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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Jan 17. 2022

코로나에 걸렸는데 도둑이 들었다

자꾸만 나타나는 희한한 증상들에 집중하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 오미크론이 약한 증상을 동반한다고는 하지만 검사 결과 어디에도 내가 걸린 코로나가 오미크론 변이라고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유독 내게 증상이 강했는지, 아니면 다른 변이 중 하나였는지 그건 알 수가 없다. 물론 처음 코로나가 퍼지기 시작했을 때 중증환자들이 겪은 고통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경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여러 가지 증상이 있고 한 이틀, 죽을 만큼 아팠다.


인후통, 혀가 타는 듯한 통증, 근육통, 두통이 주가 되었다. 거기에 심장 통증, 치통(신경 치료하는 기분), 후각과 미각의 부분적 상실, 피부 따가움증이 따라왔다. 이중 가장 괴로웠던 건 근육통이었다.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출산의 통증이 모처럼 나의 온 뼈마디에 쓰나미처럼 밀려왔을 때 허무하게 아팠다. 산통 후에는 귀여운 아기라도 내 가슴에 턱 안겨질게 아닌가, 아무 생산성도 없는 진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건 더 나를 아프게 했다. 그나마 질질 끌지 않고 임팩트(?) 있게 하루를 쓸고 지나갔으니 그래도 버틸만했달까. 증상의 공포스러움으로 따지자면 단연 심장의 통증이 최악이다. 아무 생각 없이 자려고 누웠는데 심장 부근이 찌릿, 찌릿했다. 착각인가 싶어 돌아누워 맘을 놓으면 또 찌릿, 설마 하면 찌릿. 잊을만하면 또 어택. 이쯤 되면 다음 어택이 언제 올지 패닉 상태가 된다. 그대로 또 24시간을 뜬 눈으로 새웠다.


이를 닦는데 이번엔 잇몸이 아리다. 칫솔모가 닿을 때마다 신경을 건드리는 것처럼. 인후통에 좋은 캔디를 입에 넣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다. 사탕이 치아에 닿을 때마다 신경 치료하는 기분이 들었다.


피부가 따가운 증상은 처음부터 있었다. 옷이 닿기만 해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따가웠다. 피부가 따가운 증상, 심각한 통증이 지나고 나니 비소로 나의 후각과 미각의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떤 음식이든 대표적인 맛 하나만 느껴졌다. 그저 짜기만 하거나 달기만 하거나. 한국 음식점에서 감자탕을 배달했다. 나는 몸이 좋지 않을 때 감자탕을 먹는다. 누군가의 뼈를 우려낸 국물이 나의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는 것만 같아서이다. 이런 잔인한 이유로 이번에도 감자탕을 시켰다. 감자탕은 ‘이거다’라고 한 가지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러 겹의 맛을 낸다. 음악으로 치면 소나타가 아니라 콘체르토이다. 오케스트라와 독주자가 함께 만들어 내는 음악 말이다. 독주자와 다양한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타악기가 제 자리에서 제 소리를 내면 하나이지만 여러 개인,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감자탕에서는 독주자 격인 돼지 목뼈가 감자, 시래기, 들깻가루, 된장 고추장 육수와 어우러져 감자탕 고유의 맛을 낸다. 이 맛은 감자탕 맛이지만 감히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에 걸린 나에게 감자탕은, 무취의 짠맛 나는 국물일 뿐이었다.


코로나가 나의 점막에, 혓바닥에, 등짝에 얇게 얇게 펴 발라져 있었다. 그렇게 나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내가 과연 나인 것인가 의심하게 만들었다. 내 육체 안팎에서 일어나는 일들 덕분에 시종일관 나는 내가 코로나 환자라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증상이 시작된 건 한참 전이지만 양성 결과를 받은 것은 최근이다. 요즈음 미국에 얼마나 많은 검사자와 확진자가 있는지 검사 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결과는 시뻘건 글씨로 ‘POSITIVE’라고 적혀 있었다. 마치 주홍글씨라도 되는 듯 이 Positive는 나를 positive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다. 부정적인 생각들로 머리가 가득 찼다. 심장 통증이 계속되면 어쩌지? 후각과 미각이 1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는다면? 중증이 아니더라도 코로나는 코로나다. 감기처럼 여기기에는 어쩐지 기분 나쁜 무언가가 육체와 정신을 따라다닌다. (코로나를 겪은 분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격리가 끝나는 날, 몸은 여전히 별로였는데 쓸데없이 기분이 좋았다. 올해 처음으로 많은 눈이 내렸다. 남편과 아이들과 모처럼 콧구멍에 바람을 넣기 위해서 잠시 차를 몰고 나갔다. 대단하게 돌아다닐 체력이 없어서 그저 약과 케이크를 픽업하고 오려는 길이었다. 한 시간 남짓 집을 비웠는데 그 사이, 집에 도둑이 들었다.


(다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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