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디에 Dec 09. 2022

어린 시절 _ 코펜하겐 삼부작 1

토베 디틀레우센


첫문장부터 마음이 내려앉는다. 

가난하고 서로 성향이 너무 달랐던 부모 사이에서 성장한 토베는 어머니의 애정을 갈구하고 집착한다. 이상화한 어머니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때로 아름답고 닿을 수 없고 외롭고 어딘가 비밀스러운 모습이지만, 현실로 돌아온 어머니의 분노는 위협적이고 폭력적이다. 토베는 현실의 어머니와 직면할 때마다 그녀가 절대 자기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어린 '나'가 어머니를 향한 감정은 분노, 슬픔, 연민이 뒤섞인, 한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하기 그지없다. 


아들 선호에 따른 딸에 대한 차별, 사춘기에 찾아오는 2차 성징과 성에 대한 인지, 가족을 대신하는 친구와의 애착관계 등은 성장하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 이입이 되는 듯 하고. 


소설에서는 어린 '나'가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절절하게 바라고 있는데, 그녀가 태어나고 성장한 시대를 감안하면 어머니가 유별나다는 느낌은 사실 크지 않다. 다만 기질상 내성적이고 섬세하고 예민한 토베의 정서와 외향적이고 타인의 감정을 알아채는 데 다소 무딘 어머니와 맞지 않았고, 그녀의 정서적 결핍을 어머니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채워주었더라면 스스로 느끼는 우울감이 덜하지는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러한 화자의 감정은 열두 살에 자신의 시를 보여주고, 칭찬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찾고 싶어한다는 대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토베는 "시가 마음 속의 슬픔과 갈망을 무디게 만들어 주기에 시를 써야만 했다"고 말하는데, 어쩌면 시는 그녀의 결핍을 변함없이 채워주는 유일한 대상이었을 터다. 


고등학교 진학도 이루지 못한 채 오빠 에드윈의 독립으로 열네 살 토베의 어린시절은 우울감과 열패감을 안고 끝난다.







읽으면서 들었던 몇 가지의 단상은, 


1918년생 토베의 성장담을 읽으면서 우리 주변이 떠오르는 걸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어쩜 이렇게 한 치도 달라지지 않는지. 어린 소녀들에게 성폭력의 위험은 어디에서든 도사리고, 가정폭력은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고, 입양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전하며, 견습생(실습생)들에 대한 학대와 폭력 또한 변함이 없다. 


토베는 어린시절 자신의 약삭빠름을 숨기기 위해 '멍청함'이라는 가면을 썼다고 했는데, 이 부분에서 어린 시절 익살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써던 <인간실격>의 요조, 동성애를 감추기 위해 남성성을 더 부각하려했던 <가면의 고백>의 '나' 처럼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약자였던 어린아이로서 어른을 상대로 어쩔 수 없이 자기방어 기제로 가면을 쓸 수 밖에 없는 건 비단 나를 포함한 이들 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소설에서든 현실에서든 이러한 가면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리는 사람은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다. 


책에서 그림자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변태성욕자가 나오는데, 문득 학창시절 '바바리맨'이 떠올랐다. 아마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터다. 애석하게도(?) 나는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중.고등을 모두 여학교에 다녔던 나는 종종 바바리맨을 상대로 하는 무용담과 목격담을 듣곤 했다. 그런데 그야말로 '~카더라' 통신이고 그를 직접 봤다는 사람은 만난 적이 없으니 바바리 안쪽의 상태가 어느 수위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외할머니의 유골 단지 앞에서 울지 않는 화자를 비난하는 어머니의 말을 읽으면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가 생각났다. 입관과 매장 당시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엄마와 달리 나는 눈물을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나조차도 당황스러웠긴 했는데, 정작 내가 울었을 때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이었다. 가망이 없는 암투병으로 확연하게 수척해진 할머니가 할아버지와의 결혼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 해 줄때나 어린 시절 한마디도 지지 않고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나에 대해 추억하실 때였다. 토베가 엄마의 비난에 양심을 가책을 느꼈다는 데에서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사족 

1. 친구가 생겼다고 자랑하는 딸에게 "걔는 입양아야. 그런 애한테선 아무것도 배울 게 없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이 쩍 벌어졌다. 

2. 새로 온 음악 선생이 토베에게 "난 네 얼굴이 맘에 안 드는구나" 에서 다시 입이 쩍!




#어린시절

#코펜하겐삼부작

#토베디틀레우센

#을유문화사


작가의 이전글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