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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이정 Jul 31. 2024

나의 출세기

벽 속의 길

통하지 않음으로 곤란하고 곤궁한 것을 곤困이라 한다.

사방 벽에 갇힌 나무 한 그루가 이 상형문자의 기원이다.  오랫동안 그 나무를 생각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상한 채 나 또한 십여 년을 벽 안에 들어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렵게 회복되어 통증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자 날아갈 듯 나는 세상 속으로 바쁘게 걸어갔다. 그런데 불과 이삼 년 만에 이번에는 가족 중에 환자가 생겼다.


발걸음을 돌이켜야 했다. 돌보고 지키는 사람으로 다시 집안에 갇혔다. 암막 블라인드가 서서히 내리고 빛이 꺼져가는 광경을 속절없이 바라보았다. 터널의 시간이었다.


이번 터널의 끝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내 의지와 노력만으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잘 이겨내면 더 큰 행복을 발견하리라, 선험자들이 위로와 덕담을 건넸다. 감사한 말씀들이었으나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한없이 명랑한 성정에 활동적이던 남편마저 자주 눈물을 보이더니 시들어 갔다. 이제는 내가 버팀목이 될 차례인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역병의 환란이 덮쳐왔다. 세상 전부가 곤마困馬에 빠진 셈이었다. 재택근무로 집안에 머물게 된 남편을 포함, 가족은 각각 자신의 방에서 우울하게 침잠했다. 아틀라스 흉내라도 내고 싶었다. 단지 내 두 어깨에 단출한 내 가족을 얹었을 뿐인데도 자꾸만 숨이 찼다.


나마저 무너지면 모두가 붕괴하는 거란 불안이 점점 커졌다. '사람은 두려움에 빠져 익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혼잣말을 하던 어느 하루, 번개처럼 한 생각이 머리를 내리쳤다. “오늘만 살자!”




알고 보면 내일이란 건 영원히 오지 않는 허상이지 않은가. ‘오늘’의 밤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면 새로운 ‘오늘’의 아침이다. 그 오늘 내가 한 번 웃고 네가 한 번 웃으면 다 된 거라고 주문을 외웠다. 딱 하루만 버티자고 거울 볼 때면 소리 내어 말했다. 나는 맥락 없이 자주 웃고 가족을 웃겨주는 실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깊이 억눌러 둔 내 불안을 지지해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내가 택한 버팀의 방식은 면벽面壁이었다. 내 방 벽 앞에 책상을 두고 깨어있는 시간 대부분을 거기서 보냈다. 딸의 방과 내 방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이어 있었다. 내가 마주한 벽 너머 불과 30 센티미터 위치에 침대가 놓여 있었고 거기, 신생아로 돌아간 듯 낮 밤 바뀐 열일곱 살 그녀가 잠들어 있었다.

 

벽 앞에 웅크리고 앉아서 나는 중단했던 공부와 습작을 다시 시작했다. 내가 일어서는 것이 우리 모두를 일으키는 일이라고 믿었다. 나는 항상 거기 있었고 방문은 열려 있었다. 복도를 오고 가며 가족들은 내 등을 볼 수 있었다. 그 등이, 말로 전하지 못한 용기의 말을 가족에게 대신 말해줄 거라고 짐짓 믿었다.


困, 두꺼운 백지에 이 한 글자를 굵게 써서 벽 앞에 두었다. 네 벽 안에 갇힌 나무를 바라보며 자주 궁구窮究하였다. - 저 나무를 어떻게 꺼내야 하나. 갇혀있던 나무는 과연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


나무를 가둔 네 벽의 모양을 이리저리 다른 형상으로 그려보았다. 하루는 빽빽하게 심겨진 나무 울타리로, 다음날에 견고하게 쌓아 올린 돌담으로 바꿔보았다. 그랬더니 벽은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울타리가, 태풍을 막아주는 방파제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하루는 나무가 사람의 형상으로도 보였다. 사방에 암막커튼을 두르고 방 가운데 대자로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나도 따라 팔다리를 크게 뻗고 바닥에 누워 보았다. 우리 집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글자에는 천장이 뚫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늘은 열려있는 것이다.


