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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G Jun 07. 2022

손흥민이 웃을 때

웃으면 흥이 나고 흥이 나면 골을 넣는

웃기지도 않는데, 웃을 일이 아닌데도 이유 없이 웃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런 자들을 멸시하며 살아왔다. 심지어 울어야 마땅한 상황에서까지 웃는 기이한 사람들이 있다. 나는 매사에 부정적이고, 의심이 많고, 세상에 지독하리만치 비관적인 사람으로서 이런 사람들을 한없이 가식적이고 실없다 여겨왔다.


개인적으로 요즘 내게는 웃을 일이 더 없다. 힘든 일들이 연달아 찾아와 세상을 더욱 깊이 비관하며 지내는 와중이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은 점점 더 우울, 부정, 불안으로 채워졌다.


상황이 힘드니까 조금이라도 웃고 싶어서 코미디언들이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신기하게 남을 웃기는 사람은 또 잘 웃기도 했다. 별로 웃기지도 않은 동료의 드립에 그들은 서로 허리가 끊어져라, 목청이 터져라 웃어주었다. 그게 과연 모두의 흥을 더욱 돋우기는 했다. 반면 나는 그걸 보면서, 웃으면 지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러다 도저히 못 참게 웃기는 순간에만, ‘그래, 좀 웃겼다’ 이러면서 한쪽 입술을 씰룩거렸다. 혼자서 하는, 아무 명목도 이득도 없는 ‘웃참베틀’인 것이다.


그렇게 웃음기 하나 없는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최근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손흥민 선수가 또다시 엄청난 일을 해냈고(아시아인으로는 최초 EPL 득점왕 자리에 오름),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낸 그의 멘탈을 뇌과학적 측면에서 분석한 거였다.


다름 아닌 ‘웃는 손흥민’에 관한 분석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골을 넣어야 한다는 압박감이라든지-에서는 신경계와 근육계가 긴장하기 마련인데 손흥민 특유의 무기, ‘웃는 습관’이 도파민의 분비를 도왔고, 그렇게 ‘운동 자유도’를 확보했으며, 결국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넓은 시야를 유지할 수 있었을거란 설명이다. 축구팬이라면 넓은 시야를 잃지 않은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것이다.


손흥민의 ‘웃음’ 너머에 실은 엄청난 피눈물이 숨어있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피눈물 나는 훈련 중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었다. 웃지 않고 살아 내가 이 꼴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세상은 더럽고 인간은 타락했으며 나는 항상 멍청이이다. 어제는 이래서 짜증이 났고 오늘도 별 희망이 없으며 내일은 더 최악일 것이라는 생각. 이런 염세주의가 오랜 시간 나를 지배해 온 것 같다. 그러니 세상만사에 ‘웃어넘기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나의 웃음은 조소나 실소나 썩소가 주종목이라 인생에 긍정적 피드백을 주지 못한다. 뇌에서 ‘도파민’이 나와야 하는데 나는 그저 ‘도라이’였다.


내 친구 중 하나는 때와 시를 분간 못하고 터져 나오는 웃음이 고민이라고 했다. 남편이나 아이들이 화나게 했을 때, 막 화를 내다가도 얼굴만 보면 웃겨 죽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해가 잘 안 갔다. 화가 날 땐 웃음기를 싹 거두어야 한다. 그러고선 상대와 밤이 샐 때까지 대치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알고 보니 잘 웃는 사람도 딱히 웃겨서, 좋아서 웃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어색해서 웃고, 멋쩍어서 웃던 게 하나의 습관으로, 처세술로 자리 잡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게 좋은 습관이어서 긍정의 선순환을 만들어간다는 거다. 사실 문제 상황에서 매번, 이건 이렇다고 ‘짚고 넘어’ 가는 것보다 ‘웃어넘기는’ 태도가 훨씬 고급지고 성숙한 것이긴 하다. 옛말 틀린 게 하나 없다.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는데!


영화감독 윤가은은 <호호호>란 책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그랬다. 난 언제나 뭐든 좋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별별 것들에 다 쉽게 빠지고 크게 흥분하기 일쑤였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는 걸 좋아하다가 더 좋아하게 되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좋아서 좋은 게 아니라 뭐든 좋아한다고, 좋아하다 보면 더 좋아진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웃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웃겨서 웃는 게 아니라 뭐든 웃고, 웃다 보면 더 웃게 되는 게. <호호호>의 부제마저 ‘나를 웃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이다. ‘나를 짜증 나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라면 대하 장편 소설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나에게 이 책은 매우 참신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를 좋아했던 기억과 감정을 더는 잊지 않기 위해 자꾸 나만의 리스트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좋아하는 경험은 늘 귀하고 특별한 거니까                            

                                                                                                                                           윤가은, <호호호>


나는 완전 정반대의 사람으로 무언가 싫은 기억과 감정을 더는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나만의 리스트를 만들어왔다. 실망하고 힘들었던 경험을 귀하고 특별하게 여겼던 것일까? (!) 나의 이런 삶의 태도는 정말 잘못됐다. 나도 이제 좋은 것의 리스트를 만들어야 한다. 긍정의 선순환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이름도 손흥민인 손흥민의 ‘흥’은 ‘흥칫뿡’의 ‘흥’이 아니라 웃는 ‘흥’이다. 흥이 많아 웃는 게 아니라 자꾸 웃으니 흥이 나는 흥이다. 한번 사는 인생, 나도 이제부턴 흥나게 호호호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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