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배우려다 인생을 배운다(3)

by 수다쟁이


누가 바리스타 자격증을 쉽다고 했을까?

재미로 시작했던 커피 수업은 시험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어서 항상 긴장을 멈출 수 없었다.

중간중간 학원에서 치러지는 시험도 쳐야 하고

카푸치노의 모양을 잡는 일은 때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어 가끔 배신감을 느끼거나 허탈감을 주기도 했다.


수업의 삼분의 2 지점에 왔을 때 선생님은 자격증 시험 매뉴얼을 알려주셨다.

커피를 내리기 전 바리스타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전 점검하고 잔을 데워야 한다. 그리고 시범적으로 에스프레소 한잔을 추출한다. 청소를 마친 다음에 에스프레소 4잔과 카푸치노 4잔을 준비해서 제출해야 한다.

중간중간 머신 청소나 그라인더 청소도 해야 하고

쟁반에 에스프레소와 카푸치노를 예쁘게 담아

마치 손님에게 대접하듯 멘트도 준비해야 한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처음 해보는 멘트는 커피를 내리는 일보다 더 오글거리고 얼굴을 빨개지게 했다.

하지만 화난 사람처럼 퉁박하고 어색하기 그지없던 목소리는 차츰 상냥하고 밝은 목소리로 톤 업 되었다. 무엇이든 하다 보면 예전에도 해왔던 일처럼 익숙해진다.


하지만 남 앞에 잘 서보지 않았던 전업주부들은

어색한 자리와 시험이란 타이틀 때문에 손을 벌벌 떨어서 보는 사람마저 마음을 콩닥거리게 했다.

긴장하지 않으려 해도 앞에 서면 자꾸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시험과정 중 힘들었던 건 에스프레소 추출 시간이었다. 평균 8잔의 에스프레소를 내리는데 시간은 제각각이었다. 어쩔 땐 20초가 안 나오기도 어쩔 땐 30초에 가깝기도 한 추출 시간은 마음속의 시간이 긴장도 때문에 자꾸 빨라졌다 느려졌다를 반복하게 됐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템포가 빠른 노래 한 곡을 선곡했다.

처음에는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라는 곡을 선택했다가 중간에 가사가 헷갈려 나중엔 결국 '학교종이 땡땡땡을 빨리 세 번 부르기로 했다'

그러면 마음속의 초는 24초에서 25초에 끊어진다.

선생님이 알려준 팁이었다.


두 번째 복병은 스팀을 치는 거였는데 풍성하게 카푸치노 거품이 나오게 하려면 스팀봉은 2미리 정도 담겨야 한다. 하지만 이것도 긴장도에 따라 약간 더 담기거나 덜 담기기도 했다. 궁여지책 끝에 나는 거품이 처음에는 많이 들어가야 하므로 조금 덜 담기게 했다가 거품이 너무 들어간다 싶으면 스팀봉을 살짝 집어넣었다. 그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다 보니 나만의 방식으로 요령 아닌 요령을 만들어냈다.


세 번째 복병은 모양인데 이건 정말 그때그때 달랐다. 때론 선명하게 웃는 모양의 정갈한 하트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때론 하트와 커피의 경계가 무너지기도 했다.

잔을 45도 각도로 기울이고 두 바퀴반쯤 돌린 다음

잔을 세우며 동그란 원을 그리기를 수십 번 수백 번 했는데도 아직 정형화된 원 그리기는 저만치 거리에서 팔짱을 낀 채 나를 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술래잡기에 몸도 마음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에스프레소 4잔


경계가 흐트러진 카푸치노

흐트러지거나 찌그러진 하트를 보면 마음도 같이 찌그러들었다. 언제쯤 나는 밝게 웃고 있는 예쁜 하트를 그릴 수 있을까?

이제 시험은 이틀 남았다.

그 안에 나는 커피잔에 예쁜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