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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숙진 Sep 15. 2023

물 위에 떠 있는 섬, 무섬


   태백산맥에서 이어지는 내성천과 소백산에서 흐르는 서천이 만나는 무섬마을에왔다.  산과 물이 태극 모양으로 삼면을 휘감아 도는 마을이다. 풍수로 보면 배산임수 형태에다 매화꽃이 떨어진 모습을 닮은 매화낙지(梅花落地)  또는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의 연화부수(蓮花浮水) 지형이다. 산과 내가 이루는 음양의 조화는 땅과 물의 기운으로 명성과 덕망이 높은 자손이 많이 나오는 명당으로 꼽힌다.

(무섬마을 지형 참고도)

 

   마을 입향조인 반남 박 씨와 그의 증손서인 선성 김 씨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룬 이곳은 영주 일대에서 알아주는 반촌이다. 백사장과 낮은 산이 둘러쳐진 곳에 50여 고가가 어우러져 느긋한 고향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길고양이  두 마리가 살이 포동하게 찌고 털이 윤이나서 반지르르 한 걸 보니 마을 인심이 보인다.  담장밑의 맨드라미가 정겹고,  팥 넝쿨이 예스럽다. 한약재로 쓰이는 엄나무가 담장밖에서 엄하게 집을지킨다.


 

  

 

   여기서 잠깐, 우리는 풍수지리학을 더 신봉할 것인가 아니면, 유전자에 더 비중을 둘 것인가 헷갈리기 시작한다. 무섬마을 오기 전 삼판서 고택에서도 풍수학과 유전자의 비중을 두고 갸웃했었다. 같은 집에서 판서 세 분이 나왔으니 풍수학적으로 명당임이 틀림없다. 여기서 하나 더 판서 성씨가 다 다르다 (정운경, 황유정, 김담). 유전자 DNA는 모계의 DNA가 우성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외손이 판서에 오른 증거다.


 

  

   조선조 과거 시험  잡과(雜科) 가운데 ‘명과(命科)와 지리과(地理科)’로 관리 선발된 자는 왕족의 사주와 풍수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이 제도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뒷골목으로 밀려났지만, 이 무섬이란 반촌에 와서 보니 다시금 풍수학 이론이 중요시된다. 조선조 유학자 서애 류성용의 풍수관 중에도 ‘사방에 산이 잘 에워싸고 있어 기를 모을 수 있는가 잘 봐야 한다.’ 는 조건이 있다. 또한 조선조 지관 목효지의 풍수관을 보면, 물이 깊고 맑으면, 휘돌아 굽이쳐 흐르되 오는 데 그 근원이 안 보이고, 가는 데에 그 흐르는 곳이 안 보여서 마땅히 들어올 때 들어오고 마땅히 나갈 때에 나간다면, 가위(可謂) 길(吉)한 땅이라 한다고 했다. 이런 무섬 마을과 비슷한 지형이 있다. 낙동강이 휘돌아 나가는 하회마을이다.


  

   마을을 거닐며 풍수학 생각에 커피 한 잔을 마시다가 일행을 놓치고 혼자서 그 유명한 외나무다리를 건너다본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무섬 외나무다리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롭다. 특히 꽃가마 타고 무섬에 들어와 평생을 살다 꽃상여 타고 무섬을 나가는 무섬 여인네의 삶은 애잔하다. 그 외나무다리가 주민의 균형 잡기 운동으로는 최고였다는 생각이다. 그 다리에 올라설 생각도 못 하고 벌벌 떠는 나의 모습이라니. 현대 문명을 마음껏 희롱하는 나약한 못난이가 된 기분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만죽재도 돌아보고 조지훈 처가인 김성규 가옥도 들여다 보다 보니 일행이 안 보여서 당황하여 서둔다. 입구(口)자 집이 많아서 좀 자세히 보고 싶으나 시간이 빠듯하여 아쉽다.


l

  이 마을을 배경으로 남긴 조지훈의 시 별리(別離)를 적어 본다.


                별리

                           


푸른 기와 이끼 낀 지붕 너머로

나란히 흰 구름은 피었다 지고

두리 기둥 난간에 반만 숨은 색시의

초록 저고리 당홍 치마 자락에

말없는 슬픔이 쌓여 오느니 ......


십 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데

밟고 간 자취는 바람에 밀어 가고

방울 소리만 아련히

끊질 듯 끊질 듯 고운 메아리


발 돋우고 눈 들어 아득한 연봉(連峰)을 바라보나

이미 어진 선비의 그림자는 없어......

자주 고름에 소리없이 맺히는 이슬 방울


이제 임이 가시고 가을이 오면

원앙침 비인 자리를 무엇으로 가리울고



꾀꼬리 노래하던 실버들가지

꺾어서 채찍 삼고 가옵신 임아 ......



  이별의 정한과 임에 대한 그리움을 여성적 어조로 표현한 시다. 조지훈 생각에 침잠하다가, 서둘러 무섬마을을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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