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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gerun Jun 04. 2022

저절로 생기는 길

나는 어떤 나무인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 사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에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또는 다른 이의 삶을 구경하는 것에 너무 집착하게 될 것 같아서 등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바와 비슷한 이유로 브런치 외의 다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은지 오래다. 이제는 그 시간이 꽤 길어 새삼스레 시작하기에도 어딘가 늦은 감이 있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물론 살면서 종종 남들처럼 제때에 시작해 둘걸 싶은 아쉬움도 있다. 계정만 만들어두고 방치해 둔 서비스가 여럿이다.


사람들과 친목하며 지내는 즐거움은 예전 싸이월드 할 때 모든 정성을 쏟아부었던 것 같다. 뭐 하고 살고 있는지 당연스럽게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던 열정 많던 그 무렵, 주로 지인들과 정을 나누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무심결에 방문자 수를 확인하며 알게 모르게 신경이 많이 쓰였다. 왜 저 친구 것은 방문자가 많은데 내 것은 상대적으로 적을까. 내 얘기는 재미가 없나 내 일상은 너무 시시한가. 사소한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다. 그 어느 누군가의 싸이월드에 폭발적인 조회 수가 나오는 것을 보면 상대적으로 초라해지는 감정을 피할 길은 없었다. 인기를 얻으려 따로 노력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사람 욕심이 났다.


숲길이나 공원을 걷다 보면 유독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진을 찍는 나무들이 보인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꽃 사진을 찍거나 과실이 탐스럽게 열려있으면 자연스레 발길이 향한다. 근처에만 가도 향기로운 냄새가 진동을 하니 무심히 걷다가도 고개 돌려 바라보게 된다. 어김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다. 그저 자신의 모습 그대로 묵묵히 서 있는 나무임에도 사람들은 알아서 모여든다. '복숭아와 오얏은 말을 하지 않아도 나무 밑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덕이 높은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여들어 길이 난다는 뜻이라고 한다.


내가 만약 나무라면... 어떤 나무일까 생각해본다. 향기 나는 꽃은 피웠을까 탐스러운 열매는 열렸는가. 과연 자연스레 갈길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혹은 근처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나무인지 상상해 보게 된다. 전혀 나무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의 나무가 어떤 모습인지는 전혀 상상이 가지 않지만 이상적인 나무의 모습은 있다. 너무 빽빽하지 않고 적당히 튼튼한 가지에 때 되면 한 번씩 꽃들이 열리는 나무. 꽃핀 가지 밑에 앉아 쉴 수 있는 그늘이 적당한 나무. 여유가 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 사람들과도 마찬가지다. 적당히 헐렁한 여유를 가진 사람. 그 여유를 사람들과 함께 채워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길이 날만큼 대단한 나무가 아니어도 좋다. 종종 기대앉아 편히 쉬다 가고 싶은 나무 정도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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