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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욱 Mar 06. 2021

청국장찌개

1.

난 국물 요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국물 요리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물배를 채우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국물을 많이 마시는 건 꺼리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청국장은 건더기가 많아서 좋다. 어렸을 땐 청국장 특유의 고약한 냄새가 싫어서 잘 먹지 않았는데, 크고 나니 그 냄새에도 익숙해져 있었다. 요즘 나오는 청국장은 예전처럼 냄새가 심하지 않은 덕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겨울이면 뭔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를 듣고 싶게 되니, 그때 청국장만한 것도 없다.


청국장을 이용한 퓨전 음식도 속속 나오고 있지만 역시 청국장의 기본은 찌개다. 조리하는 방식은 된장찌개와 유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청국장찌개엔 보통 김치를 넣고 소금도 조금 친다는 정도이다. 소금을 치는 이유는 (된장과 청국장의 제조 과정 차이로) 된장과 달리 청국장엔 소금이 그다지 함유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트륨 과다 섭취의 주범으로 지목된 된장과 가장 비교되는 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청국장찌개라고 해서 꼭 소금을 첨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김치와 간장으로 짠맛을 조절할 수 있다. 예로부터 청국장에 김치를 넣어온 이유가 명확하진 않은데, 아마도 청국장이 된장에 비해 짜지 않기 때문에 김치로 짠맛을 더하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2.

청국장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조선과 청나라의 전쟁 중에 청국장이 국내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설이다. '청국'은 청나라를 뜻하고 청국장의 또 다른 이름인 '전국'은 전쟁하는 나라를 뜻하므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의 군사 식량으로 쓰이던 이 음식이 청국장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퍼지게 되었다는 추정이다.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이 국명을 청(淸)으로 바꾼 것은 1636년 4월이고 병자호란이 일어난 것은 1636년 12월이므로 일견 일리 있는 생각으로 보인다. 또한 청국장과 비슷한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는 조선의 첫 서적인 <산림경제>***가 17세기 후반쯤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바, 이 역시 그즈음 청나라를 통해 청국장이 들어온 것을 뒷받침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 역시 일리가 있다. 


하지만 훗날 후금을 세우는 여진족과의 교류 및 다툼은 고려시대에도 종종 있었다. 따라서 몇 백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뒤에야 병자호란을 통해서 청국장이 조선에 알려졌다고 가정하는 건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여진족 역시 고초균의 발효콩 요리를 청나라를 세울 즈음에야 발견한 것이라고 가정해 볼 수도 있지만 하나의 가설을 위해 또 다른 가설을 세우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또 당시는 음식에 관한 서적이 많지 않았으므로 <산림경제>에 처음 소개된 요리가 바로 그즈음에 생긴 것이라고 단정짓기가 어렵다. <음식디미방>****, <경도잡지>, <규합총서>, <임원십육지>처럼 조리법을 설명하는 서적들은 대부분 17세기 이후에야 급격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16세기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리서는 현재까지 단 4권에 불과하다. <산림경제>와 <증보산림경제>에 '전국장'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그 조리법이 청국장과 비슷한 것은 분명하므로, 단순히 발음이 전국장에서 청국장으로 변화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청국장'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조리법만큼은 '시'라는 용어에 기초한 고구려 기원설에 (적어도 국내에서는) 무게가 실리고 있다.***** 



3.

어쨌거나 저쨌거나 삶은 이론이 아니라 실전이 주가 되어야 한다. 특히 그게 음식이라면 더욱더. 그렇지 않으면 남산 묵적골 오막살이집에서 푸념이 쏟아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먼저 멸치 육수를 만든 뒤 끓기 시작한 육수에 청국장 150g을 개어 넣었다. 물이 다시 끓자 국간장, 다진 마늘, 고춧가루 반 숟갈, 양파, 애호박, 배추김치 적당량을 넣어 더 끓였다. 마지막에 두부와 대파를 넣어 마무리했다.



* 1766년에 작성된 <증보산림경제>에 '수시장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전국장을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는 청국장을 만들 때 소금을 넣으라고 되어 있다. 다만 "싱겁게 해야지 짜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단서가 달려 있다. 

** 참고자료: 고농서국역총서5-증보산림경제Ⅱ (농촌진흥청 2003), 205 ~206/761 

*** '전국장(戰國醬)'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있다. 

**** <음식디미방>은 최초의 한글 조리서로 유명세를 탔다. 그러나 2015년에 <최씨음식법>이 발견되면서 그 타이틀을 넘겨주게 되었다. 

***** '시'에 관한 기술서: <삼국사기> 중 신문왕 3년, 진나라 <박물지>, 북위 <제민요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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