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gerun Apr 16. 2022

훈훈한 마법

계피 사탕은 반쪽이 맛있어요

'나누어 가진다'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저는 계피 사탕이에요. 인생에서 계피 사탕을 가장 많이 먹은 때가 언제냐고 누가 묻는다면 6~7살 때예요. 할머니가 좋아하셨거든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할머니를 생각하면 계피 사탕이 함께 떠올라요. 한참 놀다가 할머니 방에 놀러 가면 찬장 구석에 넣어둔 봉지에서 부스럭 부스럭 사탕을 꺼내시곤 했죠. 상상하는 그 큼지막하고 투박한 계피 사탕 맞아요. 어린 저에게 너무 큰 사탕을 늘 어금니로 깨물어, 반은 할머니가 나머지 반은 제입에 넣어주시곤 했어요. 연세 많은 할머니는 크고 딱딱한 사탕을 한 번에 깨물기 힘들어 여러 번 만에 성공하셨는데요, 늘 그 과정을 코앞에 앉아 지켜봤어요. 그래선지 유독 계피 사탕은 늘 반쪽으로 나누어 먹어야 할거 같아요.


일반적으로 나눈다는 행위는 낯선 사람과는 쉽게 실행되기 어려운 행위 같아요. '이걸 주면 이상하게 생각할까?''이건 뭐하러 준거지?' 같은 불편한 마음이 들면 사탕 하나라도 불쑥 권하기 쉽지 않죠. 이태리 카페에는 '소스페소'라는 문화가 있다고 하네요. '주문해 놓고 마시지 않는 커피''맡겨둔 커피'라는 뜻이래요. 커피 두 잔 값을 치르고 한잔은 타인을 위해 남겨두는 거예요. 나중에 커피값이 궁한 누군가가 와서 마시도록 미리 사두는 겁니다. 누굴지는 몰라도 함께 나눠마시겠다는 넉넉한 마음이 있는 거죠. 주는 사람은 줘서 좋고, 받는 사람은 받아서 좋고. 서로를 불편하게 하는 것 없는 조건 없는 주고받음이 훈훈합니다. 나누었을 때의 행복감만 주고받는 따뜻한 문화죠.


가진 무엇인가를 선뜻 내 품에서 상대에게 건네려 할 때가 있죠. 좋은 것이 내손에 들어왔을 때 나누고 싶은 상대가 떠오를 때도 있고요. 계산 없이 스르륵 누군가의 얼굴이 마음에 들어올 때 있잖아요. 아 이거 좋아하겠지 하며 환히 웃는 얼굴도 상상해 보고요. 받는 이에 대한 내 애정의 깊이만큼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레 커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상대방도 불편한 마음 없이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는 거고요. 상호 간에 주고받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편한 관계는 서로를 제법 잘 이해하고 있을 때 가능한 거 같아요.


물론 조건 없이 불쑥 권하고 받던 시절도 있긴 했죠. 어릴 적 공원 벤치에 앉아 있거나 버스 옆자리에 앉거나 하면 가지고 있던 껌 하나 요구르트 한 병 나누어 먹던 기억이 납니다. '하나 드실래요?' 하며 수줍게 웃어 건네고 '아. 잘 먹을게요'하며 스스럼없이 받아 들었죠. 그러다가 서로 통성명도 하게 되고 말이에요. 주는 쪽이던 받는 쪽이던 그런 행위가 당연하고 일반적이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낯선 사람이 주는 건 절대 받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왔고, 때론 불쑥 권하는 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에 뻘쭘해지기도 하고요. 대부분의 경우 무슨 일이 있을까 싶지만 그래도 예전만큼 마음이 편하지는 않아요. 상대방에 대한 믿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많이 사라진 거 같아요. 


그래도 분명 나눌 방법은 많을 겁니다. 꼭 먹을 것이나 물질적인 것을 주고받지 않아도 말이죠.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에게 웃는 얼굴로 밝은 에너지를 나눌 수도 있고요,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작은 친절을 나눌 수도 있겠죠. 사소한 배려, 스치듯 마주치는 따뜻한 눈빛 등은 사소한 순간의 것들이지만 그 즐거움은 길게 남는 거 같아요. 그리고 또 강한 전파력도 있죠. 나누었을 때 반이 되는 게 아닌 다시 배로 커지는 순수한 그 감정 다들 아시죠? 남에게 내 것을 주며 더욱 기뻐지는 매직. 아름다운 마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