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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Dec 26. 2021

나의 21년 일상글

최근 1년 넘게는 코로나로 외식 자체를 못하기도 했지만, 그 중 스테이크는 첫째 아이가 태어난 이후 처음 먹어보는 거였다. 그러니까 5-6년만인 것 같다. 원래도 스테이크를 좋아하지 않아 특별히 먹고싶었던 것은 아니고, 코로나 시국에 그나마 한산한 식당을 찾다보니 가게 되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스테이크라니,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하지만 역시 6,4세 아이둘과 코스요리는 무리이긴 했다. 우리는 음식을 음미할 여유가 없는데 정말 천천히 요리가 나와 배고픈 아이들은 아우성을 쳤다. 요리마다 직원의 성실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미안하게도 들을 여유가 없었다. 배는 고픈데 자기 취향이 아니었는지 급기야 둘째는 에피타이저로 나온 조그마한 조개 관자를 손으로 낚아채 바닥에 던져버렸다.  


평소보다 유난히 과격하다싶어 생각해보니 낮잠시간이었다. 급히 뽀로로를 틀어주고 뒤이어 나온 스프를 마구 입에 넣어주었다. 직원에게 다음 음식을 최대한 빨리 줄 것을 부탁했다. 이후 나온 스파게티를 둘째에게 먹이는데, 전혀 입을 벌리지 않는다.


둘째를 달래서 드라이브를 나가자고 하고 차에 태워 재웠다. 그러니까 나는 에피타이저, 스프, 스파게티를 조금 맛보고 나왔다. 남편은 내몫의 스테이크까지 2인분을 먹었는데, 나를 배려해서인지 스테이크가 맛이 없었다고 말했다.


남편은 에피타이저, 스프, 스파게티는 맛도 못 봤을거다. 남편몫은 첫째가 다 먹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남긴 스파게티도 첫째가 다 먹었단다. 남편은 남편대로 코스요리를 즐기지 못했다.


짧은 낮잠 후 둘째가 오전부터 노래를 불렀던 오리배를 타러갔다. 미처 화장실을 못 다녀온 나는 선착장에 세 사람을 남겨두고 근처 까페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 카페에는 유독 젊은 남녀들이 많이 데이트 중이었다. 그들의 젊음이, 홀가분함이 참 부러웠다. 나도 남편과 연애시절엔 둘이 코스요리도 우아하게 먹었다. 화장실을 가고싶다면 서로 흔쾌히 보내주었다(지금은 누구든 중간에 화장실 가고싶어하면 서로가 부담스러워한다ㅋ) 나도 그 젊음들 사이에서 커피 한 잔을 하면, 따라서 젊은이가 될 것 같은 착각과 유혹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세 사람에게 돌아가기 바쁘다.


어라, 그런데 있던 자리에 없다. 남편은 내가 어디가면 늘 딱 그 자리에서 애들을 붙잡고 기다리는데, 없는 것이다. 내가 어디 가는 걸 부담스러워해서, 나혼자 뭘 하겠다고 하면 "우린 가족이라 넷이 딱 붙어다녀야 돼"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형광색의 노랑이티와 초록이티를 열심히 찾는다. 헤어졌던 곳에서 이십미터쯤 떨어진 가까운 곳에서 셋이 내 쪽을 바라보며 서있다. 너무 귀여웠다. 그리고 안도감이 느껴졌다.


저 젊은이들이 가득한 까페에서 젊은 기운을 느끼는 것보다, 여유롭고 우아하게 코스요리를 즐기는 것보다, 저기 초록이티와 노랑이티와 그리고 서로가 없으면 너무 힘들어 꼭 필요해진 남편과 함께하는 이 하루가 참 고마운 일상이다.


최근 말이 급격히 늘고 있는 둘째가 나에게 말한다.

"엄마 우린 가족이니까 꼭 붙어다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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