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erun May 07. 2022

따뜻한 기다림

새로한 밥 한 공기에 담긴 것

어린 시절 겨울방학마다 시골의 외할머니댁에 방문하면 늘 듣던 말이 있어요. '아랫목으로 와. 더 들어와’. 반질반질한 장판이 깔려있는 겨울의 사랑방에는 이불이나 담요가 깔려있곤 했는데, 외할머니는 겨울바람에 차갑게 식은 두 손을 잡아채 이불 아래 따뜻한 곳으로 넣어주시곤 하셨어요. 한옥집의 방바닥은 군불을 잔뜩 때서 쩔쩔 끓곤 했는데 어린아이에겐 너무 뜨거웠던 기억이 나네요.


할머니 손에 이끌려 이불속 깊숙이 들어간 손에 종종 만져지는 존재가 있었어요. 그건 아랫목 이불속에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는 공깃밥이었어요. 아랫목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어떻게 밥상으로 올라오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불속에서 따끈하게 대기하고 있던 밥공기를 손으로 돌돌 굴려보던 기억이 나요.


외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유난히 좋으셔서 어떤 음식을 해주셔도 참 맛있었어요. 방학 때 내려가면 늘 매끼 따끈한 새 밥을 지어 주셨는데 그 시간이 기다려지곤 했죠. 이번엔 어떤 맛있는 반찬이 있을까 상상도 해보고요. 아직도 신작로에 저녁 교회 종소리가 댕댕하고 울리던 여름 어느 날이 생각나요. 이른 저녁 외할머니의 ‘밥 먹어라~’하고 부르시던 목소리에 후다닥 뛰어가 보니 부엌엔 할머니가 금방 담으신 밥그릇이 놓여있었어요. 연분홍색 사기그릇에 갓 지은 밥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던 장면이 여전히 생생하네요.


누군가에게서 새로 한 맛있는 밥을 받는다는 것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사랑받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요. 일단 바로 한 새 밥을 바로 내어주기 위해선 언제쯤 밥을 먹을지 미리 시간을 거꾸로 샘 하는 세심함이 필요해요. 그리곤 적정한 때 밥솥에 불을 올리는 정성이 추가되어야 하고요. 멋모르고 얻어먹던 늘 따뜻했던 밥은 '사랑한다'의 다른 표현이었겠죠. 말 대신 행동으로 늘 사랑해 주셨던 거예요. 따뜻한 기다림을 받은 것에 새삼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