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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Aug 04. 2022

서울의 밤

내일 오전 7시에 기상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잠이 오지 않는다. 서울의 밤이다(엄밀히 말해서 인천의).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게는 아침이었던 .  밤을 그리워했었다. 오늘따라 아빠가  주무신다. 어제까지는 소리를 지르셨었는데, 당신의 엄마를 많이 부르셨었는데. 신생아를 재우고 나서 언제 깰지 몰라   이루는 엄마처럼 나는 불안하게 깨어 있다.


불안. 병원에서 불안장애라고 했다. 한국 방문 전 한 유명 가정의학과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에 은혜(?)를 많이 받았었다. 강남까지 기어코 찾아간 그분의 병원에서 선생님은 내게 보람씨의 ‘불안장애’가 문제입니다.라고 말해 주셨다. 두꺼운 두 개의 검진 결과 파일보다 더욱 유의미한 발언이었다. 다른 날 찾아간 정신과에선 좀 더 디테일한 병명, ‘공황장애’ 를 얻었다. 명백한 증상이 있었으니까 사실 놀라지도 않았다. 다만 정신이 이토록 몸을 지배한다는 사실에 몸서리가 쳐졌다. 모르는 두 사람 앞에서 눈물을 훔치고 나올 때마다 왠지 모르게 홀가분해졌다. 몰라서 불안했는데 알고나니 불안이 컨펌되어 덜 불안한 기분.

수액맞는 swag


기쁘다. 인생이란 그렇게 불안한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역시 나에게도.


두 분의 의사 선생님이 하나같이 조언해 주신게 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라.’ 이상했다. 제대로 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는 내게 잘하려고 하지 말라니. 하긴, 다 잘하면 잘하려고 할 필요 조차 없을테니까. 과자봉지 대충 뜯고, 구겨진 이불 펴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주차 선에서 벗어나도 괜찮고, 누군가에겐 좀 못된년이어도 된다고. 오늘 하루 이렇게 상당히 늦게 자도 어떻게 안 된다고.


세상 불안하고 기쁜 밤이다. 내가 사랑하는 서울의 밤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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