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완료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발행' 버튼을 눌렀습니다. 앗! 그런데 큰일 났습니다. 당장은 발행되지 말아야 할 글이 올라간 것입니다. 부리나케 '휴지통' 버튼을 누릅니다. 일단 삭제가 최우선 미션이기에 그렇습니다. 미션 클리어!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렇게 휴지통에 들어간 글은 어디에도,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시 꺼내서 손을 봐야 하는데 없는 것입니다. 브런치(스토리) 사이트를 다 헤매고 다녀도 좀 전에 사용했던 휴지통은 보이지 않습니다. '발행 취소 글'에 가면 있을까 싶었는데 거기에도 그 글은 없습니다. 휴지통에 넣는 순간 바로 소각장으로 가서 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슬기로운 활용법은 휴지통을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실수를 하든 어떻든 쓸 일이 없는 게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곳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대부분의 브런처님은 휴지통 기능을 사용한 적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일단 휴지통을 사용한다는 것은 쓴 글을 버리는 것이기에 유쾌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시간을 들이고, 심혈을 기울이고, 몇 번이나 쓰고 지우고를 반복해서 생산해 낸 글을 삭제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그런 글은 통상적으로 작가의 창고 역할을 하는 '작가의 서랍' 안에 넣어둡니다. 그 안에서 익든지 썩든지 신경 안 쓰고 놔눠도 되니까요. 공들여 쓴 글을 애써서 버릴 이유가 없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불현듯 생각이 나면 서랍 아래쪽에 밀려있는 그 글을 열어서 다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엔 불만족스러웠던 그 글이 다시 보니 만족스럽습니다. 그러면 발행을 누릅니다. 아니면 여전히 미완성으로 보이는 그 글에 정성을 더해 완성에 이릅니다. 서랍에 넣었을 땐 생각 안 났던 글의 길이 그 사이 술술 뚫려 생각대로 글이 잘 써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서랍에서 숙려의 시간을 보낸 글들도 발행이 되면 그제사 브런치를 찾아오는 이 세상 모든 독자들에게 전달이 됩니다. 진정한 미션 클리어입니다.
물론 아무리 생각해도, 몇 번을 들여다봐도 써놓은 어떤 글이 마음에 안 들어서 휴지통으로 향할 수는 있습니다. 바로 버리든, 저장했다가 버리든 말입니다. 그리고 써놓은 글의 용도나 유통 기한이 지나서, 또는 말 못 할 사적인 이유로 써놓은 글을 버려야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아니면 그간 머물렀던 브런치와 이별하기 위해 써놓은 글을 모두 비우고 무의 상태에서 떠나가는 브런처도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특별해 보이는 경우입니다. 그런 브런처와 글에겐 휴지통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그러라고 설치해 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브런치의 휴지통엔 위와 같이 자의적으로 버려진 글만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온전하게 발행이 되어 이 세상 독자들에게 가야 할 글도 번지수를 잘못 찾아 들어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휴지통엔 휴지가 들어가야 하는데 때론 돈이나 금도 들어가 TV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브런치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 휴지통이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마치 신화시대 제우스가 만든 밑도 끝도 없는 지하 감옥인 타르타로스처럼 다시는 세상으로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주말 저는 4년 넘게 이곳 브런치에 글을 써오며 가장 황당한 일을 당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무심코 급한 마음에 휴지통 아이콘을 클릭한 것입니다. 4년 만에 처음 사용한 휴지통이었습니다. 브런치엔 휴지통이 두 군데에 있습니다. 서랍 안에 저장한 글 제목 위에도 있고, 발행해서 전시된 글 제목 위에도 있습니다. 저는 발행에 있는 휴지통을 클릭했습니다. 발행해서는 안 될 글을 발행했기에 화들짝 놀라서 누가 볼세라 저도 모르게 재빨리 휴지통으로 보내버린 것입니다. 본래 발행해야 할 글이 아닌 다른 글을 발행했기에 그렇습니다.
그런 실수가 일어난 것은 두 글의 제목이 똑같아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9/21) 지금은 정상적으로 올라와있는 <프리덤 에버랜드 스코틀랜드 - 상>편에 이어지는 <프리덤 에버랜드 스코틀랜드 - 하>편을 착각하고 먼저 발행해버린 것입니다. 거의 토요일마다 저는 인문교양과 관련한 글을 정기적으로 브런치에 올리고 있는데 이번 토요일(9/28)에 발행되어야 할 글이 지난 토요일인 21일 발행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사진 작업은 안 되어있어도 글은 거의 완성되어 있던 <하>편이었습니다. 원고지로 치면 40~50장 분량의 긴 글이 휴지통을 누른 순간 날아가 버렸습니다.
