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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Jan 26. 2022

도둑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면

분명 아래쪽 손잡이만 잠그고 나갔는데 열쇠를 아무리 올바른 방향으로 돌려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애꿎은 첫째에게 네가 위쪽 자물쇠를 돌리고 나온 거 아니냐고 핀잔을 주었다. 사실은 도둑(들-직접 보지 못했으므로 단수를 써야 할지, 복수를 써야 할지 난감하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이중으로  문을 잠근 채 작업하고 있었던 것이다.(게다가 위쪽 자물쇠는 안에서 손으로 돌려 잠그면 잠금장치가 튀어나오게 되어 있어 그 상태로는 절대 나오면서 문을 닫을 수 없다. 바보 같은 의심이었다.)


어쨌든 우리에게 남은 해결책은 열쇠 기술자를 부르거나 펜스를 열고 들어가 뒷마당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있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남편이 첫째를 번쩍 안아 올렸다. “펜스 잠금쇠를 열어봐!” 아홉 살 아들은 어렵지 않게 펜스의 잠금장치를 열었다. “다행이야! 뒷문이 열렸으려나?” 기쁜 마음으로 펜스를 박차고 뒷마당으로 들어갔다.


“열렸다! 휴~열렸어! 다행이야” 뒷마당을 통해 뒷문이 열린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왜 앞문이 열리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우리가 앞문 열려는 시도를 하는 동안 도둑은 시간을 벌었고 무사히 탈출했던 것 같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상하다 저거 왜 떨어져 있지?” 신발장 위의 물건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화장실을 본 순간 진짜로 뭔가가 잘못됐구나 직감했다. 돌돌 말아 수납장에 착착 정리되어 있던 수건들이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얼른 달려가 방안을 확인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도둑이 분명했다.

“도둑이야! 도둑이 들었네…!”


드라마에서만 보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하필 이런 드라마에서 주연이라니. 주연이자 집주인인(엄밀히 말해 세입자) 나는 망연자실 서 있었다. 빠른 시간 안에 돈 되는 물품을 찾아내기 위해 이놈들은 닥치는 대로 물건들을 바닥에 패대기치거나 침대 위에 차르륵 펼쳐놓았다. 지난 13년 간의 미국 생활로 쌓인 각종 신분 서류들, 옷가지, 귀금속 등을 보기 좋게 펼쳐 놓고 필요한 것들만 쏙쏙 빼갔다. 뒷정리는 주인공의 몫이라며.


911에 신고했고 금세 경찰이 왔다. 우리의 동의에 의해 뒤이어 지문감식반도 왔다. 아이들은 무섭다고 울었다. 우리는 오늘 하루만 호텔에서 자기로 결정했다. 지문 감식관의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을 하며 나는 호텔을 예약했다. 그 와중에도 너무 싼 호텔은 가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우울한데 호텔까지 후지면 안 된다. 우리 막내는 호텔을 아주 좋아한다. 아마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오늘의 공포를 어느 정도 잊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다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가성비 좋은 호텔을 찾았다.


공포. 그렇다. 호텔에서 돌아온 이후 트라우마와 공포에 시달렸다. 허리케인이 훑고간 듯 엉망진창이 된 집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그날이 떠올라 괴로웠다. 그러나 물건들이 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나의 일상도 제자리를 찾을 것 같아 정리를 서둘렀다.


도둑  날의 일은 입에 담기에도, 글을 쓰기에도 전혀 유쾌하지 않다. 지금  글을 쓰는 동안에도 위장이 아프다.  굳이 글쓰기로 지난날을 복기하며 자신을 괴롭히는가. 나도 나를  모르겠다. 어쩌면 복기 뒤에 따라올 완전한 치유를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 어느 정도 해결되었기에 복기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사해야 한다. 도둑 사건 이후 나는  가지 통찰력을 얻었다.


첫째, 도둑에게는 엄청난 인내가 요구된다.


도둑은 아마도 한참 전부터 우리 집을 주시했던 것 같다. 우리는 코로나 때문에 몇 날 며칠 온 가족이 집안에서만 격리했고 음식도 배달해 먹었다. 도둑은 잠복근무 나온 경찰처럼 어딘가에서 끈기 있게 우리 가족을 감시하며 온 식구가 나가는 시점을 기다렸다. 약을 픽업하기 위해 가족 전체가 집을 비운 시점, 그 토요일 오후의 한 시간을 도둑은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집이 언제 빌 것이라는 확신 없이 그렇게 하세월 잠복근무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비경제적인 일인가. 이런 일에 인내심을 쓸 일인가.


