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스 스트릿 #1 / RS_008
과천대공원_동물원 (12.7Km)
Cue the music: Two door cinema club - What you know
새벽 출발 시 이미 습도 90%, 온도는 25도를 넘어 있었다. 내가 과연 내 건강을 챙기고 있는 건지, 아니면 해치고 있는 건지 모를 한여름 폭염 러닝. 그래도 나가 보는 것과 창밖으로만 보는 건 전혀 다르다. 길 위에서 만나는 흐릿한 먹구름이 반갑다. 과천 대공원으로 망설임 없이 향한다.
조금 몸이 풀렸다 싶었는데, 서울-과천을 넘어가는 남태령 고개를 잊었다. 이어지는 업힐을 간신히 넘어서며 현타가 온다. “대체 내가 이 날씨에 혼자 여기에 왜…” 돌아갈 버스 정류장도 보이지 않는 시점, 반대편에서 팔랑팔랑 하얀 손바닥이 다가온다. 업힐을 마치고 정상에서 마주친 연세 지긋한 어르신의 반가운 손인사. 나도 모르게 훅 다가가 하이파이브! 목장갑은 마치 탈수 직전의 빨래처럼 축축했지만, 그만큼 반갑고 그리웠다. 덕분에 껄껄 웃으며 다운힐을 마친다.
정신이 반쯤 나간 채 도착한 동물원. 아침 해가 뜨겁게 내리쬐어 어깨가 따갑다. 원기충전 완료!
어슬렁 식후경 중, 안내문들이 눈에 띈다. ‘바다사자는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움직이지 않는 악어를 보고 죽은 거 아니냐 생각하시지만 살아있는 동물입니다.’ 그동안 하나의 시선으로만 동물을 봐왔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이런 설명이 없었다면, 내 편견으로 떨어진 바다사자와 죽어있는 악어를 만났겠지. 몰라도 큰일은 아니지만, 아는 만큼 시선이 열린다. 개체마다의 특징이 보이고 새삼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같은 동물로서, 내 입장료가 조금이나마 이들의 사료값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귀여운 카피바라를 보러 남미관을 찾았는데, 정작 악어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듯 미동 없는 모습.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불필요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 한다. 참 미니멀하다. 야생에서 만나면 나는 간식거리 밖에 안 되겠지만, 우리 안에서 생존 중인 악어를 보며 귀엽다 말하는 모순. 그나저나, 저 흰 손바닥… 하이파이브하고 싶다.
무리 지어 갈팡질팡 돌아다니는 다른 원숭이들과 달리, 한 마리가 태평하게 걸터앉아 간식을 먹고 있다. 남 이사 돌아다니든 말든, 손에 쥔 감각에만 집중하는 모습. 복작복작한 일상 속에서도 이런 태평한 짬이 한 번씩 나길, 우리 최종 진화된 털복숭이들에게도 하이파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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