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다 못해 말라 쭈그러진 내 골에서는 더 이상 나올 게 없다. 나올 게 없다는 선명한 사실 그대로를 적는다. 적고 보니, 그래도 한 줄이 나왔다(약간 안심). 창밖 벚꽃을 본다. “식탁 창문에서 벚꽃을 볼 수 있다니 나는 우주 최고의 행운아야!” 생각할 줄 아는 청빈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나는 그저 골빈사람이다.
빈 골을 방치하기가 뭣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으니 뭘 집어넣을 수도 없다. 일주일이 넘은 것 같다. 빈 머리로 지내는 동안에도 식구들 밥은 안 굶겼으니 다행인건가. 하늘을 본다. 맑고 깨끗하다. 거칠게 말라가던 나무에 새싹이 돋고 있다. 나무는 빈 것 같이 보여도 속이 꽉 차 있다.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나의 빈 머리도 공짜로 채워지지 않는다. 값을 치러야 하는데 치르기가 힘겹다. 몸은 무겁고 머리는 가볍다. 그래서 몸이 가라는 데로 머리가 간다. 누우라면 눕고, 자라면 잔다. 몸이 머리의 시종이 아니라 머리가 몸의 시종이 되었다.
토끼 같은 내 새끼가 옆에서 혼자 체스를 둔다. 여섯 살밖에 안 된 놈이 제법 집중하여 체스판 앞에 앉아 있다. 이 아이의 머리는 필시 나보다 훨 밀도가 높을 것이다. 나도 채우기에 전력이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을 텐데. 지난 세월 동안 닥치는 대로 채웠던 것 같은데. 그렇게 채워진 것들이 꽝꽝 뭉쳐 지금의 나를 만들었을 텐데, 희한하게도 나는 비어있다. 깨끗하게.
아니 깨끗하다는 건 거짓말이다. 더럽게 비어있다. 더럽게 비어있다는 것은 이물의 함량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비어있다고 할 수 없다. 오염된 빈 골을 가진 사람, 그 사람이 여자일 때 우리는 골빈여자라 부른다.
오염되고 가벼운 머리가 꾸역꾸역 몸을 이끌고자 하면 몸은 막장으로 향한다. 막장. 깊고 깊은 갱도의 막다른 곳. 거기서 마주하는 것은 오로지 시커먼 벽과 나 자신이다. 막장에 다다르면, 나를 마주하고 나면, 그다음은 돌아 나올 일만 남는다. 어떻게든 돌아 나오기만 한다면 다행이다. 돌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매몰, 곧 죽음을 의미하므로.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다면 에비앙 같이 비싸고 상쾌한 물로 나의 더럽고 빈 골을 박박 헹구고 싶다. 그렇게 이물의 함량을 줄이고 유산균 같은 프로바이오틱스로 빈 골의 점막을 떡칠하고 싶다. 좋은 균이 장을 지배하듯 나의 빈 골을 지배해 준다면 깨끗한 똥을 싸듯 깨끗한 글을 쓸 수 있을테니 말이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이 빈 골을 요란히 흔들어 겨우 여기까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