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턴은 앨버타주의 주도이다. 10,000여 명의 우리 교민들이 살고 있고 ‘캐나다의 창고’라고 불릴 만큼 무한한 자원을 가진 앨버타주 곳곳의 개발을 위한 인력과 장비 등의 전진기지이기도 하다. 에드먼턴에서 방사선형으로 뻗은 동서남북의 길을 따라 각종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국사람들이 군데군데 박혀있다. 앨버타주의 대 평원을 운전할 때, 바다 같은 지평선 끝의 교차로에 외딴 주유소나 모텔이 작은 점처럼 보이면 그 주인은 어김없이 한국사람이다.
겨울엔 영하 30도를 밑돌고 눈폭풍이 불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곳이지만 석유와 천연가스등 자원개발을 위해 오가는 기업과 사람들을 대상으로 모텔, 세차장, 슈퍼, 음식점, 심지어는 세탁소 같은 업종으로 이민생활의 성공을 꿈꾸고 있다. 나는 많은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 중 이런 외진 곳에서 직접 몸을 던져 사업하는 중국, 일본, 대만이나 동남아, 유럽 사람들을 본 기억이 없다. 어떻게 유독 한국사람만이 이런 어려움과 외로움을 견디어내는 강인함을 지녔을까.
에드먼턴에서 내가 일하는 곳까지는 28번 도로를 타고 세 시간 정도를 운전해야 하는데 길이 멀다 보니 중간거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서 기름을 넣고 잠시 쉬게 된다. 이곳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허허벌판의 외딴 주유소인데 지날 때마다 머리에 빨간 수건을 질끈 동여맨 한국 할아버지와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무표정한 얼굴로 일하는 것을 보게 된다. 나도 언제나 갈 길이 바쁘다 보니 쉽게 대화할 기회가 없었는데 눈이 퍼붓던 어느 날, 그날따라 할아버지가 심심했던지 주유를 하고 계산을 끝내고 나가려 하는 나를 잡아끌어 뜨거운 커피를 권하는 바람에 난로가에서 같이 앉아 불을 쬐게 되었다.
늘 궁금했던, '이마를 동여 맨 빨간 수건이 노조운동가인 줄 알았다'는 내 농담에, 오랫동안의 편두통 때문이라고 했고 가끔 주유하며 지나가는 나를 눈여겨봤다는 얘기도 했다. 우리가 불 쬐며 얘기하는 모습을 본 할머니도 우리 옆에 자리하고 앉았다. 막상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어보니 무뚝뚝한 인상과는 달리 마치 고향 선배처럼 자상하고 편안했고 이름은 Kim이라고 자기소개도 했다.
잠깐 동안의 대화였지만 그가 말한 여러 작은 조각들을 맞추어보니 또 하나의 인간승리 스토리가 내 눈앞에 있었다. 한국의 유명기업 젊은 직장인이었던 그는, 결혼 후 얻은 아들이 장애가 있는 것을 알고 절망했다. 당시에는 국가나 사회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기대할 수 없음은 물론, 주변의 눈총과 기피, 따돌림을 각오해야 하며 온갖 어려움을 딛고 아이가 성장한다 해도 아무런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그는 아이를 위해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장애인에 가장 관대하다는 캐나다에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한인으로는 거의 최초로 에드먼턴에 정착했고 정착한 얼마 후, 당시에는 한적한 시골길이었을 28번 도로의 조그만 주유소를 인수해 오늘까지 일하고 있다. 다행히 공부에 뛰어났던 아이는 힘든 부부의 기쁨이 되었고 장애를 안고서도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를 나와 결혼도 하고 런던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부부는, 아들의 결혼 후, 두 번인가 옥스퍼드를 다녀왔고 가 있는 동안, 바쁜 아들 대신 영국인 며느리가 미리 선물도 준비해 놓고 시내 안내도 해 주었다며 특히 손주가 너무 예뻐 늘 보고 싶다며 말을 보탰다. 내 부탁에, 할머니는 옥스퍼드 거리와 아들의 가족사진을 가져와 보여주었는데 내 눈에는 그 사진들이 마치 할머니 부부의 힘을 솟게 하는 발전기처럼 보였다.
70이 훌쩍 넘은 부부는 40년 전 이민 와서 30년째 종업원 없이 부부 24시간 맞교대로 일하고 있었고, 이 황량한 혹한의 벌판에서, '힘들지는 않은지, 무섭지는 않은지, 이제는 다 이루었는데 왜 아직도 이런 힘든 일을 하는지' 같은 질문은 소용이 없었다.
나는 옥스퍼드 아들을 얘기하는 할아버지의 마르고 주름진 얼굴에 자랑과 행복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고 다시 손님을 맞으러 일어선 할아버지와 헤어져 나오며, 혹시 한국인의 강인함과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억척스러움은, ‘지독한 교육열’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비록 당신들은 못 배웠어도 아이들만큼은 몸이 부서져도 대학에 보내야 하는 게 우리 부모들이었다. 그런, 세상 어디에도 없는 교육열 덕분에 작고 가난했던 우리나라는 우뚝 커져가고 있다. 어느새 어두워진 밖엔 눈보라가 더 거세지고 있고 그 새 기온이 많이 내려간 이 밤길을 아직도 두 시간 더 가야 한다.
옥스퍼드 할아버지가 가득 따라준 커피가 차 안 가득히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