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배우려다 인생을 배운다(9)

-실수-

by 수다쟁이

커다란 나무 문을 열고 두 번째로 커피숍에 들어섰다. 아직까지 이 커다란 문은 내가 살던 안일하고 편안한 세계와 다른 길로 통하는 마법의 문처럼 어색함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쑥스러움을 안고 들어선 커피숍은 여기저기 꽉 찬 손님들로 북적북적 정신이 없다.

홀을 돌아 커피기계가 있는 주방공간으로 들어서니

개수대에는 설거지 그릇이 쌓여있고 주문받은

주문서가 여러 개 꽂혀있었다.

아직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이 안 오는 나는

서둘러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 그릇 앞에 섰지만

지금은 설거지할 타이밍이 아니다.


매니저의 요구에 따라 나는 아이스 잔을 내리고 얼음을 담았다. 여름이 다가오니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문이 제일 많다. 간혹 커피가 싫은 사람들은 대추차나 생강차를 찾기도 하는데 작은 포트에 일정한 양의 대추청을 담아 끓이는 대추차는 이 집만의 시그니처 메뉴이기도 하다.

잔에 가득 흘러넘치기 직전의 대추차를 들고

살금살금 까치발로 곡예를 하듯 걸어가 손님 앞에 내려놓는다.

'휴 넘치지 않길 다행이다.'

간혹 차가 흘러넘쳤을 때는 난감하다.

어찌할 줄 몰라 속은 끌탕이지만 나름 적절한 멘트를 날려 무마시킨다.

"아~사장님이 많이 주신다고 담았더니 살짝 넘쳤네요~~^^"

손님들은 싫어하기보다는 사장님의 넉넉한 인심에 미소 짓는다. 사장님은 의도적으로 잔은 채워야 맛이라는 신념으로 넘칠 듯 잔을 채운다고 했다.


바쁜 시간에 들어선 나를 보고 매니저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기쁨을 표현했지만 현실은 구세주가 아니라 어리바리한 사고뭉치였다.

진동벨이 없고 차를 가져다주는 시스템인 이 커피숍은 간혹 주문자를 보기 전에는 누가 주문을 했는지 알쏭달쏭하다. 특히 아직까지 주문을 받을 수 없는 나는 알려주는 대로 서빙을 해야 한다.


혼자 앉아 아이스라테를 주문한 손님을 지나쳐 나는 카푸치노를 주문한 손님께 확인하지 않고 아이스라테를 전달했다.

아무렇지 않게 아이스라테를 받은 손님은 라테를 입으로 가져갔고,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돌아온 나는 매니저와 사장님의 다소 격앙된 언성에 뭔가 잘 못됨을 눈치챘다. 바삐 다시 라테를 가져다 준 테이블로 향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주방에선 아이스라테 한 잔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라테를 가져다 준 손님에게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제가 처음이라서요.."라고 사과했고,

손님은 "그럼 오늘 짤리시나요? 제가 내일부터 나올까요? ^^""저는 두 잔 마셔 좋습니다." 하며 농담으로 사과를 받아주었다.

커피를 만드는 사장님께는 머리가 쭈뼛서서 제대로 사과를 못하고 매니저에게만 죄송하다는 말을 전했다.

바쁘지 않을 때는 라테 한잔의 실수는 별 것 아니지만

주문이 밀려있을 때는 커피 한 잔의 실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을 만큼 송구스러운 일이었다.


두 번째라 좀 괜찮을 줄 알았던 마법의 문 뒤의 세계는 아직까지는 나에게 두렵고 실수투성이인

이상한 나라의 커피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