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번 하이웨이의 전설

by 육동녕

카나다 에드먼턴의 앨버타 주립대학을 다니던 한 가난한 한국인 이민자의 아들은 학비를 벌기 위해 긴 겨울 방학 동안 시골 주유소의 헬퍼로 일을 하고 있었다. Smoky lake는, 동네는 작지만 에드먼턴에서 Cold lake까지 300km 거리의 28번 하이웨이 중간지점이고 작은 교차로도 있어 기름을 넣거나 잠시 쉬어가기 위한 차들로 제법 붐비는 곳이다.


헬퍼의 일은, 운전자가 밖에 나오기 꺼려하는 추운 겨울날, 손님 대신 주유를 해 주거나 그밖에 주차장의 눈 청소나 주인의 심부름, 또는 주유소에 딸린 작은 슈퍼의 물건 정리 같은 것이었는데 그러나 이런 시간제 일로는, 대학으로 돌아갈 학비와 생활비가 충분치 않았고 일손이 아쉬운 주인의 권유도 있어 아예 휴학을 하고 1-2년 고정으로 일을 하기로 한다.


이곳 겨울 추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를 밑도는 추운 날은 오줌을 누면 금방 얼어붙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이름이 '피터'인 그는, 주유를 하는 동안 차의 앞유리에 얼어붙은 얼음도 긁어내 주고 따뜻한 커피도 주문받아 차로 넣어주면서 장거리 여행에 지친 단골 운전자들과 얘기도 나누는 등 이 주유소의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갔다.


어느 날, 이곳을 늘 지나다녀 낯익은 한 백인 노인은 피터가 그의 차에 주유하는 동안 피터에게, 28번 하이웨이의 끝에 있는 Cold lake시의 자기 집에 '한번 놀러 오라' 고 말을 던졌다. 노인 스티브의 집을 방문한 피터는 스티브의 권유를 받아들여, Cold lake시에 있는 스티브의 작고 낡은 모텔의 매니저로 일을 시작하게 된다.


동네에서 가장 오래되고 장사도 안 돼 폐점을 고민하던 스티브의 모텔은 피터가 매니저일을 맡고 난 뒤, 피터의 의욕에 찬 개선 노력과 특유의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영업이 전보다 활기를 띄어갔다. 모텔 일을 하면서 피터는 대학에 돌아가길 포기하고 은행과 고객, 지역사회의 다양한 인사들과 끊임없이 접촉하면서 사업 세계와 경영에 눈을 뜨고 일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피터가 오기 전, 몇 년 동안이나 이 영업 부진한 낡은 모텔을 팔기 위해 애써왔던 노인 스티브는 심장병의 악화로 마침내 은퇴를 결심하게 되었고 성실성과 경영능력을 눈여겨 지켜보며 그동안 믿음이 쌓인 피터에게 모텔을 인수할 것을 제안하게 되었다.


모텔의 가격은, 돈이 있을 리 없는 피터가 감당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지만 이를 알고 있는 스티브가 제시한 것은 최소한의 계약금과 명의이전 후 5년 분할 조건이었다. 스티브는 목돈 대신, 일에서 물러나 건강관리에 전념하면서 매년 일정한 큰 수입과 편안한 노후를 생각했고 피터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분할해서 갚을 자신이 있으니 서로 좋은 조건이었다.


모텔을 인수한 피터는 모텔 경영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기획하여, 잘 쓰이지도 않던 큰 회의실을 연회장으로 바꾸고 건물 끝에 판자를 이어서 큰돈 안 들이고 방을 증축하는 외에 마진 좋은 술 판매면허도 따서 모텔 바깥편에 리커스토아도 문을 열어 때마침 불어닥친 오일 타운의 중국 특수와 함께 모텔은 하루가 다르게 번창해 갔다.


피터의 행운은, 모텔 인수 당시 모텔에 딸린 땅이 2 에이커나 될 정도로 크다는 점이었다. 성장을 자신한 피터는 그동안의 사업성과와 자산을 담보로 은행 지원을 받아 50여 개였던 방을 방 200개, 연회장 6개의 대형 호텔로 확장시키고 유명 프랜차이즈의 간판도 달았다.


과거, 모텔의 한 구석에 있던 리커스토어도 건물 전면에 별도 동을 지어 배치하고 나니 시의 입구에 자리한 피터의 Hotel은 마치 큰 성과 같은 모습으로 호텔 숙박뿐만 아니라 결혼, 가족모임, 시 주관 행사 등 이제는 모든 주민이 이용하고 싶어 하는 시의 트렌드 마크가 되고 있었다. 내가 50km 떨어진 Cold lake시로 Peter를 찾아 그를 처음 만난 건 그의 호텔이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 멀쩡한 중고가구와 침구를 싼 값으로 인수하러 갔을 때였다.


