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디에 Nov 23. 2022

어느 날의 나

이주란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괜찮다, 말해주네." 


동호회에서 만난 사람과 룸메이트가 되는 데에는 얼만큼의 공감과 교감이 필요할까. 어떤 마음의 넓이이면 3등 복권당첨금을 선뜻 타인에게 내놓을 수 있을까. 단골 손님과 카페 직원이 동네 친구가 되려면 얼마 간의 시간이 필요할까. 나처럼 사교성 떨어지는 사람은 사실 짐작하기 어렵다. 


너무 작고 흔해서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우리의 마음들. 작은 일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이의 마음, 이를 우습게 여기지 않으며 귀하고 옳은 일이라고 맞장구를 쳐주는 또 다른 이의 마음. 


타인의 말이 진실이든 아니든 가감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아는 담백함. 유리의 평이한 일상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괜찮다는데, 내가 또 담백함을 놓쳤다.







나는 관계에서보다는 혼자의 시간에 에너지를 충전하기에 그다지 외로움도 타지 않는 편. 그래도 곰곰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사람이 곁에 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그렇다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느닷없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지금부터 주변 사람들한테 잘해야겠다는 새해 다짐을 벌써! 어떤 한 단어로 관계를 정의할 수 없을지라도 슬픔에 어깨를 나란히하고, 시덥지 않은 농담에 웃을 수 있는 사람을 포섭하는 것. 나의 노후대책. 


유리, 언니, 재한 씨.

그들에게 그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유리와 처음 만난 할머니의 대화는 다정하다(p55). 나는 이렇게 포장하지 않고 소박하고 단정하며 예쁘게 말하는 사람이 참 좋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돌아가신 할머니와 나의 관계가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났다. 아주 어릴 때 할머니를 엄마에게 일만 시키는 악당(!) 쯤으로 여겼던 나는 할머니와 견원지간 같았다. 고모들은 고작 대여섯 살짜리가 할머니한테 한마디도 안 진다고 꾸지람을 놓을 정도였는데(나는 그들의 엄한 오빠인 아빠를 뒷배로 두었기에), 그럼에도 할머니는 어디를 가든 나를 꼭 데리고 다녔다. 많은 이유 중에는, 물론 대가족 뒤치다꺼리에 힘든 엄마를 귀찮게 하지 말라는 거였을 테지만. 그런 할머니와 얌전하게 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한 때는 할머니가 암투병을 한 몇 년 동안이었다. 그래도 죽을 날 받아놓으니 곁에 있는 건 손녀딸 밖에 없다며 좋아하셨는데. 할머니는 내가 고3 때 돌아가셨다. 문득 예쁘게 말하는 아이였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드네. 







사족

1. 할머니의 병원비로 고모에게 빌린 돈을 보증금을 빼서 갚았다? 고모라면.... 할머니의 딸일텐데, 도대체 왜 그 병원비를 손녀가 할머니의 딸에게 갚아야하나..? 세상에는 이상한 일이 많다.


2. 유리가 일하는 카페 주인, 아주 마음에 들어. 


3. 한 사람은 부모가 있으나 사랑없이 정서적으로 방임된 채 성장기를 보냈고, 다른 한 사람은 부모가 없었으나 할머니로부터 오롯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불행이든 행복이든 키 재기는 그만하고 싶다.




#어느날의나

#이주란

#현대문학 


작가의 이전글 마틴 에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