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개들이 그려지고동물의 먹이를 핥아먹는 아이도 등장한다.그것을 바라보는 펄롱의 마음은 쓸쓸하다 못해 슬픔으로침잠했고,
스산한 한 폭의 혹독한겨울풍경으로 완성된그림은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실상은 더 처참했다.
1985년의 아일랜드는심각한경제위기에 빠져있었고,사람들은 직장을 잃었으며, 회사는 문을 닫았고, 가게와 상점도 폐업을 했다.
심지어는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이들도 있었다.
더 이상 뒤돌아볼 수 없는 주변환경이 펄롱의 마음을 괴롭히면서도
마음속 다른 한편으론 지금의 평탄한 삶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마음이 굳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펄롱의시선은 자꾸 힘든 사람들에 꽂히고,
그가 자랐던 어린 시절로 펄롱을 데려다 놓았다.
펄롱의 엄마는 어린 미혼모였다.
가족들도 외면한 열여섯 살 소녀를 거둔 것은 소녀를 일꾼으로 부리는 미시즈 윌슨이라는주인집 부인이었다. 부인은 소녀를 병원에 데려가주고
다시 그 둘을(펄롱과 엄마) 집으로 데려왔다.
아기였던 펄롱은 미시즈 부인의 부엌에서 자랐지만
부인의 돌봄과 배려를 받으며 자랄 수 있었고,
그녀에게 글도 배울 수 있었다.
펄롱의 탄생은 아일랜드의 경제대공황처럼 가혹했지만
윌슨부인은 벌거벗은 펄롱에게
따뜻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
아주 사소한 것들로..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은 펄롱의 내면에 아주 깊게 자리 잡았고,
그가 앞으로 헤쳐나갈 고민과 행동에 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어느 날 펄롱은 어린 시절
미시즈 윌슨 부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각했다.
펄롱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던 <크리스마스 캐럴>이란 책은펄롱이 알지 못하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커다란 도덕적 가르침을 갖게 했고, 변화하지 않는 삶에 대한 의미에 대한 물음표를 던졌다.
p44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
똑같은 일이 날이면 날마다 여름 내내 반복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석탄 야적장에서 일을 하는 펄롱은
언덕 위에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은 수녀원으로
배달을 가게 된다. 수녀원에 관해 떠도는 소문은 많았지만(타락한 여자들이 교화를 받는 곳이라는..
어떤 이는 그냥 모자 보호소라는..) 그건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무성한 소문의 수녀원에서 그가 맞닥뜨린 모습은 참혹했다. 어린아이들은 겁에 질려있거나 혹은강에 빠져 죽을 만큼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런 아이들을 모른척하고 나와야 했던 펄롱은 자신이 가야 할 삶의 방향을 잃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미시즈부인이 아니었으면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은 지금 어디에 있었을까? 하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일요일 새벽
펄롱은 또다시 수녀원으로 배달을 나가야 했다.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을 한편에 묻고..
평온한 삶의 유혹은마음속의 악마처럼 펄롱을 괴롭혔지만 운명처럼 펄롱은 자신과 만나러 가는 기분을 느꼈다.
이른 아침 수녀원의 석탄 광은 닫혀 있었고, 그 문 안에서 펄롱은 며칠째 갇혀 있는 소녀와 맞닥뜨린다. 소녀의 배설물과 함께..
그리고 암묵적으로 수녀원장과 대립하게 된다.
마음속에는 늘 도망가고픈 마음과 꾸역꾸역 버텨온 시간이 함께했지만결국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뒤 돌아 나오게 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펄롱은 한 해의 일을 모두 마치고집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자꾸만 주변을 배회하게 된다. 마음속에는 커다란 불안감이 자리 잡았지만
길을 잃었던 곳에서 만났던 기인한 노인의 말이
펄롱에게 용기를 주었다.
"이 길은 어디든 가고 픈대로 데려다줄 것이라고.."
펄롱은 수녀원의 석탄 광 속의 소녀를 데리고 나와 집을 향해 걸었다. 대부분은 반갑게 펄롱을 아는 척했지만
어떤 이는 멀찌감치 펄롱은 피해 가거나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그렇지만 펄롱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당당하고 기쁨이 솟았다.그리고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한 것 같았다.
펄롱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아주 평범한 소시민.. 가정을 예쁘게 꾸려가는 성실한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