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영 Apr 15. 2024

내가 두고 온 것인지,
당신이 남겨진 것인지

자우림, 〈스물다섯, 스물하나〉+ 정승환, 윤하 커버









노래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평소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그 노래를 다르게 해석해서 부른 사람은 없는지 유튜브를 떠돌며 커버 영상을 찾는데, 〈스물다섯, 스물하나〉도 그렇게 커버를 찾았던 노래다. 즐겁게도 정승환과 윤하,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각기 다른 프로그램에서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커버한 걸 들었다. 원곡, 정승환 커버, 윤하 커버. 이렇게 세 곡을 나란히 듣는데, 분명 같은 곡에 같은 가사인데도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오늘은 한 곡에 얽힌 세 가지 목소리, 그에 따른 세 가지 이야기에 대한 글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ㄴ원곡: 자우림

ㄴ불후의 명곡: 윤하

ㄴ뉴페스타: 정승환






1. 빛나던 날들이여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 날의 바다는 퍽 다정했었지.
아직도 나의 손에 잡힐 듯 그런 듯 해.
부서지는 햇살 속에 너와 내가 있어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꿈을 꾸었지.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너의 목소리도 너의 눈동자도
애틋하던 너의 체온마저도
기억해내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데
흩어지는 널 붙잡을 수 없어.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네가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다섯, 스물하나.


회사원인 주인공이 과거를 돌아보는 뮤비에서도 드러나듯, 원곡은 스물다섯의 '나'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부르는 노래다. 현실에 지친 화자가 빛나고 아름다웠던 시절을 돌아보며 사무쳐하는 것이 가사 전체를 끌고 간다. 여전히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에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한 감각을 느끼는 화자의 심정은 이야기의 원형이 되어, 다른 가수들의 커버에서 각각의 구체적인 서사를 갖춰간다.



2. 내가 두고 온 당신에게 부르는 노래




윤하 커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내가 두고 온 당신에게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감상은 원곡에는 없는 나레이션으로부터 비롯된다.


어느샌가 계절의 흐름은
숫자에 가려버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낱장이 된 달력을 만난 그제서야
그날과 한 발 더 멀어졌음을 실감하면서
그렇게 너와는 영영
멀어지기만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는데
그렇다면 일부러 나를 지나쳐가는 걸까
어디로 가기에 서두르는지
나는, 여전히


피아노와 여린 현악기 소리만으로 전개되던 1절을 지나면, 행진할 때 쓰는 드럼 같은 소리가 깔리며 분위기가 전환된다. 그 소리 때문에 유독 혁명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윤하 목소리가 워낙 힘 있게 뻗어나가는 것도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상에 기반할 때, 나레이션에서 "영영 멀어지기만" 하는 '너'는 혁명을 함께 했던 동료는 아닐까. 시간과 피는 같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봄이 왔으나 당신은 없다. 내가 두고 오고 싶어서 두고 온 게 아니지만, 내가 두고 온 것만 같아서 더 사무치는 당신. 함께 있을 때는 그토록 아름다운 줄 몰랐고, 이 어두운 새벽이 끝나기를 바랐지만, 당신과 함께 달리던 모든 순간들이 다 빛났더라고. 다 지나서야 하게 되는 고백에는 못 다한 후회와 슬픔이 묻어난다. 당신이 없는 세상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나갈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다들 오늘의 봄을 사는데 나는 영영 수 년 전의 봄을 살게 만드는 당신. 나는 여전히 살아가더라도, 자꾸만 당신의 그늘 아래에서 살게 된다고.



3. 나를 두고 간 당신에게 부르는 노래



생각보다 정말 맑고 깨끗하게 불렀다. 기대에 어긋난 게 아니라 그냥 더 좋았다. 항상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스물다섯이 다 지나간 스물하나에게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해석을 하나 보게 되었다. 정승환의 화자는 스물다섯이 되지 못하고 끝나버린 스물하나이자, 위에서 했던 해석과 이어진다면 스물다섯의 '나'가 혁명에서 잃은 동료가 되겠다. 스물다섯이 가질 수 없는 맑고 깨끗한 감정선, 그러나 동시에 스물다섯만큼 처절하거나 짙지는 않은, 결이 다른 종류의 슬픔이 묻어났다. 여전한 얼굴로 다가갈 수 없는 스물다섯을 향해 불러주는, 결코 스물다섯에게 들리지 않을 답가처럼 들렸다. 


스물하나 또한 지금 자신이 선 곳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모를 테고, 계속 나이를 먹어가는 당신이 흩어져가고, 기억에서 흐려져 가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물다섯이 된 당신이 고개 돌려 스물하나를 바라볼 때나 종종 실려오는 노래와 향기를 의지하여 허깨비처럼 형체를 유지하지만, 정말 멀어지고 난다면 아주 흩어져버릴 존재. 후반부에 터져나오는 설움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감정으로 읽을 수 있겠다.  영영 스물하나인 화자는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시절을 향해 부르는 노래.




각기 다른 목소리로 부르지만 결국 하나의 결을 공유한다. 


지나간 날들이 아름답고 그건 때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것. 두고 온 건지 내가 남겨진 건지 구분할 수 없는 때가 오면 한 번씩 이 노래들을 차례로 틀어보게 될 것 같다. 지나간 날들이 아름다운 것은 그래도 내가 그 날들을 살아보았다는 증거이며, 오늘을 빛나는 날로 돌아볼 날이 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이라는 걸 믿으면서.


이전 04화 엇갈린 기다림도 사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