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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Dec 26. 2021

첫째는 첫째라서, 둘째는 둘째라서, 다행이다

첫째는 나를 닮았다. 나와 첫째의 돌사진을 보면 두 아기는 거의 동일인물 같다. 남아라 커갈수록 아빠를 닮아가서, 여섯살인 지금은 나보다 남편을 더 닮은듯 하지만, 그래도 기본 얼굴이나 체형은 내 쪽에 가깝다.


우리 친정집안은 다들 키가 크다. 촌형제들도 다들 큰 편이다. 키는 크지만 두상은 작아서 대체로 비율들이 좋다. 우리 첫째도 영유검진에서 두상은 작고 키는 또래 중 최상위로 큰 편이었다.


둘째는 남편을 닮았다. 얼굴부터 체형까지 남편의 미니미이다. 군대에서 맞는 군모가 없어서 몇 일 기다렸다는, 자신의 키가 178센티일 수 있는 건 큰 두상이 한몫했다고 스스로 고백하는 남편의 두상을 물려받아서, 둘째는 영유검진에서 두상 97프로의 결과를 받았다. 95프로 이상은 빨간색이 떠서 의사샘이 따로 불러서 조심스레 물어보셨다. "빨간색이 뜨면 추가검사를 하도록 되어있는데, 혹시나 해서요. 아버님이 두상이 크신가요?"


그에 비해 키는 평균수준으로 나와서, 우리 둘째는 아기 특유의 아주 귀여운 비율을 자랑한다. 그래서 동네를 걸어다니면 어른들에게 귀엽다는 이야기를, 첫째 때보다 더 자주 듣는 것 같다.



둘째는 외모적으로 나를 닮은 구석이 거의 없다. 수면마취를 하고 제왕절개를 해서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을  본 나는, 어느날 남편에게 "정말 내 배에서 나온 거 맞지? 여보가 어디서 데리고 온 거 아니지?"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둘째와 나의 신체적 공통점으로 유일한 것은, 둘 다 배꼽 바로 위에 점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가끔 자기 배와 내 배를 열어보며, 같은 위치의 점을 확인하고 활짝 웃는다.


그렇게 외모 첫째는 나를 둘째는 남편을 닮았는데, 성격은 반대다. 첫째는 온순하고 무던한데, 남편이 꼭 그렇다. 남편은 화내는 법이 없고, 감정이 요동치는 법이 없다. 첫째는 주사를 맞을 때도 울지 않고, 주위에서도 다들 순둥이라고 할 정도로 떼를 쓰거나 보채거나 하지 않았다. 나는 아기들이 다 첫째 같은 줄 알고, 쉽게 둘째를 결심했었다.


둘째는 나를 닮아 감정기복이 심하고, 좋고 나쁨이 매우 분명하고, 잘 참지도 못한다. 얼마전 첫째가 다쳐서 둘째에게 "너라도 좀 진정해줘"했더니, "나도 감기라서 아프단 말이야"하는데,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남의 큰 아픔보다 자신의 작은 아픔을 더 크게 생각하는;; 동물을 무서워하는 것도 나를 꼭 닮아서 산책을 나가면 자주 보호해줘야 한다.


첫째는 아기일 때부터 나를 도와주는 사람처럼 여겨졌는데, 둘째는 나를 괴롭하는 사람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둘째야 미안.. 근데 딱 그렇게 느꼈다).


어느날은 친정엄마에게 하소연을 했다. "진짜 순이는 너무해. 절대 내 몸에서 안 떨어지고, 밤중에는 내 머리카락을 다 뽑고, 어깨가 빠지고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도 안겨있고 업혀있으려고 해"


그 때 엄마는 나를 달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글이가 첫째라서 얼마나 다행이. 둘째는 언젠가는 형닮아간다더라. 그러니까 바뀌지 않고 그렇게 태어난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 말씀에 전혀 위로를 못 받았던 나는 화내며 말했다. "순이가 첫째로 태어났음 둘째를 안 낳았지. 혹시나 둘째를 낳았는데 글이 같음 둘째 키우면서는 엄청 편했겠지. 나는 순한 애를 키우다가 안 순한 애를 키우니까 더 힘들어.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야?"


