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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앤비 Aug 17. 2020

예수님 안에서 들여다본 여행

동쪽 바다는 주말이 되면 그 본연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적요하던 해안가는 인파로 붐비고, 그 어떤 이의 자그마한 주목조차 받지 못하던 무수한 파도는 혹독한 일상의 환란에 치여 도피한 이들의 왕성한 치유 현장이 된다. 철썩철썩 거리는 파도 속에는 어떤 규칙적인 박자나 절제된 강약 조절이 결여되어 있지만, 코를 간지럽히는 바다 내음이 곁들여진 탓에 그것은 횟집에서 기울이는 술 한잔의 맛을 고조시키는 기분 좋은 안주거리로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받는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게 흐드러진 사방의 산 능선과, 내리쬐는 찬연한 햇살을 머금은 너울거리는 짙푸른 바다와, 사람들의 갸름하거나 두터운 뺨과 턱을 연신 스쳐대는 자비 없는 동해 바람을 마주하며 그들은 힐링이 따로 없다며 행복을 찾는 듯 하지만, 이내 하루 이틀 뒤에 복귀할 생생한 현실이 떠오르며 이제 개막한 여행을 자처하여 단번에 폐막식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여행지로 찾는 그 동해는, 반대로 내 일상의 터전이다. 주말 아침이 되면 더 이상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낡은 슬리퍼를 대강 두 발에 걸친다. 잠에서 덜 깼지만 가냘픈 의식을 이끌고 몽롱한 정신을 고쳐볼 겸 마실거리를 주우러 가까운 편의점으로 종종 나선다. 그 과정에서 성이 난 듯 하늘로 마구 솟구친 머리 뭉치들과, 고요한 바다 앞에서 깊은 숙면을 취한 것을 증명하기라도 한 듯한 부은 내 면상에 변화를 주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들이지 않는다. 이 곳은 긴장감 없는 일상의 순환의 반복을 거듭하는 내 터전이기 때문이다. 하루 두 번 산책 삼아 찾는 해안가는 단조로운 일상 속에 그을려 묵묵히 닫힌 내 입가에도 환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깊은 감탄과 감상의 대상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들이 여기는 설렘 가득한 여행지는 성립될 수 없다. 이 곳은 단조롭지만 마땅히 마주해야 할 지극히 평범한 삶의 터전이고, 수입을 창출하는 근무지이며, 내 일상 대부분의 숙식을 해결하는 집이다. 


동일한 장소에서 이러한 대비되는 풍광을 마주할 때면, 예수님 안에서의 여행과 일상의 참된 의미를 늘 묵상하곤 한다. 이제는 스치기만 해도 마치 날이 선 칼날에 베인 듯한 매서운 통증을 느끼는 관계적 상처를 피해, 사회적 악폐에 맞서 성실히 몸무림을 친 끝에 깨달은 자아의 처절한 무력함을 달래기 위해, 무수한 정보와 잡음 속에서 진리와 거짓을 구별하기 어려운 혼곤함을 피해, 매연과 미세먼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 외 다양한 고통의 편린들을 겪으며 생긴 마음의 상흔을 잠시 덮기 위해서라도 여행을 떠나는 것은 필수적으로 여겨진다. 늘 넉넉하지 못한 그 짧은 여행을 통해 한주, 한 달, 일 년 동안의 일상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고, 지쳐 생기 잃은 나약한 심신에 맑은 물 한 방울 얹어 그것을 촉촉이 적실 수만 있다면 여행의 의미는 분명 충분히 설명될 것이다.  


다만, 예수는 우리의 일상이 여행지와 동일하게 설레는 현장이 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일상은 언제나 도피의 개념이고, 여행은 절대적인 힐링의 도구라는 관념에서 벗어나기 바라지 않으실까. 예수의 충만한 통치 아래서 그와 동행하는 일상은 설레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심연보다 더 깊어 측량할 수 없는 그분의 섭리와 계획이, 선택한 한 영혼을 집요하게 붙잡고 끝까지 주목하는 그 사랑이, 예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사람의 이해의 범주에 도저히 들어오거나 담을 수 없는 기이하고 신묘한 일들이 실현되는 곳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란 점을 묵상해보면 너른 바다가 주는 설렘과는 비교할 수 없는 흥분을 선사한다. 


우리는 좋은 환경에서 예수를 누리는 일은 잘한다. 이를테면, 어둠이 너울거리는 심야에 불빛이 드리워진 아름다운 아경을 보거나, 알프스 산맥처럼 자연이 주는 웅장함 안에 압도되어 있거나, 황혼을 역광으로 받으며 연출된 자연의 절경을 마주하거나, 한치의 오차 없이 스스로 흘러가는 자연 생태계의 신묘한 법칙을 다큐로 접할 때면, 우린 창조주에게 쉽게 찬사를 보내고 세상을 통치하는 예수님의 권위를 쉽게 인정한다. 그러나, 일상이란 무대에선 사뭇 다르다. 숱한 고난과 문제에 지쳐, 단조로움에 흥미를 잃어, 정체 모를 어떤 불가항력에 무기력해지어, 더딘 변화에 부족하던 인내심마저 바닥을 드러내서 힘들다. 이런 환경에서 예수를 찬양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곳에서 예수님으로 흥분과 설렘을 초청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그럴듯한 환경이 아닌, 오직 그와 관계적인 교제와 동행함이 충만할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파가 찾는 이곳 관광지는 바로 내 일상의 터전이다. 지친 심신에 힐링을 주고자 수백 킬로를 쉬지 않고 달려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을 마주하며, 미숙한 내 심령으로 예수의 마음을 묵상해 보았다. 여행을 잘 누리는 이가 일상을 잘 누릴 확률보다, 그 반대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의 기쁜 뜻을 좇아 순종하는 일을 가장 큰 복으로 여기는 이는, 일상을 예수 안에서 온전히 누리고 있을 이임에 틀림없다. 평범한 하루를 예수 안에서 소중하게 보낼 줄 아는 이는, 어떤 여행지에 머물러도 예수를 충만히 누려낼 것이다. 주님은 오늘도 내게 말씀하신다.  


‘내가 통치하는 이 곳이 천국이다. 너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내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단다. 너는 볼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너의 작은 일상 속에서 네가 연신 뱉어내는 너의 작은 순종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홀연히 드러내는 귀한 일이란다. 너와 놀라운 일을 할 것이다. 네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을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너의 터전이 여행지인 것처럼, 여행지가 너의 터전인 것처럼, 그렇게 너의 순종하는 일상이 설렘과 흥분 가득한 천국이란다. 축복한다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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