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을 맞이하는 최 여사에게 바침
설거지를 하다 왈칵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녹슬고 구겨진 양은냄비. 며칠 전 부엌 짐을 쌀 때 한참을 바라보다 박스 안에 고이 모셔뒀는데 남편이 라면을 끓인다고 다시 꺼낸 모양이다.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과 내 눈물이 그릇을 씻어내며 쏴아악 내려간다. 하수구로 떨어진 나의 눈물방울들은 어디로 흘러갈까, 어느 바다에서 다른 눈물들과 만나는 것일까. 나의 눈물이 존스 비치를 거쳐 동해 바다로 흘러가 준다면, 그러면 좋겠다.
12년 전,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떠나야 하는 막내를 위해 엄마는 도착 후 ‘당장 쓸 수 있는’ 가볍고 부담 없는 가재도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에 가면 언제 다시 한국에 나올지 모르는 딸에게 이것저것 바리바리 챙겨 보내려는 모습이 초조해 보였다. 어쨌든 이민가방의 무게를 너무 늘리면 안 되니까, 양은냄비가 제격이었다.
“가서 제대로 된 냄비 사기 전까지 여기에 라면이나 간단한 국을 끓여먹어. 도착하자마자 뭐든 먹고살아야 하니까.”
살림이라곤 해본 적 없는 막내딸. 먼 타국에서 먹고 살 일이 걱정이셨을 거다. 엄마는 어떤 마음이셨을까, 말도 안 통하는 곳에 살러 가는 딸에게 양은냄비 하나를 쥐어 보낼 때의 심정은.
나는 집에서 네 블록 떨어진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 아주 가끔, 픽업 시간에 늦어 뛰어야할 때가 있다. 조급한 마음에 심장이 터져라 뛴다. 바람을 맞으며 뛰면 두드러기가 나는 환자이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뛴다. 목 빠지게 기다릴 아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마음이 급해진다. 얼굴은 이미 학교에 가 있는 것 같이 내달리는데 다리가 따라주지 않는다. 이럴 땐 내 발에 모터가 달려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엄마는 아무리 빨리 달리고 달려도 닿지 않을 곳에 나를 보냈으니 그 심정이 말도 못 했을 거다. 발에 모터를 달아도 한참인 곳에, 비행기로도 하루의 절반 이상을 날아가야 당도하는 곳에. 힘들어서, 지쳐서, 슬퍼서, 외로워서 엄마가 픽업해주길 애타게 기다리는 딸. 한달음에 달려가 안아주고 싶을테지만 그럴 수 없는 곳에 딸을 떨어뜨려 놓고, 엄마는 종종 아픈 가슴을 부여잡았을 것이다. 마음으로 달리고 달려가다 숨이 벅차오르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그저 주저앉아 울고만 계실 분은 아니다. 오히려 자리를 고쳐 앉아 무릎 꿇고 기도하는 분이다. 엄마는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하셨다.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에게, 어디든 달려가 당신 대신 딸을 꽉 껴안아줄 수 있는 분에게. 엄마의 픽업을 기다리던 나는 엄마의 기도로 지금껏 살아있다. 양은냄비가 넘치고 넘칠 만큼의 눈물을 쏟으며 나를 위해 기도했을 엄마를 생각하며 양은냄비를 씻는다.
엄마를 생각하면 목에 커다란 호두가 걸린 기분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듣기만 해도 웃음 짓게, 눈물짓게 하는 이름. 엄마에 대해 글을 쓴다는 것은 나로서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 가끔 누군가가 자신의 ‘엄마’에 대해 쓴 글을 읽기는 한다. 그러다 그 글을 쓴 사람이 글 쓰는 동안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을까 상상하고는 괜히 나까지 기가 빨려 앓아눕고 만다. 학생 시절 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탄 글의 제목은 ‘아버지’였다. 그때도 마음으로 울었겠지만 ‘엄마’라는 두 글자보다는 쉬웠으니까. 언젠가, 지인이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쓴 글에서 자신의 엄마를 ‘나의 심장’이라 표현한 것을 보았다. 맞다. 우리 엄마도 나의 심장이다. 심장이 멈추면 나는 죽는다. 심장이 열심히 뛰기에 파닥파닥 오늘날 내가 살아있는 것이다.
3월 1일로 이사날짜가 잡혔다. 한국은 3.1절이고 3.1절은 우리 엄마의 생신이다. 그리고 올해 생신은 하필 엄마의 칠순이다. 믿기지 않는다. 아직도 젊고 예쁜 울 엄마가 벌써 칠순이라니. 그 예쁜 엄마가 집에서 아빠의 병수발에 발이 묶여 산다니. 그리고 이번엔 나를 목 빠지게 기다리실 엄마를, 찾아가 안아드릴 수 없다니.
엄마의 양은냄비를 다시 이삿짐 사이에 넣는다. 미시간을 거쳐, 뉴욕을 지나 이제 뉴저지에서도 이 냄비는 나와 함께할 것이다. 여태껏 나를 먹이던 이 냄비가 새로운 곳에서도 역시 나를 먹여 살릴 것이다. 굶지 않게, 오늘도 씩씩하게 하루를 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나는 발에 모터가 없어 칠순을 맞은 엄마에게로 달려갈 수 없지만 앉은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무소부재하신 그분께. 엄마를 꼭 끌어안아 달라고, 나 대신 함께 해 달라고.
생신 축하해요 엄마,
죄송하고 사랑해요 최 여사.
2021년 2월 23일
뉴욕에서
엄마의 영원한 막내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