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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pr 08. 2024

엇갈린 기다림도 사랑

세븐틴, 〈바람개비〉,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하품〉






기다림은 그리움과 맞물린다. 무언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건 그것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필연적으로 두 사람 이상이 엮인 서사를 만들어 낸다. 기다리는 나와 내가 기다리는 당신. 당신을 기다려 주는 나와 달려오고 있는 당신. 세븐틴의 수록곡 중 하나인 〈바람개비〉와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는 기다리고 또 달려가는 사람의 간절함을 노래한다. 아래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전자는 피아노를 중심에 둔 잔잔한 발라드고, 후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OST처럼 벅차고 힘찬 곡이라 두 곡의 화자들이 어떤 이유로 서로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기다림의 엔딩을 묻는다면, 두 곡이 맞물려 언젠가 해피엔딩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움을 다 갚듯 아주 환하게 재회할 거라고. 〈같이 가요〉를 들을 때까지만 해도 이 기다림의 끝은 해피엔딩이라고 확신했는데, 〈하품〉을 들으며 어쩌면 재회라는 해피엔딩에 이들이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늘은 〈바람개비〉,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하품〉을 순서대로 따라가며, 엇갈린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세븐틴

ㄴ〈바람개비〉(2017, 2ND ALBUM 'TEEN, AGE')

ㄴ〈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2018, SPECIAL ALBUM 'DIRECTOR'S CUT')

ㄴ〈하품〉(2023, 11th Mini Album 'SEVENTEENTH HEAVEN')











〈바람개비〉


너를 기다리다 바라봤어
저기 저기 멀리 어느 샌가
찬바람이 계속 부는 거 같아
아주 작은 바람개비
혼자 서서 그저 멍하니
누군갈 쓸쓸히 애타게
찾는 게 꼭 나 같아

이런저런 일들
숨가쁘게 바쁜
이 뭐 같은 세상 땜에
너와 내가 멀어진 거라 둘러대면
괜히 나는 잘못 없는 것처럼
꾸며내는 것만 같아
그러진 못하고
바람만 맞으며 서있어

먼 훗날 너에게
미안하지 않게
늘 난 기다릴래
그래 그게 더 맘 편해
오는 길을 잃어
오래 걸린대도
돌고 돌아 내게
다시 찾아와주면 돼
먼 훗날이라도

사람들은 다들 겉으로만
바람이 차지않냐 물어봐
그냥 그렇게 묻곤 지나가서
다 잊어버릴 거면서 왜 물어봐
너에게서
부는 바람 같아서
그저 아무 말없이
기다릴 뿐인데

이런저런 일들
숨가쁘게 바쁜
이 뭐 같은 세상 땜에
너와 내가 멀어진 거라 둘러대면
괜히 나는 잘못 없는 것처럼
꾸며내는 것만 같아
그러진 못하고
바람만 맞으며 서있어

먼 훗날 너에게
미안하지 않게
늘 난 기다릴래
그래 그게 더 맘 편해
오는 길을 잃어
오래 걸린대도
돌고 돌아 내게
다시 찾아와주면 돼
먼 훗날이라도

이 시간은 저 편에 숨어버린 것만 같아
널 데리고
이대로 널 볼 수 없을까
가끔은 안 좋은 생각도 들어 난
네 모습이 잊혀져만 가

그래도 울지마
슬플 거 같지만
희미하게 남아
있는 너를 위해

오는 길을 잃어
오래 걸린대도
돌고 돌아 내게
다시 찾아와주면 돼
먼 훗날이라도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


눈물을 꾹 참으며 두려운 내 맘을
감추고서 너를 찾아서 갈 거야

자려다 네 생각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는
걷다가 또 보니까 내 맘처럼 달리고 있는 나
너 있는 그곳을 나는 몰라도
내 마음 나침반 곧장 따라서
내 맘에 그려둔 지도를 천천히 살펴서

찾아가면 되지 조금 멀면 어때
우리 둘이 이어져 있는 선을 따라서
내 이름 마음에 새겼다 말할 때
내 눈이 커진 이율 기억해

지금 난 너와 똑같은 무엇이든 필요해
하지만 나에겐 있지 않으니까
우리 다시 만나자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잘 지내고 있어야 해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

