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G Oct 26. 2022

심상하지 않은 평범한 날들

내 기준 ‘보통의 날’에는 아침 제 시각에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 몫의 도시락을 싸고, 차로 내려주고, 혼자 아침을 먹는다. 천천히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묵상을 하고, 책을 읽기도 한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나가서 사 오고, 밥을 하고, 아이들 픽업 시간에 늦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는 차가 고장 났다. 견인차가 왔고 따라서 차를 빌려 써야 했다. 제 시각, 제 할 일이라는 것이 다 어그러졌다. 이까짓 일로 나는 소파 구석에 쭈그려 앉아 꺼이꺼이 눈물을 흘렸다. 통장이 빵구날 걱정 때문도, 하마터면 사고로 죽을 뻔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나의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학생은 학교에 가고 직장인은 직장에 가고 나는 집을 돌보는 평범. 일요일에는 교회를 가고 밥때에는 밥을 먹고 차도 마시는 일상. 일상은 가끔 깨지기도 하는 것이다(세상을 살다보면 카톡이 안 되는 사태도 벌어지니까). 그런데 일상에게 그런 틈을 조금도 내주지 않는 나는 왜이리 엄격하고 고약한가.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는 막내가 아팠다. 토하는 아들의 등을 쳐주면서 나도 다 시원하게 게워내고 싶었다. 불편하게 얹혀있는 모든 것들을. 아픔과 미움, 실망과 상처, 분노와 상실을.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퇴적되어 있어서 작은 일로도 소화불량을 겪는 모양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사랑하며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때문에 관계가 무너지고 겪게 된 상실감은 고통 그 자체였다. ‘다 겪어봐야 아는 것이로구나’. 말로는 참 쉬운데 체득하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사별을 제외하면 내 인생에서 겪은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아니, 죽음이 순리라고 치면 그보다 더. 평범한 기대, 평범한 신의, 평범한 사랑의 가치를 뒤집어 놓는 일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돌아보면 내 인생엔 평범하고 지루한 날들도 별로 많지 않았다. 자주 심상찮고 예사롭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문득 나보다 훨씬 큰 불행의 소용돌이 속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이들이 걱정됐다. 모두에게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적당하게만 오면 좋겠다. 요즘 한국은 마약 문제로 심각하다고 한다. 필로폰은 한 번만 투약해도 엄청난 도파민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 양이 한 사람이 분출할 수 있는 평생의 양보다 많다고 한다. 그러니 맛을 을 본 이상, 약 안 했을 때의 상대적 상실감을 극복하기란 사실상 불가능 한 것이다. 좋은 일도 적당히 와야 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상대성을 이겨내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뽕도 하지 않았는데  때마다 온몸이 가려운 이유를 모르겠다. 약물 중독자들은 매일 몸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기분이 든다고 한다. 박박 긁는 덕분에 그들의 몸은 언제나 피딱지 투성이다. 딱지가 아문 사람은 중독의 늪에서 벗어난 것이라   있다. 딱지가 떨어지고  살이 듯,  떨쳐내고  삶을 사는 것이다. 그들처럼 나도 불쾌한 몸과 마음을 어서 떨쳐내고 싶다. 간지럽고 아픈 것이 아물 때까지 불편하더라도 건드리지 말고  버텨야  것이다. 기도하고, 커피로 수혈하고, 초콜릿을 털어 넣고, 몸을 바쁘게 움직이기도 하니까 좋아질 것이다. 사실 많이 좋아졌다.   


심상하지 않은 평범한 날들을 지난다. 누군가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 말하겠지만 나는, ‘이것이 삶이니 두 눈 똑바로 뜨고 보라’고 외친다.



이전 11화 가재발 선인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