9/21 휴지통에 넣어서 날아간 글
9/21 윗글을 삭제하고 바로 정상적으로 올린 글
참담했습니다. 그래도 브런치 사이트 어딘가에 있겠지 하고 아무리 찾아 헤매도 그 휴지통 안의 글을 확인하는 안내 글이나 아이콘은 없었습니다. 일단은 '발행 취소 글' 항목이 있어서 그곳에 있겠지라고 생각해서 가봤지만 그곳은 깨끗이 비어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발행 취소 글은 자물쇠 아이콘과 연결된 글이 모여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탈을 통해 검색해 봤더니 예상대로 휴지통으로 고통을 겪은 브런처들의 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휴지통에 한 번 들어간 글은 브런치 어디에도 없다는 글들이었습니다. 포탈이든 , sns든 브런치와 똑같이 생긴 그 휴지통 아이콘에 글이든 이미지든 그것을 버리면 휴지통 안에 내용물이 일단은 보관이 되고 어느 시점 소거되는데 브런치는 넣는 순간 바로 사라지는 것입니다. 스팸 처리도 아니고, 가벼운 결과물도 아니고 심혈을 기울여 쓴 글이 들어가는 휴지통인데 아쉽게도 그 순간 분해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참담하기도 하고 이해도 잘 안 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브런치 홈페이지 하단에 있는 '고객센터'에 메일로 문의를 하였습니다. 포탈에 올라와있는 경험자들의 글엔 그것까지는 시도한 것 같지 않아서 확인차 문의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지난 주말 과연 휴지통으로 들어간 그 긴 글을 다시 써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가지고 고민을 했습니다. 브런치 고객 센터에서 휴지통에 들어간 제 글을 수거해서 본래 있었던 제 서랍으로 보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긴 글을 다시 쓴다고 생각하니 현기증이 나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주말이라 담당자에게 전달이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다시 불안한 마음이 밀려왔습니다. 다음 글을 예고까지 한 상태에서 회수와 복원이 불가능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기다리고만 있다가는 시간만 날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조급한 마음이 더 컸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독이고 다시 복기해서 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주말 내내 꼬박 집 나간 자식과도 같은 그 글을 부활시켰습니다. 28일에 발행될 글입니다.
'프리덤 에버랜드 스코틀랜드 <상>' 끝에 예고한 다음 글
그러면서 주변에 IT에 정통한 후배에게 문의를 하였습니다. 그는 그것은 서버의 운용 문제인데 생존 가능성을 반반으로 보았습니다. 휴지통까지 저장할 정도의 서버를 운용하고 있다면 일정 기간 동안은 살아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저는 휴지통의 제 글은 회수와 복원이 불가능하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기능까지 있다면 브런치에 그런 안내문이나 아이콘이 있을 텐데 없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절반은 포기를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은 편해졌습니다. 어쨌든 시작은 저의 실수였으니까요.
이번 주초 날이 밝자 고객센터에선 답이 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유감을 표하며 더 좋은 브런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도 함께 왔습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답이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제 입장에선 생사 여부를 모르는 휴지통의 제 글을 위해 최선을 다해 알아본 것이고 브런치 관계자들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테니까요.
저장된 글은 '발행' 단추 바로 옆에 '휴지통' 단추가 있습니다. 발행된 글은 연필 아이콘의 '수정' 단추 바로 옆에 '휴지통' 단추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보면 매우 좁은 사이입니다. 저처럼 다른 이유로 휴지통을 누르는 경우도 있겠지만 정상적인 글이 화면을 잘못 눌러서 휴지통으로 가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발행'을 누른다는 것이, '수정'을 누른다는 것이 잘못해서 휴지통이 눌러질 수도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러니 휴지통을 조심해야 합니다.
언급했듯이 가장 슬기로운 휴지통 활용법은 역설적으로 이래저래 안 가는 게 상책입니다. 발행하지 말았어야 할 글을 의지와는 상관없이 잘못 발행했을 경우는 저처럼 당황하거나 이성을 잃지 말고 일단 복사부터 해서 서랍에 다시 저장해 놓고, 그러고 나서 휴지통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사라진 그 글을 그 사이 몇 분의 독자가 본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분들께는 죄송하겠지만 그만큼 내가 인기있는 작가구나라고 마음 편히 생각하면 됩니다. 저는 인기도 별로지만 그 글을 빛의 속도로 너무 빨리 버려서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언젠가 브런치에 휴지통 회수와 보관 기능이 만들어진다면 그땐 휴지통 활용법이 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