둘째, 도둑은 허탕을 감수해야 한다.


집을 아무리 뒤져도 1불도 나오지 않자 도둑들은 그저 남편의 시계와 반지, 그리고 내 반지 몇 개를 집어갔다.(값나가는 바이올린들은 부피가 커서 그런지 손도 대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투자한 것에 비하면 소득이 매우 부실하다. 반지는 우리 연애할 때 맞춘 커플 은반지, 결혼할 때 예의상 맞춘 백금반지인데 이것들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 되지 않는다. 큰 위험을 감수하기엔 너무 적은 소득이다. 힘들여 침입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집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빈손으로 돌아가 “오늘도 허탕이야…”라고 말할 것인가. 그때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느낄 허탈감(?)은 또 어쩌라고 이런 무모한 짓들을 하는가.


셋째, 도둑에게 철저한 사전 답사는 필수이다.


알고 보니 이런 종류의 좀도둑들은 반려견, 감시 카메라, 그리고 집주인, 이 셋이 다 없는 집만을 공략한다고 한다(당연한 건가). 그들은 우리집에 진짜 멍멍이가 없는지, 진짜 카메라가 없는지, 언제 주로 집을 비우는지를 사전에 용의주도하게 확인했을 것이다. 우리 집 뒷마당에는 몇 달 동안 의문의 하얀 비닐봉지가 걸려있었다. 알고 보니 도둑의 무리(?)들이 잠재적 타깃을 잊지 않기 위해 걸어두는 일종의 사인이라고 한다(소름. 남편이 당장 떼어버렸다. 실수로 날아온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잘 묶여 있었다.). 이처럼 도둑질에도 용의주도한 사전작업이 요구되므로 결코 만만히 여길 직업이 아니다.


넷째, 도둑이라면 인간적인 감정에 동요되어서는 아니 된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사진과 그림들이 붙여 있다. 아이들은 외출 직전까지 뒷마당에서 깔깔거리며 눈싸움을 했고, 거실에는 놀던 장난감과 읽던 책의 흔적들이 그대로 있었다. 이러한 흔적에 동요되어서는 도둑질을 해먹을 수가 없다. 귀여운 어린이가 살든, 병든 노인이 살든 타깃이 된 집에서 가차 없이 귀중품을 발굴해내는 게 그들의 일이다. 도둑에게 인간적인 감정이란 오로지 ‘자기애’ 면 충분하다. 남을 등쳐먹고살려면 주변을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보통의 사람이 함양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자질이다.


누군가 예고도 없이 날린 귀싸대기를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무섭기는 싸대기의 백배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갑작스러움과 공포와 황당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나는 도둑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도둑도 어느 정도의 열정으로 자기 일을 감당하는구나. 세상에 힘 안 드는 일은 진짜 하나도 없구나, 먹고살기 힘들다, 열심히 산다, 이렇게. 그저 칼 든 강도가 아니어서 고맙기도 했다.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해당 앱을 깔았다. 실시간 모니터가 가능하니 더욱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다. 도둑고양이가 지나가도 카메라는 모션을 감지하고 띠리링! 휴대폰에 알람을 보내준다. 온 식구가 눈앞에 있는데 뒷마당에서 사람이 감지되었다면 즉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누군가 담을 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멀쩡해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도둑을 묵상하는 24시간을 보내고 있다. 실시간 알람을 체크하는 덕분에 어떤 이웃이 몇 시에 산책을 하는지 다 알게 되었다. 이 좋은 카메라를 왜 그때는 설치하지 못했나 땅을 치고 후회해 보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코로나와 도둑. 부정할 수 없이 잔인한 1월이었다. 누군가는 나에게 ‘액땜 한 번 크게 했다 생각해!’라고 했고 누군가는 ‘앞으로는 꽃길만 걸을 거야!’ 축복해 주었다. 나는 이 모든 일로 인해 그저 배우려고 한다. 앱으로 바깥 동정을 살피며 지난 몇 주 동안 벌어진 일들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책에 길이 있으려나 책을 닥치는 대로 읽는다. 도둑들도 불철주야 열심히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겠나. 불안한 인생, 그러나 주어진 삶을 보란듯 ‘삶으로’ 도둑에게 복수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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