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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다쟁이 Jul 24. 2024

레이먼드 카버의 -깃털들-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처음으로 그림을 보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고민하게 되고, '그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하고 상상하게 했던 화가는 에드워드 호퍼였다.

사람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빛과 어둠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물이 놓인 위치나 공간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색감이 화려하거나 예쁘지 않아도 오랫동안 시선이 머물렀다.

그의 그림은 한동안 우두커니 바라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마력 때문에

어렴풋이 그림의 매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에드워드 호퍼가 떠올랐다. 알듯 말듯한 그림과 글은 도구만 바꾸었을 뿐 많은 이야기를 품고 무언가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깃털들'이란 작품도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의 직장동료인 버드는 어느 날 자신의 집으로

나와 나의 아내 프랜을 초대한다.

다소 냉소적이고 조금은 이기적이기도 한 프랜은

초대를 크게 달가워하지 않는다.

나와 아내 프랜은 이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도시의 낭만을 즐기는 아이가 없는 평범한 부부이다.

 

도심에서 꽤 떨어진 교외(깡촌)위치한 버드와 그의 아내 올라의 집으로 초대받아 간 날

나와 프랜이 처음으로 맞닥뜨린  공작새(조이)였다.

느닷없는 공작새라니..

나와 프랜은' 하느님 맙소사'를 외치며 기이한 환경에 당황을 한다.

하지만 놀랄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버드의 집에서 발견한, 아내 올라가 교정하기 전 (엉망진창의) 치열모양을 본뜬 석고는  프랜에게는 너무 흉측했고, 기괴했다.

그리고 버드와 올라의 아기는 너무 못생겨 말문이 턱 막히게 했다.(p34. '못생겼다는 말조차 녀석에게는 영예로울 정도였다.')

아기(헤럴드) 버드와 올라가 애완견처럼 키우는 공작새 조이와 노는 것을 즐긴다. 이런  기이한 광경을 보며 나와 프랜은 할 말을 잃는다.


이런 초대의 뒤에 나는 나의 인생이 여러모로 썩 괜찮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날의 초대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초대 이후 나와 프랜의 삶에도 서서히

변화가 생긴다. 프랜은 긴 생머리를 자르고

몸도 뚱뚱해진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아이가 생긴다.

버드와 나는 여전히 친구이지만

오가는 대화는 예전 같지 않다. 내가 그에게 하는 대화는 형식적이고 그도 그걸 느낀다.




도심을 벗어난 깡촌의 시골마을, 더러운 공작새,

오동통한 올라(버드의 아내),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그녀의 기괴한 이빨모양의 석고틀, 웃음기가 사라지게 하는 못생긴 아기, 그들과 가족을 이룬 버드를 통해서 나와 프랜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건 우월감이었을 것이다.

도시에서 멋진 자동차와 멋진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고, 아이 없이 낭만을 즐기던 젊은 부부에겐

그들보다 우리는 훨씬 우월하다는 본능적인 비교에서 우러나는 우월감.

그것이 그들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하고,

나는 저들보다는 나으니 내가 조금 더 망가져도 괜찮겠지 하는 안도감과 상대적인 행복감을 주었겠지..


하지만 카버는 인간의 본능적인 비교에서 우러나는

자기만족이나 우월감의 진실을 인간의 음흉함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P42 진실은, 내 아이에게는 음흉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비교

난 저 사람보다는 학벌이 좋아

난 저 사람보다는 돈이 많아

난 저 사람보다는 키가 크고 날씬해

난 저 사람보다는 얼굴이


이런 비교로 우린 점점 더 음흉한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더 할 말을 잃어가고 껍데기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못생긴 올라를 사랑하고, 자기(버드)는 싫어하더라도 올라가 좋아하는 공작새를 데려와 키우고, 못생기고 뚱뚱한 아기 헤럴드가 언젠가는 미식축구 선수가 될 거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버드에게서 느껴지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특별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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