그때는 엄마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들어 엄마의 말씀이 이해가 된다.


주차를 해놓고 차키 차에 두고 내리는 나는, 아이 둘을 차 옆에 세워놓고 다시 차에 들어가 차키를 찾기 일쑤이다. 갑자기 차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 꼭 가만히 있으라고 주의를 주지만, 둘째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리를 뜨려고 한다. 그런 어느날 첫째가 둘째 모자를 꼭 잡고 못 가게 하는 거다. 겨우 26개월 먼저 태어난 첫째는, 둘째를 엄청 챙기고 보호한다. "엉아가 해줄게"라는 말을 달고 산다. 어느날은 감기약을 안 먹으려고 도망가는 둘째를, 첫째가 잡아다가 설득하기도 했다.


첫째가 짠하고, 고맙다.


둘째는 좀 많이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 둘째도 순한 편이라고 하는데 첫째가 워낙 순해서였는지 아님 아이가 둘이 된 상황 그 자체가 힘들어서인지, 나는 둘째가 태어나고 육아우울증이 시작될만큼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둘째는 내 머리카락에 애착이 있어서, 자는 밤 내내 내 머리카락을 쥐어 뜯었다. 어느날은 너무 아파서 이불을 덮어썼더니, 만질 머리카락이 없다고 아이가 자다 깨서 엉엉 울었다. 나 역시 "제발 엄마 머리 좀 뜯지마"하면서 울었다. 이제는 나도 적응이 되었는지 둘째가 머리카락을 만지약간 시원하다는 느낌까지 받지만, 어느날은 발로 내 머리카락을 만지다가 아이의 발톱에 긁혀 내 이마피가 나도 했다. 뭐 머리카락 내주는 것 정도는 말도 아니게, 둘째는 여러모로 나를 힘들게 했다. 32개월을 앞둔 지금도 업어야자고, 자다깨서도 밤 중간중간 "업어, 업어"하는데, 안 업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어깨와 허리, 무릎 관절이 계속 아프다. 때론 둘째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이렇게 엄마를 힘들게 해? 너는 엄마가 힘든 게 좋아?" 그렇게 (짜증스럽게) 물어본다. 그러면 또 둘째는 거기에다 대고 성실히 답한다. "응 나는 좋아"


그런데 둘째에게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으니, 너무너무 귀엽다. 둘째에게 화가 나고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다가도, 통통한 엉덩이를 보면, 어눌한 말투를 보면, 그 와중에 귀여운 표정을 지으면, 그냥 사르르 녹는다. 길을 걷다 보이는 모든 걸(낙엽, 돌, 풀 등) 다 내게 주워주고, 자기가 남긴 음식은 꼭 아빠가 아닌 엄마가 먹으라고 하는.. 진짜 엄마밖에 모르는 아이. 나는 속으로 자꾸 "너는 왜이렇게 귀엽니?"라는 말을 하게 된다. 정말 그렇게 귀엽지 않았으면... 진짜 도망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첫째는 첫째라서, 둘째는 둘째라서, 다행이다.

친정엄마 말씀대로, 첫째가 순하고 의젓해서, 그 덕분에 내가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첫째가 둘째도 잘 이끌어주리라 믿는다(지금도 둘째는 내 말은 안 들어도, 형아 말은 잘 듣는다).


둘째는 순하지는 않지만 너무 귀여워서 모든 게 용서가 된다. 둘째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귀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셋째는 숨만 쉬어도 귀엽고, 사랑보다 더 달콤한 사탕이라는데 도대체 얼마나 더 귀엽단 말인가)


이제 육체적으로 완전 고된 시기가 지나서인가.. 이런 생각도 할 수 있게 되니, 육아의 한 시기를 지나온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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