피터의 부모님은 모두 피터가 어린 시절에 일찍 돌아가셨고 대학에서 만나 늦게 결혼한 중국인 부인과 돌쟁이 딸 외에 캐나다에는 다른 가족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를 따라 이민오는 바람에 한국 말을 전혀 못하는 피터는 한국음식도 별 기억이 없다. 저녁식사로 버터 바른 빵을 씹고 있는 피터가 불쌍하다며 아내는 두어 번 김치를 담아 나눠주었고 나는, 만나면 이런저런 한국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피터는 그게 고맙고 좋았던 모양이다.


차로 1시간 걸리는 우리 모텔에 예고도 없이 불쑥 와서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내 옆에 한참을 앉아있기도 했고 가끔 그의 집으로 우리를 불러 맥주를 나눠 마시기도 했는데 말수도 없는 데다 잘 웃지도 않아 늘 외로워 보였고 어쩌다 전화를 걸어올 때면 별 용건도 없이 내 얘기를 기다리기만 한다. 내 생각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 부부는 피터가 만나는 유일한 가족이다.


어느 가을날, 피터가 밴쿠버를 온다는 소식에 우리는 바빠졌다. 피터의 처가는 밴쿠버 리치먼드 지역에 있는데 피터는, 결혼 후 처음 처가를 찾는다면서 그 다음날에 처가 식구들과 우리 집에 와도 괜찮은지 물어왔다. 캐나다에서 혈혈단신이라 따로 갈 곳이 없는 피터는 처가 식구들에게 우리를 소개하고 싶었나보다. 오후에 도착한 피터와 대 가족인 처가 식구들을 우리는 반갑게 맞았고 아내가 한국음식으로 준비한 저녁식사를 하며 활짝 웃는 피터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을 모르고, 성공하고 있지만 기뻐해 줄 사람이 없는 피터는, 혹시 우리를, 언제나 찾아도 좋은 고향 선배나 편안한 친척 형님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둘 사이에 따로 오간 말은 없었다. 다음 해, 피터는 혼자서 다시 밴쿠버를 찾았고 우리는 별 얘기도 없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도시 주변을 종일 운전하며 다녔다. 혹시 피터는 나를 보러 일부러 그 먼 길을 왔던 건 아닐까.


2021년 8월, BC주의 산불로 우리부부는 예정했던 록키 캠핑을 포기하고 앨버타주로 차를 돌렸다. 원유값 하락과 최근의 코로나 상황으로 수년 동안의 극심한 불경기에 앨버타주의 모든 도시들은 예전의 활기를 잃고 있었다. 우리가 모텔을 운영했던 Bonnyville시에서 한국인이 소유한 홀리데이인 호텔을 포함하여 3개의 호텔이 문을 닫은 것을 보며 우리는 인접 Cold lake시의 피터가 걱정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피터는 망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사업을 확장해가는 중이었다.


내가 들은 피터의 사업유지 비결은 단순했는데, 그것은 재정에 대한 확고한 원칙이었다. 그는 지난 25년 동안 최소한의 정해진 급여 외에는 소유한 여러 호텔의 재정에 전혀 손을 댄 적이 없어 법인마다 막대한 유보금이 쌓여있고 따라서 은행과의 신뢰도 굳건하다. 이렇게 법인의 경영과 소유가 분리된 운영방식은 대부분의 한국인 사업체 소유주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경우이다.


무엇이든 원칙을 지키면 안전하다는 논리는 기업경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피터는 위기에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의 불황을 기회로 여겨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호텔이나 몇몇 유망한 지역 사업체에 대한 인수작업도 진행 중이었는데 이는 마치 헐값으로 좋은 사업체를 고를 수 있었던 우리의 IMF 시기를 보는 것 같았다.


에드먼턴 교민사회에서는, 무일푼 아르바이트생에서 이제는 여러 개 거대 호텔 체인의 주인이 된 피터를 '28번 하이웨이의 전설'이라고 부르지만 같은 기회가 왔어도 누구에게나 결과가 같았을까.

망하면 어쩌나 하는 새가슴으로 일찌감치 사업을 정리하고 돌아와 몇 년째 손바닥 텃밭에 매달리는 나에게 아직도 그의 용건 없는 전화가 온다.



사업은 커져가고 있고 외로움은 어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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