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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L Apr 20. 2022

오늘 하루

오늘은 코로나로 세 번이나 미룬 치과검진 예약날이었다. 이번 검진은 첫째와 둘째 영유구강검진과 나의 정기검진까지, 세 사람이 모두 예약된 날이다. 첫째는 의젓하게 잘 하기에 걱정이 없지만, 둘째는 치과침대에 눕는 것부터 안 된다. 오늘도 진료실에 들어가면서부터 눈물을 닦더니, 침대에 눕지 않겠다고 소리를 고래고래..... 아무튼 그런 둘째를 예상하기에 가기 전부터 긴장이 되었다. 


거기다가 정말 오랜만에 나의 교정과 검진과 신경치료할 치아 정기검진 두 과를 모두 가야하는데, 아이들이 그 시간을 잘 버텨줄지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그래서 전날부터 준비를 했다. 어제 하루종일 외출도 하지 않고 둘째와 치과의사놀이를 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그런데 퇴근하고 온 남편이 평소에 거의 하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이다. 코로나 확진이신 이모님께서 안 오신지 3주째,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둘째를 일찍 재운 것이다. 생전 둘째를 재우지 않는(둘째가 지금 다섯살인데 둘째를 재운 적이 총 다섯번도 안 될 것 같다) 남편이 내가 집안일하는 사이에, 9시도 안 되어 둘째를 재운 것이다. 그것도 둘째가 자는 방도 아닌 방에서;;;;;;


망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도 밤새 잘 자주기를 기대하며, 나는 <알쓸신잡>을 유튜브로 즐겁게 보고 잠들었다. 나는 지식인들이 좋다. 그 분위기와 냄새가 좋다. 나름 박사과정수료자인만큼;; 그런 분위기가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이다.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알쓸신잡>을 보는데, 역시나 지식인들이 참 대단하다 감탄하면서 즐겁게 잠들었다. 


하지만... 역시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둘째는 밤새 세 번이나 깨서 쉬가 마렵다, 자기 방이 아니다, 또 쉬가 마렵다 하며 중간에 방도 바꾸고 쉬도 하고;;; 그러면서 내 잠도 다 깨웠다. 그러고선 결국 여섯시 반에 기상했다. 


둘째는 원래도 치과를 못가는데... 밤잠까지 설쳤다... 낮잠을 자야하는 그 시간이 치과예약시간이다. 이 치과는 예약이 한달쯤 걸린다....... 


남편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애를 재우냐고!! 그것도 평소에 전~~~~혀 하지 않는 행동을!!!


둘째가 여섯시 반에 깨서 돌아다니니 첫째도 일곱시 반에 깼다;;;;;;; 둘다 수면이 부족하니 부딪히기만 하면 짜증을 내고 싸운다. 밥도 잘 안 먹고 싸운다. 옷도 마음대로 이상하게 입고, 주차장 출구도 다른 곳으로 나가자고 떼를 부린다. 평소에 안 하던 떼를 수면부족으로 더 부리는 것이다.



치과에 가기 전에 둘째를 재우기 위해 차를 태웠다. 

나: "좀 자둬"

둘째: "나 지금 잠이 안 와"

나: "너 나중에 잠온다고 짜증내면 엄마가 폭발할 것 같으니까 지금 자!!"


정말 잔혹하게 말한 것 같지만.. 진짜 폭발할 것 같았다. 



지식인들을 생각해본다. 오은영박사님은 이 순간에도 다정하게 이야기 하실까? 유시민 전장관님은 육아를 어떻게 하실까? 다정한 정재승 박사님은? 차분하신 김상욱 박사님은? 유쾌한 유희열님은? (김영하 작가님은 약간 까칠하실 것도 같고... ) 나만 이렇게 성격이 더러운 걸까? 내가 지식인이 아니라서 그럴까?


아니.. 나는 이 육아라는 상황이 결코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저 지식인들이 모두 오늘 내 상황이었다면, 결코 지식인같이 행동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닌가)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20키로에 근접한 둘째를 안아 침대에 눕히고 내 머리를 쥐어뜯게 내어주며 나는 정신이 반쯤 나갔다. 얼이 빠진다. 이후 내가 치료받을 땐 그냥 유튜브를 틀어주었다. 아이들의 얼을 빼놓아야 내 얼을 챙길 수 있다.


육아가 어려운 것은 내 성질대로 다 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아이는 너무너무 변수가 많다는 것. 또 아이는 정말로 아이라는 것. 나는 그동안 성선설을 믿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성악설도 맞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아이가 악하다는 게 아니라, 몰라서 가르쳐주고 갈고 닦아줄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늘 하루는 뽀로로, 폴리, 카봇.. 그것을 만든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커피를 쏟아부은 내 속은 지금 위통으로 욱신거리고, 오늘 하루종일 싸우던 형제는 왜 잘 밤에는 저렇게 사이가 좋은지.. 재밌게 놀고 있다.


꼰대가 되지 말아야지 한번 다짐해보는 날이다. 요즘 육아가 좀 편해져서 "생각해보니 아이 어릴 때가 그래도 젤 좋았어"라고 말하고 다닐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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