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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쑤욱 Nov 30. 2023

가스라이팅과 따돌림 종합세트를 받다 : 은행원(1)

또 돈이 틀렸어


대학교를 졸업하고 들어간 첫 직장이 은행이었다. 비록 계약직이긴 하였지만 경쟁률도 꽤 높았다. 1차 서류전형 2차에서 3번의 여러 심충 면접 등 꽤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서 최종합격했다. 잘하면 정직원으로 전환시켜 준다는 달콤한 말에 정직원의 꿈을 안고 입사했다.

5박 6일? 정도의 신입교육을 받고 지점에 발령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창구 일을 맡았다. 단 며칠 만의 교육으로 일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한 내가, 돈을 받고 입출금을 하는 일은 너무나 생소해서 쉽지 않았다. 느긋한 성격이라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일도 무척 버거웠고 업무 익히는 속도도 늦었다. 그렇게 나의 첫 사회생활은 단추 잘못 끼워졌다.


은행 업무는 4시 30분에 문을 닫는다. 그런데 4시 30분 이후부터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다. 하루종일 입출금했던 현물과 컴퓨터 잔고가 맞는지 확인한다. 남아있는 돈을 계산하고 컴퓨터에 나온 금액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나는 잘 맞지가 않았다. 어디서 잘못한 건지 처음부터 전표를 다 확인하고 찾아야 했다. 못 찾으면 내 돈을 넣어서 맞췄다.


문제는 돈이 맞지 않는 경우가 너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나로 인해 직원들이 같이 잘못된 원인을 찾느라 지점 전체 퇴근이 늦어진 일이 잦았다. 그렇다. 나는 가장 일을 못하는 민폐 신입이었다. 마감할 즈음에는 ‘또 돈이 틀리면 어떡하지?’ 하며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너 왜 이리 못생겼어? 가스라이팅 당하다


당시 나는 대학교를 갓 졸업한 한창 예쁠 20대였다. 지점에 발령받고 들어갔을 때 남자 직원들은 반겼다.  물론 내가 뛰어난 미인은 결코 아니다. 젊음이 주는 예쁨이 있었을 것이다.

창구 일을 하면서 오는 손님들에게  “어서 오십시오 ” 라며 인사도 했다. 어린 여직원이 인사를 하니 은행 분위기가 환해진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성차별적 발언과 그런 업무였는데, 그 당시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지점에서 업무를 익힌 후 분점으로 나가게 되었다. 지점에서 출근하고 분점으로 나가 일하고 다시 지점으로 와서 퇴근했다. 분점은 과장님과 나, 그리고 경력이 많은 직원 셋이서 일하였다. 문제는 그 경력 많은 직원이었다. 그 직원을 왕언니라고 부르겠다. 그 왕언니는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아줌마였다. 지점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서 자기 일을 다른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설렁설렁 일하고 제일 일찍 퇴근한 얌체 같은 스타일이었다.

  

왕언니기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왕언니가 가장 오랜 시간 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예 의자를 내 쪽으로 돌려서 앉았다. 그리고 나의 행동 하나하나 감시하듯 쳐다보았고 늘 이런 말을 했다.


“쑤욱, 넌 진짜 못생겼다?”

“너 너무 못생겨서 결혼하기 힘들겠다. 어쩌니?”


종일 나만 쳐다보면 못생겼다는 말을 반복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어이없다.’라며 무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대 초반인 그때 나는 나름 인기가 있었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며 모르는 남자가 쫓아오기도 했고 과팅이나 소개팅에서도 항상 애프터신청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 나는 왜 이리 예쁠까?”

왕언니는 틈만 나면 거울을 보았고 자신이 예쁘다고 스스로 칭찬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 같았다. 왕언니는 눈만 예뻤다. 쌍꺼풀진 큰 눈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그리 예쁜 외모는 아니었다. 얼굴은 크고 코는 약간 들창코였다. 딱 봐도 평범한 아줌마였다. 하지만 머리는 늘 미스코리아 머리처럼 부풀게 화려하게 했고, 화장을 매우 진하게 했다.


못 생겨서 결혼 못하면 어떡해?


“쑤욱, 넌 못생겨서 어쩌냐?”

못생겼다는 말을 매일 듣다 보니 어느 순간 왕언니 말처럼 나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 못생겼구나."

‘못생겨서 결혼할 수 있을까? ’


이런 마음이 생겼고 외모에 자신감이 사라졌다.


하루는 과장님이 그런 내가 안타까웠는지 이런 말도 했었다.


“쑤욱 씨, 못생기지 않았으니 그 말에 신경 쓰지 마세요.”     


하지만 과장님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미 나는 가스라이팅 당해서 이성적인 판단이 안 되는 상태였다. 왕언니의 지속적인 '못 생겼다' 가스라이팅 결과로 어느 순간 나도 스스로 못생겼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왕언니 말처럼 결혼을 못 할까 봐 걱정이 되어 잠을 못 자기도 했다. 정말 그때는 못생긴 외모가 심각한 고민이었다.


가스라이팅은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못하게 만든다. 같은 말을 계속 듣다 보면 그 말이 진실이라고 믿게 된다. 뉴스에서 가스라이팅으로 인한 사건이 나오면 왜 그렇게 바보같이 당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가스라이팅이 얼마나 사람의 영혼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피폐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누구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이다.  함부로 대우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는 아무도 없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나를 괴롭힌 그 왕언니가 미워서 오랫동안 힘들었다. 직장을 관둔 뒤에도 왕언니가 잘못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왕언니는 IMF 때도 구조조정으로 잘리지도 않고 오히려 승진하여 잘 나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무 화가 났다.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시간이 지나 상처가 옅어지고 중년이 되었을 때 나는 조금은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회는 왕언니처럼 처세술이 뛰어난 사람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 언니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서 자기 일을 아랫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실제적으로는 일은 적게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을 다한 것이었다. 업무 시간 내 맡은 일을 다 끝냈기에 칼 퇴근하는 일 잘하는 직원이었다.


그리고 항상 자신감이 넘쳤으며 지점장님이나 과장님께 잘 보이려고 늘 아부를 했기에 윗사람들은 왕언니를 좋아했다. 반면 나는 일에 서투렀고, 사람 관계에 소극적이었다.


나와 다르게 왕언니는 사회생활에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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