는 성 패트릭기가 아닙니다. 잉글랜드의 성 조지 십자가에 왕관과 손바닥이 보이는 디자인의 그 기는 '얼스터기'라 불리는 국기입니다. 얼스터는 아일랜드섬에서 북아일랜드가 속한 지역의 이름입니다. 그 얼스터 주민들이 사용하던 지역의 기를 지금 북아일랜드는 자국의 국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 복잡해지는 영국의 국기 이야기입니다.
얼스터 지역의 지방기였으나 북아일랜드의 국기가 된 얼스터기
하지만 지금도 북아일랜드 국기에 대해선 설왕설래 말이 많습니다. 뿌리 깊은 종교 문제 때문입니다. 잉글랜드가 아일랜드에 개신교인 성공회 신도를 가장 많이 이주시킨 지역이 북아일랜드인 얼스터 지방이고, 그들이 지배층이라 성 조지 십자가가 들어간 지역 깃발이 만들어진 것인데, 그곳엔 본래 아일랜드 사람인 카톨릭교도가 더 많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북아일랜드의 공식기인 그 얼스터기마저 거부하는 주민이 많은 상태입니다. 게다가 북아일랜드엔 가까운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한 장로교도들도 많이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장로교는 1560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된 개신교입니다. 북아일랜드엔 분포로 보면 카톨릭교도 42.3%, 장로교도 16.6%, 성공회교도 11.3%로 잉글랜드계 주민이 셋 중 가장 적습니다. 이런 종교문제까지 겹쳐서 북아일랜드는 근래인 20세기 말까지도 아일랜드는 물론 본국인 영국과도 시끄러웠던 것입니다.
그래도 이번 파리 올림픽에 북아일랜드의 골프 영웅 로리 맥길로이가 왜 영국기인 유니언 잭도 아니고, 북아일랜드기인 얼스터기도 아닌 삼색의 아일랜드기를 가슴에 달고 아일랜드 국가 대표로 출전했는가는 의문이 남습니다. 통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는 타국의 국가대표로 출전한 것입니다. 역시 일전에 이곳에 쓴 <올림픽 때만 나타나는 나라 GB>에 그 사연이 들어 있습니다.
UK, 유나이티드 킹덤의 국기
이제 말은 많지만 영국 국기인 유니언 잭(Union Jack)이 드디어 완성되었습니다. 잉글랜드가 1707년 스코틀랜드를, 1801년 아일랜드를 통합하며 국기에 국기를 더해 순차적으로 만들어진 통일의 국기입니다. 그 국기는 UK뿐만이 아니라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도 보았듯이 GB(Great Britain)의 국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유니언 잭은 과거 대영 제국(British Empire)의 국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바탕 컬러가 스코틀랜드의 하늘을 상징하는 스카이 블루가 아닌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했던 대영 제국답게 바다를 상징하는 네이비 블루로 진하게 변형된 듯합니다.
유니언 잭의 잭(Jack)은 당시 배에 앞에 달던 국적 식별을 위한 깃발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렇게 피아를 구분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지만 깃발을 꽂으면 자기 땅이 되는 시대였기에 국기의 용도는 선박이 가장 많았을 것입니다. 영화 <카리브해의 해적> 시리즈에서 주인공인 조니 뎁이 연기한 선장의 이름이 잭 스패로우인 것도 이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유니언 잭은 유니언 플래그(Union Flag)라고도 불립니다.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을 배경으로 한 유니언 잭의 행렬. 의회 개원식 날(2024. 7. 17)이라 거리에 많은 국기 게양. 앞의 동상은 윈스턴 처칠
웨일스의 국기
그런데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니언 잭에 한 나라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UK를 구성하는 4개국 중 웨일스는 유니언 잭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웨일스의 역사와 그 국가 지위와 상관이 있습니다. 브리튼섬 잉글랜드 서쪽에 위치한 웨일스는 1542년 헨리 8세 때 완전히 병합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인 13세기 말부터 편입된 상태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처럼 독립 국가의 신분으로 법에 의한 통일이 아니라 무력으로 완전히 복속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에도 잉글랜드와 지난한 투쟁을 벌인 것인데 웨일스 출신인 헨리 8세인 아버지인 헨리 7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고 튜더 왕조를 열면서 이전보다는 저항이 수그러들었습니다.
하지만 영어와는 전혀 다른 토착어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다른 민족, 다른 국가이기에 웨일스인의 민족 감정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또 역시 일전에 쓴 <올림픽 때만 나타나는 나라 GB> 글에서 소개한 유명 축구 선수 라이언 긱스의 일화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유니언 잭엔 빠졌지만 웨일스의 국기엔 잉글랜드에 대한 저항감이 들어있을 정도입니다. '레드 드래건기'라 불리는 붉은 용이 그려져 있는 깃발입니다. 과거 그 붉은 용이 하얀 용과 싸워 이겨서 국기로 삼은 것인데 그 하얀 용은 잉글랜드를 의미합니다. 이렇듯 웨일스의 국기엔 UK의 다른 3국과는 달리 십자가가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사용되는 국기엔 십자가가 들어있습니다. '성 다윗 십자가(St Dewi's Cross)'가 들어있는 '성 다윗기'입니다. 성 다윗은 UK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자국인 웨일스 출신의 수호성인입니다.
