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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by 소봉 이숙진

(서대문자치신문 2025. 10. 21. 칼럼)


기후 위기,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다.


폭염에 시달렸던 지난여름. 서울의 반지하 방에서는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노인이 있다. 에어컨은 사치고, 전기 요금은 공포다. 기후 위기는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다. 도시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다. 물이 흐르는 방향처럼 재난은 가장 취약한 곳부터 침투한다. 저지대는 단순한 지형이 아니다. 기후 불평등의 상징이며, 구조적 무관심이 쌓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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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면 상승과 집중호우는 저지대를 가장 먼저 삼킨다. 기후 변화는 도시 인프라의 균열을 드러냄과 동시에 사회의 균열로 이어진다. 집중호우가 내리면, 하수처리 시스템도 마비되고, 침수된 주거지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한다. 2022년 신림동 반지하 거주자 참사 이후 정부는 지하 주거지 퇴출을 선언했지만, 2025년 10월 현재 서울 시내 반지하 거주자는 여전히 수십만 명에 달한다. 도시의 구조는 바뀌지 않았고 위험은 반복된다. 인구 밀집 지역 저지대는 임대료가 저렴해 저소득층이 밀집해 거주한다. 기반 시설의 노후화로 하수도, 배수펌프, 도로 등이 오래되고 취약한 경우가 많아 재난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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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난방비 부담, 구조적 주거 취약성, 의료접근성 부족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생존의 문제다. 결국 같은 도시 안에서도 생존의 조건이 달라진다. 즉 에너지 빈곤으로 전력 공급이 끊기고, 냉방과 난방이 불가능해진다. 오염된 물과 곰팡이로 호흡기 질환, 피부병 증가로 보건 위기가 온다. 통학로 출근길 침수로 일상생활이 마비된다. 도시 인프라는 이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위험을 증폭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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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불평등을 증폭시키는 가속기다.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재난에 더 많이 노출되고, 복구에 대한 자원은 부족하다. 우리는 더 이상 기후 정책과 복지 정책을 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정의로운 방식은, 기후 위기의 최전선에 있는 가장 취약한 이들을 먼저 보호하는 것이다.



우선 도시 재설계로 저지대에 대한 우선적 인프라 투자, 스마트 배수 시스템, 침수 예측 AI 도입과 사회 안전망 강화로 저소득층 대상 재난 보험 가입과 긴급 주거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기후 위기에 대비한 정의 실현으로는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자원을 배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번 전 국민 민생지원금은 사실상 중산층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자금을 기후 위기 대책 기금으로 활용하는 게 더 적절했을 거다. 더구나 국가 경제를 걱정한다면, 기업인을 증인으로 줄소환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이런 혼란이 바로 서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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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여름이 오기 전에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태지만, 아직 정치권에서는 다음 선거에 집착하느라 기후 위기에 대한 대책이 미미하다. 미디어는 정치권에서 누가 더 강성인지, 누가 복수의 칼날을 더 잘 벼리는지, 누가 강성 지지층의 귀때기를 더 잘 후려치는지와 같은 꼴불견만 비친다.

올해도 벌써 끝자락이다. 우리는 내년의 기후 위기에 눈을 돌려야 한다. 너도나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바라보자. 삶의 터전을 잃고 땅을 치는 이웃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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