너의 시간 하나 둘 네가 없는 시간 하나 둘
가는 소리 들려도 내 맘에 소비 기간은 없어
너 없는 이곳에 모든 시간도
내 마음 초침을 따라 흐르면
언젠가 그날이 꼭 올 거라고 믿으면서

찾아가면 되지 조금 멀면 어때
우리 둘이 이어져 있는 선을 따라서
내 이름 마음에 새겼다 말할 때
내 눈이 커진 이율 기억해

지금 난 너와 똑같은 무엇이든 필요해
하지만 나에겐 있지 않으니까
우리 다시 만나자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잘 지내고 있어야 해

지금 널 찾아
가고 있다고 있다고 내 맘을 전해 봐도
혹시나 너에게 닿지 못하더라도
더 내가 좀 더 숨차더라도 빨리 갈 테니
그곳에 서서 조금만 기다려줘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마주하는 날 안아 줄 거야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잘 지내고 있어야 해
정말 정말
보고 싶어



〈하품〉



지나가는 달 위로
멀어지는 공기가
언제 이렇게 차가워졌나

이젠 정말 잊어야 하나 봐
연습한다 해도 안 되겠지
그야 전부였는걸

동동 구른 발걸음
나에 대한 낙서만 가득한 마음 종이에
적어둔 부탁이 있어

널 미워하지 마
좋은 선택이었단 걸 너도 알잖아
그렇게 아픈 걸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댔을걸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넌 나의 숨이니까
미안해하지 마
그저 모자람에 나오는 하품 같은 거야

동동 구른 발걸음
나에 대한 낙서만 가득한 마음 종이에
그려온 바람이 있어

널 미워하지 마
좋은 선택이었단 걸 너도 알잖아
그렇게 아픈 걸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댔을걸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넌 나의 숨이니까
미안해하지 마
그저 모자람에 나오는 하품 같은 거야

하품
하품

나를 숨 쉬게 하던 건
온통 너로 가득했어

네가 없는 나의 마음 모자람은
구멍 난 아픔 같은 거야








바람개비〉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그와,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에서 온 힘을 다해 달려오고 있는 당신.  둘은 분명 이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아니다. 그는 당신이 "다시 찾아와주면" 된다고 말하고, "지금 널 찾아가고 있"는 당신 또한 "다시 만나자"고 하기 때문이다. 둘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을까. 시간의 길이가 간절함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토록 기다리고, 또 이토록 힘을 쏟아 달려오게 만드는 순간은 찰나일 수도, 같이 보낸 한 계절 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당신을 기다리는 마음을 보면, 함께한 시간보다도 기다림의 시간이 훨씬 길어지는 것도 같다. "네 모습이 잊혀져만" 가고, "먼 훗날 너에게 미안하지 않게 늘 난 기다"리겠다는 말은 이제 막 기다림을 시작한 사람의 것이라기에는 다소 빛이 바랬다. 주변에서도 더는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아직도 기다리느냐 물어 괜히 마음에 파동만 일으키고는 그저 스쳐 지나간다. 기다리는 일이 간절함을 지나 "맘 편"한 일이 되기까지, 그는 도대체 몇 번의 계절을 보냈을까.


기다리는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멈춰 서 있을 수 없어 일상을 살아내는 동안 종종 잊게 되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당신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지난 하루도 생겼을 것이다.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사랑을 재정비하는 일이 그의 기다림이다. 기다리지 않기로 결단하기만 한다면 "이대로 널 볼 수 없을까" 두려워할 일 같은 게 없겠지만서도, 그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너를 위"하여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재촉하지도 않는다. 언젠가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그의 안에는 체념보다도 더 큰 사랑이 읽힌다.