시각을 바꾸었더니 나무는 갇힌 것이 아니었다. 안전한 사방 벽 안에서 곤히 잠을 자기도 하고, 하늘을 맘껏 누리며 대자로 편히 쉬는 중이기도 하더란 얘기다.


궁리를 거듭하던 어느 날엔가  마침내 <택수곤澤水困> 세 글자에까지 다다랐다. 우연히 보게 된 주역 64괘 속에도 困이 들어있었다. 역학에 과문한 나는 의미를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뜻풀이에 마음이 크게 동했다. ‘물이 연못 밑으로 빠지는 형상이니, 메마르고 황폐하다는 뜻’이라더니 급기야 ‘이 어려움 속에서 품성을 단련하면 형통하게 되어 결국은 희망을 상징하는 괘’라는 결론까지 턱 내놓는 게 아닌가.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곤란하고 곤궁하고 사방이 막힌 이 지경이 곧 희망이라니!




지리한 싸움 끝에 드디어 세상이 역병으로부터 풀려났을 때 내 손을 바라보니 새로운 학위와 등단패와 자격증들이 들려져 있었다. 오랫동안 장래희망이던 전문가의 길에도 접어들고 있었다. 본디 게으르고 상황도 몹시 부자유했던 내게 언감생심이던 일들이 아이러니하게도 갇혀있는 동안 일어났다.  역병시대가 불러온 비대면 화상시스템 덕분이었다.


벽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줌 zoom’에 접속하면 세상으로 향하는 길 하나가 열린다. 세상이 줌인 zoom in 되어 눈앞에 다가오면 나도 세상 안으로 들어간다.


줌아웃 zoom out을 해보자. 화상회의 화면에서 모든 참여자는 공평한 공간을 배정받는다. 나를 포함한 전체가 한 화면에 배열된다.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전체가 보이고 전체의 일부로 섞여 있는 내가 보인다. 세상 속에 들어간 나를 내가 보는 것이다.


내가 지킨 그녀는 서서히 호전되었다. 우리는 교대하는 두 불침번 같았다. 벽 이쪽에서 낮을 지키는 나와 벽 저쪽에서 밤을 새우던 그녀, 잠든 서로의 곁에서 우리는 각자 무엇을 지켰을까.


사람은 불편하고 아픈 채로도 살 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보는 것이 삶이라고, 내가 전해주고 싶던 말들은 벽을 통과해 그녀에게 잘 가 닿았을까.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내가 잠든 사이, 그녀가 투병과 침잠의 긴 밤을 건너 여명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 갈고닦은 일을. 어둠 속에 홀로 깨어 자신의 터널을 뚫어낸 것을.


만 오 년 만이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한 아름 들고 스물두 살의 내 아이가 세상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신 아파줄 수 없고, 대신 겪을 수 없고, 모든 바람과 파도를 다 막아줄 수 없을 나는 이제 멀찍이서 눈물겹게 혹은 눈부시게 바라보는 사람이 될 차례였다.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어른으로 살아내기로 결심한 이가 집을 떠나던  ,  짐이 나간 빈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보았다. 벽에 손을 대니 온기가 남아 있었다. 벽은 잠든 아이를 다시 키워낸 따스한 요람이었다.


온기는 내게도 왔던가. 나도 이만큼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내가 너의 울타리인 줄만 알았는데 너도 나의 울타리였구나.




줌인할 때 고통은 오로지 나만의 일이었는데  줌아웃해 보니 알게 되었다. 누구나의 삶에 어둠은 대체로 공평하게  드리운다는 것을. 주위를 둘러보니 이제 보인다. 각자의 궤적과 어둠의 농도는 다를지라도 터널을 통과한 자들의 표정은 닮아있고 비밀을 공유한 자들처럼 다정한 눈인사를 교환한다.


줌인과 줌아웃을 번갈아 하며 내가, 그녀가, 세상이 함께 겪은 곤의 시절을 생각한다.


오늘도 벽을 마주한다. 누군가를 가두거나, 앞을 막거나, 보호하거나, 품어 키워내기도 하는 벽 안에는 세상으로 가는 너른 길도 숨어 있다. 벽 속으로 길이 열리면 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나의 出.世.間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2024 봄, <계간 에세이문학> 젊은 작가 클릭클릭 특집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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