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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Aug 31. 2023

지름길



                                                                                               

   산책을 나섰다. 집 앞 자갈길을 빙 돌아 오솔길로 접어들면 철쭉의 군락을 지나 구석마다 공작단풍이 날개를 늘어뜨리고 있다. 곧게 뻗은 소나무 우듬지는 하늘 허리를 기웃거리며 구름을 희롱한다. 

   상큼한 공기가 좋아 오전에 나왔지만, 벌써 바람은 비둘기 꽁지에 햇살 내려놓고 졸고 있다. 이런 곧음과 굽음 사이의 길을 걸으며 맞은편 원형 분수대에서 내 안의 다이돌핀을 마구 자아올린다.


   기분 좋은 산책은 정오가 되어 하굣길 아이들이 재재거리기 시작하면 끝이 난다. 가댁질하는 아이들의 눈에는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세요.’란 팻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무에 세운 삼각지줏대를 뽑아다 울타리를 쳤지만, 밑으로 기어들고 위로 뛰어넘는 발길은 이미 고삐 풀린 망아지다. 질러 다닌 발자국에 짓밟힌 종종 길만 벌겋게 드러나니, 평온하던 내 마음도 어쩔 수 없이 포달지게 된다.


   지키는 사람 열이 도둑 하나를 못 당한다고 소용없는 일에 한참 진을 빼다 보면 내가 꼭 ‘B 사감과 러브 레터’ 의 그 꾀꾀한 사감 같다.

   잔디를 무참하게 밟으면서도 마음에 가책을 느낄 줄 모르는 아이들이 벌써 ‘피타고라스의 삼각형 이야기’를 읽어서, 한 변의 길이가 두 변보다 짧다는 이치를 꿰고 있어서일까. 

   유독 산책로를 아끼다 보니 훼손된 잔디밭을 보며 혼자 쩍쩍 가슴만 보타진다. 천천히 들숨날숨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니, 아이젠하워 장군의 2차 대전 후 콜롬비아 대학 총장 시절 일화가 떠오른다. 

   학생들이 경고문이 있는데도 지름길로 가기 위하여 정원의 잔디를 밟고 다니자, “처벌 학생만 양성시키는 규칙을 만들지 말고, 대신 학생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세간에 회자하는 ‘왕의 DNA 양육법'이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운동과 천재의 교육과 또래 정서 문화 사이의 간극에서 많은 논란이 제기됐었다.  김 훈 소설가의 ’내 새끼 지상주의’ 칼럼이 큰 비난과 원성이 쇄도했기에 이 문제를 들먹이는 것이 조심스럽긴 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찌 어렵고 힘든 일이 없을까. 거친 파도가 유능한 사공을 만든다고 서두르지 말고 참고 견뎌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 작은 규칙을 어기기 시작하면 커서 큰 규칙도 지키지 않을 수 있다. ‘마시멜로 이야기’의 토대가 된 마시멜로 법칙의 실험 결과도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이다. 뉴요커 지는 “단순히 마시멜로를 먹고 안 먹고의 차이가 아니라, 그들은 욕구를 조절했다.”라고 보도했다. ‘자기 통제’가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이 마시멜로 법칙의 메시지이다.  

   하긴 살아오면서 나도 지름길을 가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던가. 명예의 지름길, 부의 지름길, 출세의 지름길을 위하여 아등바등했으니 가히 진드기가 아주까리 나무라는 격이나 다를 바 없다.

      

   지름길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친한 벗에게 털어놓았더니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한다. 

   “우리 동네도 그런 지름길이 생겨서 부녀회에서 큰 돌 몇 개 놓았는데, 나도 재미가 쏠쏠해서 늘 그 징검다리로 다녀.” 

   “어머, 그렇구나.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있는 것을….” 

  징검다리를 놓아주면 죄의식 갖지 않은 아이들의 보폭에는 또 얼마나 힘이 실릴까.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인생. 마음이 편안한 삶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철야 근무 중인 별빛 달빛이 있는데, 제 그림자에 놀라 컹컹 짖으며 달아나는 강아지는 되지 말아야겠다. 

   칭찬의 말은 사람이 하지만 그 힘은 초인적이라 했으니, 징검다리 잘 건너는 고래를 춤추게 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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