당신 또한 그저 멍하니 서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만큼 길을 헤매고 있지도 않다. "우리 둘이 이어져 있는 선을 따라서" 가면 분명 그에게 도착하리라 믿는다. "소비 기간" 없는 마음은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는 그의 마음이 헛되지 않게 만든다. "조금 멀면 어"떠냐며 달리는 걸음에는 힘이 있다. 그를 향한 전력질주는 당신이 그에게 품고 있는 열띤 진심으로부터 동력을 얻는다. "정말 정말 보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달려가는 이 질주는 분명 그에게 닿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연락마저 끊긴 채거나, 혹은 다른 시간에 떨어져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다 할지라도 당신은 그를 향해 달린다. 그 어떤 것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 비하면 조금 먼 정도가 될 테니까. 그러니 간절한 소원은 하나다. 도착했을 때 우리가 만나도록, "잘 지내고 있"는 것.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만났을까?


어떤 곡으로 이어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늘 택한 곡인 하품〉은 꽉 막힌 해피엔딩과는 제법 거리가 있는 결말에 도착한다. 〈하품〉은 〈바람개비〉의 그가 남겨둔 편지를 〈지금 널 찾아가고 있어〉의 당신이 읽게 되는 듯한 곡이다. 〈바람개비〉의 그가 "그래도 울지마", 라고 말하던 순간과 하품은 맞물린다. 혹여 너무 늦게 도착해서 우리가 만날 수 없게 되고, 나의 생애는 오로지 기다림에 쓰인 후 다해버리더라도, 그래도 울지는 말라고. 나를 사랑해서 여기까지 달려온 넌 분명 울게 될 테지만, 그래도 울지 말라고. 네가 나를 찾아오려던 사랑을 나는 다 알고 있다고. 남겨질 당신을 향한 그의 사랑으로 적어내려간 말들이 〈하품〉에 가득하다.


동동 구른 발걸음
나에 대한 낙서만 가득한 마음 종이에
적어둔 부탁이 있어


그는 당신이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네 마음을 열었을 때 "나에 대한 낙서만 가득"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으며, 달려오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늦어버릴까 봐 "동동 구른 발걸음"이 되었을 마음도 모르지 않는다. 그러니 부탁하고 싶은 건 이런 말들이다.


널 미워하지 마
좋은 선택이었단 걸 너도 알잖아
그렇게 아픈 걸 말도 못 하고
혼자 끙끙댔을걸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넌 나의 숨이니까
미안해하지 마
그저 모자람에 나오는 하품 같은 거야


나를 향해 달려온 것도, 중간중간 무너지지 않게 잠시 쉬었던 것도, 때로 멈추고 싶었던 것도, 그러나 끝까지 나를 찾아온 모든 것들은 "좋은 선택"이었다는 것. 그러니 "널 미워하지" 말라는 당부. 분명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그는 당신을 본 적이 없고, 겨우 한 계절, 혹은 그보다도 짧은 시간의 기억으로 살았을 텐데도 그는 당신을 정확히 알고 있다. "넌 나의 숨"이기 때문에. 자신의 눈물은 "그저 (숨이) 모자람에 나오는 하품"으로 넘기면서, 스스로 미워하며 눈물 흘릴 당신의 마음을 염려하는 건 그가 당신을 기다릴 수 없게 된 후에도 끝나지 않는 기다림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신을 기다리며 살았던 모든 삶 동안 "나를 숨 쉬게 하던 모든 것"은 "온통 너로 가득"했다는 고백은 거짓말이 아니다. 기다림은 통증임과 동시에 삶을 살게 하는 동력이었다. 그러니, 그는 〈바람개비〉 이후에 〈하품〉을 건넬 수밖에 없다. 이토록 사랑했기에 우리의 기다람은 무엇 하나 헛되지 않았고, 우리는 기다림으로나마 다시 만나게 되는 거라고. 


〈하품〉을 읽은 당신은 어떤 얼굴을 할까. 그가 겪었던 "마음 모자람"과 "구멍 난 아픔"을 이제 제 몫으로 겪으며, 돌아오지 않을 그를 기다리며 〈바람개비〉의 가사를 제 고백으로 삼다가, 언젠가는 〈하품〉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아주 상냥하거나 잘 맞물려 행복에 이르지는 못하더라도, 절대로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분명 당신 또한 말하게 되리라.  엇갈린 기다림조차 사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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