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다쟁이 Jul 06. 2024

레이먼드 카버의 -보존-

미국의 체호프라고 불린다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다.


'대체 뭘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

 '어쩌란 말이야?'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써놓고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불쑥 화가 나게 만든다.

그런데 이상하게 궁금증이 자꾸 생긴다.


주인공은 어떤 마음일까?

왜 저렇게 행동했지?

아마 나도 저 입장이면 화가 났을 거야~

세상엔 희한한 종류의 인간이 참 많아.

그러다가도

비정상적인 것 같은 사람들의

행동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괴로움에도 공감이 가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보게도 되고..


또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인간 본성의

얄팍한 심리를 들여다보게도 되고,

침잠해 가는 나약한 인간 속에 나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결론은 없어도 생각하게 만드는 

묘한 사람들,

어쩌면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이다.




일자리를 잃은 샌디의 남편은 해고된 날 거실의 소파에서 잠이 든다. 하지만 3개월째 샌디의 남편은 그 소파를 벗어나지 못한다.

샌디가 출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티브이와 함께..

그는 두꺼운 책을 펴놓고 계속 똑같은 페이지를  펴고 읽고 있고, 가끔은 아무 일이 없다는 듯

샌디와 하루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그 소파에서 누워있거나

잠을 잤다.


늦은 오후  퇴근한 그녀가 요구르트를 먹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연 샌디는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냉장고를 발견한다.

아이스크림은 녹아 흘러내리고, 냉동된 고기들은  상하기 직전의 상태로 녹아있었다.

하지만 놀고 있는 샌디의 남편은 새 냉장고를 사거나 무언가 새로운 일을 벌이기가 부담스럽다.

하지만 냉장고는 꼭 필요한 물건이다.

없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샌디와 샌디의 남편은 중고 냉장고를 사기 위해

신문광고를 뒤지다가 오늘 밤에 중고물품 경매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샌디는 그곳에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샌디의 남편은 낯선 일을 하기가 자꾸 부담스럽다.


식탁 위에 올려진 녹아버린 냉장고 속 물건에서 새어 나오는 물기는 식탁밑으로 떨어지며

샌디 남편의 맨발옆에 고인다.

샌디의 남편은 다시 자신의 소파로 돌아가고 샌디는 경매에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샌디의 남편은 고장 난 냉장고처럼  아직 고장 날 때가 아닌데 너무 쉽게 고장나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안에 있던 내용물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것처럼

그의 내면도 상하기 직전의 고기처럼

흐물거리며 변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처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남편도 더 이상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머릿속으로 인식하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기는

어렵다고 느낀다.

그래서 남편은  다시 자신의 보호막처럼 느껴지는 소파로 돌아가고 만다.


남편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샌디는

더 이상 그렇게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칠 수 없다면 중고 냉장고를 사거나 다른 변화를

꾀하는 수밖에는 없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아무것도 하지 않는

변화 없는 일상은 그녀의 부모님이 싸우고 이혼해야 했던 불행한 과거마저도

그리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괴롭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며 보존이란 말을 씹었다.

보존은 어쩌면 정체이고 어가는 것이다.

거실 속에 놓인 소파가 가라앉는 것처럼

서서히..










작가의 이전글 나도 할 수 있다, 홈베이킹(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