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배우려다 인생을 배운다(10)

-길은 어디로든 연결되어 있다-

by 수다쟁이

호랑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바짝 짜리면 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나무 문 뒤편의 세계로 들어온 지 3주째..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 덕에 카페는 갑자기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두 테이블에 10명씩 나눠 앉은 손님들의 주문은 제각각, 그 뒤에도 주문서는 대여섯 개나 밀려있다.

아인슈페너나 마키아토 그리고 스무디 같은 메뉴는

아무래도 손이 한 번씩 더 가는 메뉴이다.

그리고 아직 나는 그런 메뉴는 어떻게 만드는지

레시피조차 전달받지 못했다.


음료나 차가 나오는 시간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아무리 빨리 손을 움직여도 갑자기 밀려드는 손님들에 대한 행복한 비명은 모두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최대한 빨리 음료를 만들어 손님한테 전달해야 하는데 당황한 머리는 이리저리 우왕좌왕하게 만들고 일의 능률을 떨어뜨렸다. 주부의 내공으로 나는 최대한 정신줄을 붙들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바쁜데 혹여나 걷다가 실수로 찻잔을 엎지르거나 잘못 배달을 하면 죄인 아닌 죄인이 될 것 같은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서브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마치 베테랑인 것처럼..


"아~~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면 어떡해요?"하고 말씀하시는 손님에게 "아! 너무 죄송합니다. 갑자기 주문이 밀려서 어쩔 수 없었어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정중한 사과에 잠깐 짜증이 났던 손님도 얼굴에 미소를 띤다.

"맛있게 드세요~~^^"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껏 훈훈하다.

나의 진심을 상대방도 이해해 주었다는 안도감과

지금 이 시간은 최소한 내가 이 커피숍의 주인이라는 마음으로 손님을 대했다는 알 수 없는 뿌듯함에 정신없이 바쁜 발걸음이 조금은 덜 힘들게 느껴졌다.

일하는 보람을 찾는 순간이기도 했다.


세시가 넘어서야 잠시 쉴 틈이 찾아왔다.

수고의 의미로 사장님이 내어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 든 나도 잠시 한 숨 돌렸다.

내가 와 있는 세 시간 남짓이 이 카페가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이고 나도 집에서의 시계태엽보다는 열 배가 빠른 속도로 시계태엽을 감았다.

무사히 오늘 할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아메리카노의 새콤 씁쓸한 향이 몸 구석구석에 베어 들었다.




일을 한 지 이제 곧 한 달이 다가온다.

아주 작은 돈이지만 통장에 첫 월급이 들어오면 나는 그 돈을 어디에 쓸까? 멋진 레스토랑을 예약해 가족과 식사를 할까?

아니면 그동안 가족을 위해 고생한 남편에게 멋진 선글라스라도 하나 마련해 줄까?

머릿속이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있다.

그 혼자만의 수다가 몹시 즐겁다.


작년 처음으로 바리스타학원에 등록을 할 때는

내가 지금의 이 길까지 오게 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그저 시간의 무료함을 때우기 위한 호기심이었다. 그 길에서 나는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또 이런저런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은 늘 여행처럼 새롭고 신비하게 다가온다.

커피의 종류와 향이 다르듯 사람들의 모습과 향도

모두 제각각이라서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나를 이루면 또 다른 길이 펼쳐지고, 그 길의 끝에 서면 길은 또다시 어디론가 이어진다는 것을

커피를 배우며 알게 되었다. 매일 마시는 커피가 우리의 곁에 머물러 조금씩 다른 맛과 향기를 전하는 것처럼 나의 삶이 어디를 향해 갈지는 모르지만 하루하루 조금씩 새로운 길로

향하는 문 앞에 서 있었으면 좋겠다.

특별히 오늘은 달달하고 부드러운 아인슈페너가 나의 길동무가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