붉은 용이 들어있는 웨일스의 레드 드래건기
웨일스 vs 잉글랜드
웨일스 역시 로마인에 의해 쫓겨간 켈트족이 조상인 나라입니다. 웨일스(Wales)는 이방인이란 어원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만큼 잉글랜드의 주류인 앵글로색슨족과는 거리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특이한 것은 웨일스의 국가 지위는 왕이 다스리는 왕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나코처럼 공작이 다스리는 공국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웨일스는 공작 지위인 왕세자가 다스립니다. 왕세자의 영토인 것입니다.
현재 영국의 왕인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현재 왕세자인 윌리엄의 공식 직함은 웨일스의 왕자(Prince of Wales)입니다. 지금 그의 부인 케이트 미들턴도 그렇지만 과거 다이애나 스펜서도 이혼 전 공식 직함은 웨일스의 왕자비(Princess of Wales)였습니다. 왕국의 지위를 받지 못하는 이런 부분에 있어서도 웨일스인은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웨일스는 유니언 잭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일찍부터 잉글랜드 안에 포함된 국가로 간주되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웨일스는 공국에서 왕국으로의 격상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와 동등한 지위를 갖고픈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유니언 잭엔 그들의 붉은 용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1국가 4나라인 영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의 지도 (출처, maps of world)
콘월 vs 잉글랜드
이렇게 해서 다 된 것 같지만 영국엔 우리가 잘 모르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부록과도 같은 영국의 나라와 국기 이야기입니다. 런던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의 서남부 끝 길쭉한 반도엔 뿔 모양의 나라가 하나 더 있습니다. 위의 지도에 별도로 레드 마킹한 지역 왼편입니다. 그곳은 뿔을 닮았다 해서 콘월(Cornwall)이라 불리는 나라입니다. 인구 54만 명의 소국으로 수도는 트루로입니다. 콘월은 전부터 중앙 정부에 그들의 국가 지위를 올려달라고 청원하고 있습니다. 왕국까진 아니지만 UK를 구성하는 다섯 번째 국가로 포함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정서적으론 웨일스와 비슷해 과거 그곳은 웨스트 웨일스라 불렸습니다. 그래서 국기도 웨일스의 비공식기인 성 다윗기의 십자가 색깔만 다릅니다.
콘월 사람들은 잉글랜드 사람을 가리켜 포리너(foreigner)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서로 이방인과 외국인으로 부를 정도로 정서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콘월 역시 웨일스처럼 공국으로 그 나라는 왕세자의 영토로 되어 있습니다. 지역 특산품을 진상해도 왕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왕세자에게 합니다. 그래서 프린스 오브 웨일스인 영국의 왕세자는 콘월 공작이란 직함도 하나 더 가지고 있습니다. 찰스 3세도 왕세자 시절엔 그렇게도 불렸고 그때 그와 사실혼 관계인 카밀라 파커 보울스는 콘월 공작부인이 공식 직함이었습니다. 물론 그녀는 정실이었던 다이애나 스펜서처럼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영국 왕가의 장남은 훗날 왕위가 보장됨에도 왕자 시절엔 웨일스와 콘월 공국의 군주로 재산권을 가집니다. 왕족이나 귀족의 차남들은 영지 상속을 못 받아 과거엔 전쟁이나 결혼을 통해 그들의 영지를 만들었습니다. 새로 개척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차남인 해리스 왕자가 왕실에서 뛰쳐나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재미있는 나라 영국입니다.
성 다윗 십자가가 들어있는 콘월의 성 다윗기. 웨일스의 비공식 국기인 성 다윗기는 십자가 컬러가 노란색임.
유니언 잭 포에버..
보듯이 영국(UK)은 역사적으로 순차적인 통합 과정을 거치며 오늘날과 같은 4개국의 통일 국가가 되었고 그에 따라 국기도 변천사를 거쳐왔습니다. 유니언 잭은 잉글랜드의 성 조지기에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루기를 더했고 거기에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기를 더한 디자인으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웨일스의 레드 드래건기는 자격 미달로 유니언 잭에 들어올 수 없었고, 북아일랜드의 얼스터기는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오늘날엔 빠져야 될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기는 여전히 유니언 잭에 머물러 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그것 대신 얼스터기 디자인이 더해져야 할 것입니다. UK의 제 5의 나라인 콘월은 여전히 논외입니다. 그런데 현재 UK의 구성국 중 어느 한 나라가 독립하게 되면 그 나라의 국기는 유니언 잭의 디자인에서 빼야 하는지요?
예를 들어 브렉시트로 다시 점화될 뻔한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이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요즘은 그래도 잠잠해졌지만 만약 그 나라가 독립하면 그들의 성 앤드루기가 유니언 잭에서 빠져야 하는가입니다. 아마도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덧셈으로 만들어진 유니언 잭이니 뺄셈도 가능하단 것입니다. 아일랜드의 성 패트릭기는 특수한 이유로 그대로 유니언 잭에 머물러 있지만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루기는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요. 유니언 잭에서 그들의 하얀 십자가는 물론 파란 하늘까지 빼서 갖고 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통합을 강조한 유니언 잭의 이름도 퇴색해 이름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아, UK와 GB란 국가명도 만찬가지이겠네요. UK보다 GB가 더 심각해 보입니다. 끝나도 재미있는 영국의 국기 이야기입니다.
뺄셈) 만약 스코틀랜드가 UK, GB에서 독립할 경우 예상되는 영국의 국기
덧셈) 웨일스인들이 희망하는 가상의 유니언 잭. 그들 국기의 심벌인 레드 드래건이 들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